(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슬픔은 없어지진 않는다. 서랍에 넣어지지도 않는다. 슬픔은 곁에 있다. 어느 시인은 슬픔을 서랍에 15분만 넣어두고 싶다는 표현도 한다. 오래된 골목처럼 익숙한 슬픔은 그 골목을 거닐고 있다. 시인이나 철학자가 슬픔의 생김새나 슬픔의 내면을 위하여 무엇인가 하겠다면 그것은 자만일 것이다. 슬픔에 오랜 공부를 한 학인의 말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슬픔을 위하여 따라나서는 정도로 보는 것이 겸손일 것이다. 간혹 시를 통하여 슬픔과 고통, 우울증에 서성이는 환자를 치유한다는 직함의 사람도 있다. 명함에는 '시(詩)치유사'라 소개한다. 사실 이 같은 일은 한국 시단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미 외국에서 '시치유'라는 저서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와는 다소 다르다. 심리학을 전공한 시인들이다. 외국에서는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에게 정신치유 의사 자격을 부여한다. 의사와 다름없는 전문적인 정규교육을 받은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다소 과장이거나 터무니없다. 의학적인 교육을 수반하지 않는다. 평생교육원과 같은 곳에서 불분명한 민간자격증을 가진다. 시인이 하는 일은 자화상이다. 시를 쓰면서 내 영혼의 생김새는 이런 거고 '내 삶의 풍경은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은 작곡의 영감을 귀뚜라미를 통해 얻기도 했다. '어린이 정경'(1838년)를 비롯한 동요 곡들도 더러 있다. 슈만은 가을이면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작곡하는 것을 즐겨 했다. 공자는 수많은 곤충 중에 귀뚜라미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 공자는 제자들과 선학의 시를 편집한다. 시경에는 100여 종 곤충이 등장한다. 시경 국풍 132편, 당나라의 노래(唐風)에선 귀뚜라미(蟋蟀)를 소재로 한 시가 있다. 蟋蟀在堂(실솔재당) 귀뚜라미가 마루에 있으니 歲聿其莫(세율기모) 해가 드디어 저물었구나. 今我不樂(금아불락) 이제 우리가 즐거워하지 않으면 日月其除(일월기제) 해와 달은 가버린다. 無已大康(무이태강) 너무 편안하지 아니한가 職思其居(직사기거) 자신의 직책을 생각하여 好樂無荒(호락무황) 좋고 즐거움이 지나치지 않음이 良士瞿瞿(양사구구) 어진 선비가 조심할 내용을 담는다. 풀이하면 귀뚜라미가 처서를 맞아 집안으로 들어오면 한 해가 저문다.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게으름 피우지 말고 겨울 준비를 하자. 옷깃을 여미며 얌전하게 올바른 마음가짐을 해서 한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가을 전어에 깻잎 생각납니다." 영국으로 떠난 후배 시인의 편지다. 텃밭의 깻잎을 갓 따왔다. 전어회를 된장에 싸 먹었다. 입안은 한동안 알싸함이 남아 있다. 깻잎의 향기가 어떻게 진동을 하는지 영국까지 따라왔다 한다. 신안 부두, 정자 식당에서 마셨던 토속 막걸리도 생각이 나서 날마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떠나는 꿈을 꾼다 한다. "선배님! 48장의 추억이 생각나세요." 시(詩) 도반은 무슨 말인가 편지를 들여다본다. 화투 이야기다. 화투는 꽃 싸움이다. 매화, 난초, 솔, 벚꽃, 모란, 국화, 오동 따위의 열두 가지 그림이 각 네 장씩 나온다. "땡잡았다"는 말은 화투의 노름판에서 상당히 높은 끗수에 해당하며 상대방을 크게 이긴다는 데서 생겨난 말이라 한다. 시 도반은 화투가 48장이라는 것을 한 번도 기억 속에 담아 둔 적 없다. 그저 화투려니 하고 대했다. 영국의 김 시인은 화투의 역사까지를 기억한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전래 되었다는 설이 있다. 대략 조선 후기쯤, 1902년 황성신문에 실린 잡학 광고에 화투가 나왔다고 한다. 어림 120년의 역사를 가졌다. '라스트 레시피(Last Recipe: Memory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 없다'는 뜻의 '공전절후(空前絶後)'라는 말이 있다. 비교할만한 것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다는 의미도 지닌다. 주로 영화 선전에 이용된 말이다. '공전의 히트'라는 문구와 같은 것들이다.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공전절후’에 흥행의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이다. 거기에 더한 부류도 있다. 언어의 건축자인 시인이다. 시(詩) 도반은 바람에 언덕에서 시를 쓴 크리스티나 로제티(Christina Georgina Rossetti)에게 '공전절후'의 시인이라 불러주고 싶다. 1980년대 바람의 시인으로 시, 동시, 종교시, 논설문에 이르러 계관시인 후보에 오른 천상시인이다.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 나도 너도 볼 수 없었지/ 그러나 나뭇잎이 매달려 떨고 있을 때/ 바람은 가로질러 가고 있네//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 너도나도 볼 수 없었지/ 그러나 나무들이 머리 숙여 인사할 때/ 바람은 지나간다//' 크리스티나 로제티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 시 전문이다. 1830년 12월에 태어나 1894년 12월에 독신으로 살다간 영국이 내세우는 여류 시인의 한사람이다. 그는 눈보라 치는 12월에 태어나 눈보라 치는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시(詩)도반은 故 황금찬 선생과 우이동, 한마을에 살면서 행사장 동행이 잦았다. 비 내리는 여름날이다. 이탄 시인, 황금찬 선생과 한국기독교문인협회가 주관하는 청주 동행이었다. 황금찬 선생은 평소 유머가 많다. 문인들의 여자관계도 구수하게 본 것처럼 이야기한다. 이야기 끝에는 "내가 본 것이 아니에요. 들은 이야기에요"라며 마무리한다. 이야기가 끝났다 싶은데 한참 후 다시 강조한다. "시도반 선생, 내가 목격을 한 것이 아니라 들은 이야기입니다"라고 다시 못 박음질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참을 웃곤 했다. 이야기 중 이탄 선생이 한 달에 한두 번은 고스톱을 치는 것이 낙(樂)이라 한다. 황 선생은 시인이 고스톱을 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 당부한다. 황 선생은 교회 장로다. 이탄 선생은 정년 후 유일한 낙이라며 웃는다. 청주 가는 길은 멀었다. 황 선생은 시집을 펴내며 제목에 신경이 쓰인다는 화두를 꺼낸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짐승과 식물의 이름을 짓는 것에 신경이 크게 쓰였을 것이라 한다. 선생은 악기 중에 가장 퇴폐적인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말이 없자 '섹소폰'이라 한다. 교회 연주에 사용하지 않는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미며들고' 단어가 생소하다. 소준섭 박사의 조간신문 칼럼 제목 부분이다. 인터넷 사전을 두드린다. 붉은 글씨로 ‘없는 단어’라 나온다. 칼럼을 읽어가면서야 '스며들다'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신조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 '미나리'가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으며 '윤여정에 스며들었다'라는 말이 나왔다. '윤며들다'는 말 등 '~며 들다'와 같은 유행어로 해석하면 쉽게 이해될 성싶다. 부유하였던 예전 미국이 아니다. 프런티어 정신은 퇴색되었다. 특정 나라의 돌기(우뚝 솟음)를 인정하려 않는다. 오로지 자국 이익 외교를 펼친다. 미국정치는 '1%에 의한, 1%를 위한, 1%의 정신'이다. 세계의 교통순경과 같았던 과거의 미국으로 생각하면 순진한 외교다. 이럴진대 우리만 유독 영어 사랑 태도가 옛, 스럽게 '미며들고' 있다. '도어스테핑', '글로벌 스탠더드', '메가포트' 등등에서 바라보는 언론과 윤석열 대통령의 영어 인식이 지나치다는 평이다. 문체부 새말 모임 조사(6월 17~7월 23일, 2000명 대상)에 의하면 국민의 74.2%가 대통령 출근길 문답은 좋으나 '도어스테핑'과 같은 영어사용이 거슬린다는 여론이다. '출근길 문
(파주=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송필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회장이 26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소재 '파주재해구호물류센'에서 이재민들에게 지원할 물품 등을 확인하고 시설을 점검했다고 희망브리지가 밝혔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는 갑작스런 재난·재해로 힘들어하는 이웃을 돕기 위해 1961년 전국의 방송사와 신문사, 사회단체가 힘을 모아 설립한 순수 민간 구호단체다. 1959년 태풍 '사라' 피해 돕기 모금운동을 계기로 '전국수해대책위원회'로 첫걸음을 내딛은 후 1964년 '전국재해대책협의회'를 거쳐 본격적인 구호활동을 펼치며 우리 사회에 최초로 나눔 문화를 뿌리내렸다. 지난 2001년 재해구호법 개정으로 전국재해구호협회는 국내 자연재해 피해 구호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유일하게 권한을 부여받은 법정 구호단체로 재도약했다. i24@daum.net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몸을 비빈다. 서걱서걱 소리다. 순정으로 전신을 비비는 억새, 폭풍우에도 초연하다. 푸른 피를 비비는 억새는 푸른색을 걸고 신과의 특별한 언약이 있었던 것일까. 가느다란 허리에 서로서로 껴안고 바람불어 흔들릴 뿐, 넘어지지 않는다. 기대는 사랑이 무섭다. 손 베일 것은 날카로운 잎새도 진실로 껴안으면 베이지 않는다. 마치 정신을 살리는 선비와 같다. 억새와 꽃들이 지구를 살리고 있다. 어제는 꽃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은 별을 보았다. 내일은 바람을 만날 것이다. 억새와 눈빛과의 약속은 사뿐사뿐 낡아 바람 속으로 돌아간다. 독일 문학에 노발리스(Novalis, 1772~1801)가 쓴 장편 소설 '푸른 꽃'(집필도 중 작가는 요절, 미완의 작품)이 있다. 스무 살 청년 하인리히는 꿈에서 푸른 꽃을 보게 된다. 그가 푸른 꽃으로 다가서자 꽃이 상냥한 여자로 변한다. 그 소녀를 동경한 하인리히는 꿈에서 깨어나 여자를 찾아 먼 여행길을 떠난다. 마침내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할아버지의 친구이자 시인인 크링스오르를 만나고, 그의 딸 마틸데를 보자 꿈에서 본 푸른 꽃의 모습이라 좋아한다. 그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다시 꿈을 꾼다. 나룻
(서울=미래일보) 김혜령 기자, 인터넷언론인연대 취재팀 = 우리 모두를 힘들게 했던 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와 그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일상을 찾아가고 있는 현장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취재팀은 10일 이른 새벽 국내 최대 규모의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이하 가락시장)을 찾았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가락시장은 대표적인 농수산물 시장으로, 농수산물의 유통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정부와 서울특별시가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설립한 종합도매시장이다. 전국의 대량 유통을 담당하고 있는 가락시장은 한동안 극심한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활기 넘치고 붐비는 시장 분위기를 잃어버리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었다. 수시로 오가는 큰 트럭, 지게차, 오토바이, 많은 사람들, 빈 공간에 가득 채워지는 농수산물, 알아들을 수 없는 경매사만의 언어,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취재팀도 덩달아 활기가 살아나는 듯 했다. 가락시장의 농수산물 가격은 우리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가격이 결정된다. 그래서 가락시장엔 밤이 없다. 가락시장은 한밤중이 대낮처럼 환하고 바쁘다. 시간이 자정을 지나 새벽 2시가 되니 청과물 시장 경매가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호랑이 봉초 담배 말아 피던 시절이다. 거슬러 올라 1966년부 전화번호부 책이 발간되었다. 대기업, 중소기업의 홍보창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책을 펼치며 가장 많은 이름을 헤며 놀던 시절도 있었다. 한가하기 짝이 없는 해찰이다. 전화번호부에는 '자(子)' 자로 끝나는 이름이 많았다. 미자, 춘자, 금자, 해자 같은 이름이다. ‘자’자 끝 이름을 흔하다는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자’ 자에는 놀라운 반전이 있다. 중국 역사에 '자(子)' 자를 붙이면 당대, 최고의 지성이라 일컫는다. 노자, 공자, 맹자, 순자와 같은 학자에게 붙여주었던 경우다. 우리나라에도 ‘자’ 자를 붙여준 딱 한 분의 학자가 있다. 바로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이다. 이 칭호는 송자(宋子) 말고는 우리 역사에 두 번 다시 없다. 송시열은 17세기 사람이다. 키가 1m 90cm로 기골이 장대했다. 송자에게는 우리 역사에 길이 남는 기록이 한두 개가 아니다. 기네스북이 없던 시절, 세계공식 기록은 없다. 조선왕조실록이 말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한 사람의 이름이 3000번 이상 거듭 기록은 오직 우암뿐이다. 그뿐이 아니다. 당시 평균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푸르게 물든 여름의 산이 주는 선물이자 깊은 산 속 자연 그대로 발아한 삼인 산삼. 각종 설화에 죽을병을 고치는 기이한 약재로서, 행운을 가져다주는 재화를 상징하는 산삼은 옛날부터 신비의 명약이라 불렸다. 하지만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깊은 산속에 숨어 그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산삼! 대물 산삼을 찾기 위해 16년 동안 매일 산으로 향한 약초꾼의 여름 산행은 어김없이 시작됐다. 올해 유독 이르게 찾아온 더위. 36도를 육박하는 여름 산의 기승에 땀은 비 오듯 흐르고 약초꾼은 지쳐 간다. 하지만 보물을 향한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우거진 나무를 뚫고 약초꾼의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진다. 지난 6월 29일 오후 진귀한 약초를 향한 집념 하나로 극한의 위험 속으로 뛰어든 진짜 산사나이인 약초꾼을 만나보았다. 현재 경기도 하남시에 거주하며 '자연 속으로'라는 상호를 갖고 약초 판매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일명 심마니인 약초꾼 정인관(47) 대표다. 하남시 대성로 '자연 속으로'에서 만난 그는 올해로 산삼을 비롯하여 약초와 16년을 함께해 온 산(山)사나이다. 그는 심마니보다는 '자유인 정인관'으로 불러주는 것을 더 좋아했다.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아모르 파티'는 가수 김연자가 유쾌함을 불러들여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노래다. 대중가요로는 드물게 43행의 긴 가사다. 이건우와 신철 두 사람이 공동 작시도 특징이다.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인간 자신에게 다가오는 운명(fati)을 저주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사랑(amor)할 때 비로소 인간으로 거듭남을 담았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니체는 '인생에서 만나는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말과 같다.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제주도의 유배 생활에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를 수십 번을 부르지 않았을까. 추사는 모험과 좌초를 아모르 파티처럼 수용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18세기의 추사에게 21세기에 만들어진 아모르 파티를 알 리 없다. 다만 그런 심정으로 유배 생활을 견디었을 것이라는 유추다. 추사는 제주도 유배 생활은 무려 8년 4개월이었다. 유배 생활에서 유명한 세한도(歲寒圖, 국보 180호)가 만들어졌다. 세한(歲寒)은 추위 중에서도 가장 추운 시간을 뜻한다. 세한도에는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세월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정신의 품격이 새겨져 있다. 추사에겐 돈독한 이상적 제자가 있었다. 모두가 추사를
(양평=미래일보) 이정인 기자 = 경기도 양평 수능리 103번지에 외관이 낯설지 않지만 매우 시선을 끄는 유니크한 집이 한 채 자리 잡고 있다. 이 집은 한 채처럼 보이지만 3채의 집으로 남윤석 '아인건축사' 대표가 최근 완공해 분양을 앞둔 결과물로 '라움 수능 103'이라는 이름을 가진 건물이다. '라움 수능리 103'은 북쪽과 남쪽 두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문을 열고 들어선 건물의 실내 공간은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공간감을 느끼게 했다. 더욱이 매우 인상 깊었던 것은 건물 전체에 여기쯤 있었으면 하는 생활에 필요한 설비가 모두 갖춰져 있어 추가 비용에 대한 부담이 없어 보였다. '라움 수능 103'의 이름을 가진 이 집을 만든 남윤석 대표와 일문일답을 통해 그의 건축에 대한 철학과 수능 103의 매력에 대해 들어봤다. 남윤석 대표는 경원대학교(現 가천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에 건축설계 사무소에 입사해 2006년 자신의 설계사무실을 오픈해 건축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을 시작한 이후 서울 강남에서 '실제 평수보다 넓어 보이는 설계'를 통해 명성을 쌓아 왔다. ▲ 건물이 서 있는 수능리의 입지 조건은? "건물이 들어서 있는 경기도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두 살배기 세자가 '천지왕춘(天地王春), 온 세상이 임금의 은택을 입은 봄'이라는 詩를 하얀 화선지에 써 내려 간다. 지켜보던 각료들은 세자가 쓴 시를 서로 갖겠다고 다툼이 생겼다. 영조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세련된 세자의 시에 미소 짓는다. 각료들의 행동에 한없이 기뻐한다. 때는 1737년(영조 13년) 2월 14일의 창경궁 문정전의 풍경이다. 이날 봄 햇살은 궁궐 안 사람들의 마음을 만족하게 하는 최상의 쾌청 날씨였다. 같은 해 9월 22일에 세자는 종이 12장에 두 글자씩 쓴 글을 영의정 이광좌를 비롯한 여러 대신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세자는 명석한 두뇌와 남다른 시적 감각을 지니고 태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시도반(詩道伴)은 비 오는 날이면 창경궁 내전 영춘헌(迎春軒)과 집복헌(集福軒)을 걷는다. 집복헌은 사도세자가 탄생한 공간이다. 창경궁 중앙의 명정전을 지나 동쪽에 있다. 비교적 한적한 궁의 내전 중 하나다. 집복헌 옆 평평한 너럭바위가 인상적이다. '관람로가 미끄러우니 주의 하십시오' 영어와 한글의 바닥 안내판이 두세 개 있다. 어쩌면 세자가 너럭바위를 걷다 미끄러진 예도 있었지 않았나 싶다. 너럭바위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개똥철학의 유래를 아세요." 근사한 우리말들의 유래를 찾아 나서면, 전해 내려온 말이라는 것으로 사전은 정리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멋진 말을 남기고도 조용히 앉아 계시거나 시치미를 띠고 말이 없는 것일까. 강단의 철학자에 물었다. 개똥철학이라는 말은 철학의 동네, 독일에도 없고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다며 웃는다. 개똥철학은 '철학'의 학문을 가르치기보다는 '세상을 보는 관점과 시야가 좁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이르는 의미다. 철학의 아버지라는 헤겔이나 칸트가 말했듯, 철학이라는 학문은 이해하기도 어렵다.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래서 학문적 소양이 부족한 사람이 아는 체하거나, 알량한 지식으로 혹세무민하는 등 부정적인 의미로 옛 어른은 사용해 왔다. 우리나라에 '개똥철학'에 관한 저서도 몇 분이 펴냈다. 여러 시인이 시로 남기기도 했다. 개똥철학이 갖는 해학 넘치는 내용 들이다. 개똥이란 아무짝에도 쓸 곳이 없다. 동네의 골목에 방치된 똥이다. 요즘은 반려견으로 개똥을 주인이 당연하게 처리하는 시대다. 영국의 공원에는 개똥을 모아주는 개똥 쓰레기통도 있다. 우리는 나라 공원 환경은 그 정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