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세상이 온통 병이 들었다. 아니 병이 든 것이 확실하다. 나 자신이 세상 병의 한 부분이다. 문제는 병이 들어 병소(病巢)임이 분명한데 인정하지 않는다. 작가는 병든 세계 속에서 온몸으로 그 병을 앓고 있는 이의 다른 이름이다. 이 상황의 중심에 서 있으면 그 실체가 보이지 않는 법이다. 작가가 병든 세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세계 안에 있으면서 그 세계로부터 한발 비켜나 세계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더 정직, 직설로 말해보자. 작가는 도둑, 소경, 고아, 무당, 광대, 칼잡이와 마찬가지로 세계 안에 정주하지 못한다. 세계 밖을 하염없이 떠돌아야 하는 저주받은 운명들이다. 이 저주받은 운명이란 범속한 인간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지만 작가에게는 그 예술을 위한 하나의 지복(至福)인지 모른다. 여름 폭한, 날씨를 원망하지만, 그 날씨는 지복을 타고나지도 못했다. 스스로 움직일 힘이 없다. 주어진 환경에 바퀴 되어 나쁘면 나쁘게 우락부락한 몰골로 가야만 하며 꿈을 꾸지 못한다. 저 가을 산을 넘어가는 사람은 있으나 가을 산은 그저 정해진 시간 안의 부분일 뿐이다. 우리 삶에는 열리고 닫히는 많은, 문들이 있다. 어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학인은 장정(裝幀) 보기가 취미다. 교보문고에, 들려 신간(新刊)의 장정을 보는 것은 출판의 흐름 즉 경향(景香)을 알게 한다. 표지를 넘기다 보면 개성을 드러낸 저자의 사진을 보는 것도 꽤 흥미롭다. 교보문고 입구에는 노벨상 수상자 초상화 전(展)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카뮈의 그림도 의문을 품는다. 교육적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다는 뜻이다. 34년 전에 설립된 교보문고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대산 신용호 창립자의 정신이 담긴 우리나라 대표적인 문화 공간이다. 종각 쪽에서 들어오면 횡보 염상섭의 좌상 뒤 돌판에 그 문구가 십계명처럼 새겨졌다. 교보의 노벨 수상자들의 초상은 우리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세계 최고의 석학들을 만나고 꿈을 키우게 하는 뜻을 담고 있다. 교보문고는 1992년부터 노벨상 수상자들의 초상화를 전시했다. 지난 2010년 리모델링 과정에서 그 초상화들이 사라졌다. 시민들이 아쉬움과 복원 요청이 잇따랐다. 교보문고는 시민의 여론을 부응하고 새로운 예술적 영감과 인문 정신이 깃든 예술 문화 공간으로 수상자의 전시공간을 다시 마련했다. 노벨 수상자의 초상화는 개성이 강한 화가들의 그림이다.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이상(李箱, 본명 김혜경) 시인은 왜 '천재', '광인'이라 부를까. 학인은 이상을 들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 부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영국의 동화다.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다. 다른 시도반은 이상을 '모던 보이' 초극(超克)을 지향한 이단아의 예술가로 불리는 한국문학의 현대성을 창조해가는 시인이라 한다. 분명 이상의 시는 당대인(1930년)에게 모독을 당했다. 예술사조로서의 모더니즘을 주장하고 그 길을 걸었던 현대 시사에 이상 이상의 두드러진 평가의 시인은 없다. 그와 같은 증거로 이상은 '한국을 빛낸 100인의 위인들'이라는 노랫말에 소개된다. 고조선부터 근대~현대 초기까지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단군으로 시작 이중섭 화가가 100위로 막을 내린다. 수많은 역사의 인물에서 현대사의 시인으로는 유일하게 윤동주와 이상만이 들어갔다. 국민 시인으로 불리는 김소월도 지성의 시인으로 불리는 김수영, 정지용, 미당도 들어가지 못했다. 이상의 시는 독해력이 난해한 시다. 그런데도 5월이면 어린이를 상대로 '오감도(烏瞰圖)' 시가 연극 무대에 올려진다. 2024년에도 예외 없이 대학로 아이들 극장서 보름 남짓 올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1910년 8월, 성하지중(盛夏地中). 대한 제국이 일본에 의해 통치권을 잃었다. 조선총독부가 한국의 동맥을 그어 버렸다. 국민은 감시에 들어갔다. 여자들은 어디론가 자꾸만 사라졌다. 그 시절은 상실의 시대라 한다. 아니다. 일본제국에 확장 주의적 야욕에 한국의 정체성을 덮어버렸다. 그것을 역사는 '식민' 낙인이라 한다. 무려 36년간을, 비탄의 시간으로 이어졌다. 114년이 지난 2024년 대한의 8월, 한증(悍蒸)의 극성은 사뭇 다르지 않다. 피서랍시고 식민시대의 문학을 들여다보다 엉뚱한 곳으로 시선이 간다. 일본제국하의 신문은 제호는 하나 같이 한문이었다. 시대는 한문 시대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114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한국의 신문은 혁명과 같은 변화를 보인다. 조선일보(朝鮮日報)와 동아일보(東亞日報)를 제외한 다수의 신문은 한글의 제호다. 왜 두 개의 신문만 유독 한문 제호를 오늘에도 고집하고 있을까?. 강자 독식 구조의 식민지배 하에서 대한 제국은 식민권력에 의해 ‘조선’으로 다시금 국명이 바뀌었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 시절의 한문 제호 신문은 지금쯤 반성도 요구될 법하다. 대한 제국의 여자들은 ‘조선 여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은 정치 풍자 우화형식을 빌어 볼셰비키 혁명 이후 스탈린 독재화의 소비에트를 비판하였다. 나아가서 영국이나 독일을 풍자의 대상으로 올려놓기도 했다. '배반 된 혁명', '타락하는 독재 권력'에 대해 동물을 의인화하여 후학들에 경각심을 불러 주었다. 오웰의 풍자는 시간이 지나도 엄청난 힘을 지니고 걸어간다. 작가는 작품을 통하여 자각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 정치적 목적과 예술의 목적을 융합하여 완벽한 구성, 예리한 통찰력, 부드러우면서도 박진감이 넘치는 문장으로 날카로움의 극치를 보여 주는 작품이 <동물 농장>이다. 오웰의 많은 작품에서도 빼어나다는 평단의 칭찬을 받으며 세계의 독자에게 불후의 명작으로 읽히고 있다. 오웰이 그러하듯 김민기(金敏基, 1951~2024)는 칼이 아닌 음유시인으로 가슴을 적신다. 노래를 듣는 이는 광장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마력도 가졌다. 노래는 합창하게 한다. 스스로 어눌함으로 살아온 김민기는 대학로의 건강한 연극의 중견 사업가다. 주먹구구식의 연극 경영을 4대보험을 들어주는 경영수완을 보였다. 거리에 포스터나 붙이던 연극인이 4대보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하이쿠(俳句) 시는 17자의 짧은 장르다. 정형 운문으로 450년 전부터 일본의 상류사회, 서민사회까지 사랑을 받았다. 짧은 시는 긴 시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 몇 마디의 말, 눈빛, 손짓 같은 것으로 언어 너머의 것을 이야기한다. 바쇼(芭蕉)는 학인들에게 이렇게 권고한다. "모습을 먼저 보이고 마음은 뒤로 감추어라." 시의 의미는 뒤로 감추고 모습(形)을, 풍경을 먼저 보이라는 것이다. 설명하지 말고 묘사를 말한다. 자신의 감정을 직접 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이류라 하는 것은 옳다. 하이쿠는 눈으로 보이고 눈으로 만질 수 있는 가시적인 것을 보인다. 17자로 구성되는 한 줄의 정형시는 계절과 자연을 노래하면서 인간의 실존에 가장 근접한 문학으로 평가받는다. 문명권에서 창작된 가장 짧은 장르에 꼽힌다. 그러고 보면 유럽에서는 소네트, 일본의 하이쿠 한국의 시조가 일정 부분 비슷한 면을 공유한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비롯해 많은 시인은 자국어로 하이쿠 시를 만들었다. 영국의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시인이나 아르헨티나의 대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는 하이쿠를 즐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송준근 회장이 2022년 8월에 별이 됐다는 소식을 2년이 지나서야 우연히 알게 됐다. 내가 그를 만나게 된 것은 16년 전이다.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김년균 이사장)과 2008년 해외 심포지엄과 문학상 시상식을 위해 뮌헨으로 갔다. 해외 문학상은 조국을 떠나 해외에서도 모국어인 한국어로 작품을 쓴이에게 주는 상이다. 당시 17회째인 해외 문학상 수상자는 '배우수업'의 강유일 소설가다. 강유일 작가는 독일의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독일 문학연구소 문학창작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강 작가는 2005년 '피아노 소나타', 1987년 '배우수업' 소설이 독일에서 번역되어 출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수상식을 한 후 문인협회 작가들은 뮌헨에서 두 시간 남짓의 거리에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는 작가 이미륵(1899~1950) 박사 묘소를 가게 됐다. 이미륵 작가는 1946년 전후 독일 문단을 놀라게 한 작가다. 소설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는 남부 독일 언론의 쟁점이 되어 100여 개의 신문이 그의 작품을 소개했다. 소설은 독일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이미륵은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세계적인 작가로 이름을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교보빌딩 지상 주차장 옆 화단을 지나면 팻말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박인환 시인이 살았던 집터를 알린다. 시인의 대표작 '목마와 숙녀'는 도시적 감각을 떠올린다. 노래를 부른 박인희 님의 청량한 미성과 시를 낭송해 주는 목소리도 인상적이다. 사람들은 박인환 시인의 서구적 이미지와 낭만적 취향이 가득 찬 시의 느낌을 좋아한다. 박인환은 목마와 숙녀와 같이 낭만의 시인만은 아니다. 1940년대 말 암울한 시대의 상황을 그저 바라보지 않는다.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라는 동인지를 만든다. 박인환·김수영·김경린·임호권 등 신시론 동인 5인이 20편의 시를 수록하여 1949년에 간행한다. 시집의 성격은 '전쟁·속도·지축·시간·음향·시민·지구·광선·층계·국제열차·폭음' 등의 시어에서 볼 수 있듯이 도시 문명의 명암을 주로 묘사한다. '낡아 빠진 전통'에 대한 항거의 기록이다. 시집에서 박인환은 '열차·지하실·인천항. 인도네시아 인민' 등의 제재와 소재를 통해 도시 문명과 세계시민에 대한 지향성을 주지적 감각으로 노래한다. 김수영은 '아메리카타임지·공자의 생활난' 등 지적이고 현실적인 제재와 이국적 감수성을 시각으로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연필 한 자루는 140리나 되는 길이의 선을 긋거나 4만 5천 단어를 쓸 수 있다고 한다. 두 자루의 연필만 있으면 한편의 장편 소설을 쓸 수 있단다. 화가는 화랑 하나를 가득 채울 스케치를 그려낼 수 있다. 이러한 숫자의 언어 이미지로 표현하려 할 때는 프랑스 과학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의 아름다운 비유를 떠올리게 한다. "연필은 나무속에 박힌 일종의 검은 광맥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어두운 지하의 탄광을 들어가는 광부의 곡괭이질"이라는 표현을 한다. 그래서 연필을 탄필(炭筆)이 되고 다이아몬드 사촌인 탄소결정체가 삼나무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잠들다가 선비들의 필기구로 잠에서 깨어난다는 말은 시적 표현으로 들린다. 연필의 역사를 굳이 알 필요는 없겠지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그것을 알고 넘어가지 않으면 문학을 하는 선비의 자존심이라고 굳지 밝히길 원하고 있다. 연필은 1564년 영국 보로 메일 지방의 거목 하나가 폭우로 뿌리를 뽑히는 바람에 발견되던 날을 탄생의 생일이라 알려준다. 뽑힌 나무뿌리에서 많은 양의 카본(흑연)을 발견하게 된 그 지방 사람들이 그것을 검은 납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새벽이 언제 올지 몰라,/ 문을 모조리 연다,/ 새벽은 새처럼 깃털을 가졌을까,/ 아니면 해변처럼 파도가 칠까 -(소네트 1619번) 에밀리 디킨슨(Emily Elizabeth Dickinson)은 지상의 하루를 새로운 기대와 기쁨으로 여는 시인이다. 소네트 1619번에 새벽을 주제로 한 시편은 명징하다 못해 없는 새벽 소리가 만들어져 들린 듯하다.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로 한국 독자에 인사를 나눈 버지니아 울프는 에밀리 디킨슨을 들어 미국 역사상 위대한 여성 시인이라 했다. 에밀리 디킨슨은 1830년 12월 10일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나 1886년 5월 15일 별에 갔다. 살아생전, 시집을 낸 적이 없다. 별에 떠난 이후, 주변인들에 의해 전해지는 소네트 시들이다. 디킨슨을 들어 내면으로는 아무도 모르게 침잠하는 시인이라 평가하여 주기도 한다. 지상의 환희를 모아다, 사람에게 선물하고자 한 디킨슨이다. 디킨슨 생애의 문학을 들추면 한국인의 상징, 모시 적삼을 입는 여인네로 그려진다. 에밀리 디킨슨은 웰트 휘트먼과 더불어 미국 19세기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미국의 청교도 정신, 공동체적 삶의 정신을 휘트먼이 그렸다면,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망자에 대한 예절이 유난하게 큰 나라가 한국이다. 망자를 비난하거나 명예에 흠집 내는 일은 인간도리가 아니라는 것이 문화의 뼈대를 지닌 예의다. 이 같은 문제는 유교적이며 성서적이다. 청교도 정신을 유유히 이어가는 미국은 망자에 대한 진실은 더 없이 지켜간다. 전쟁에서 유명을 달리한 미군의 시체를 수습하는 장면은 미국이 자국민의 인권을 얼마나 보호하는지 하나의 본보기다. 뉴욕 9.11 테러 흔적의 상처는 크다. 미국은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것이 문화로 정착하고 있다. 희생된 이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록해 두고 있다. 심지어 건물의 잔해조차 그대로 남겨두고 있다. “절대로 잊지 않겠다”라는 의지다. 당연히 산자는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기억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희생자를 언급하며 약 1분 정도 말을 잊지 못한 장면은 지금도 영상으로 떠돈다. 그 어떤 말보다, 희생자의 삶을 기리는 의미 있는 행위다. 오바마에게는 국정 2기의 총기사건을 맞는다. 총기사고로 숨진 여고생에 대한 무모 연설은 진실의 시간이었다. 참석자들은 가슴에 녹색 리본을 달고 그 삶에 애도를 표했다.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도 천안함 희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결의 뜻은 나무, 돌, 살갗의 조직을 말한다. 성격에도 결이 있다. 결이 같은 사람이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결이 같으면 사물에 대하여 같은 결을 이야기하기 마련이다. 4월은 식목의 계절이다. 정원의 시간이다. 친구 송재구 회장과 창덕궁 궁궐을 걷는다. 역대 임금 중 가장 나무를 많이 심은 임금을 꼽는다. 기록에 나타난 정조 대왕은 나무를 1,200만 그루 이상 심었다. 정조는 능에 나무를 심어 정원의 형태로 꾸민 왕이다. 송재구 회장은 정조가 꾸민 능을 다음 주에 걸어보자 약속한다. 사람마다 심리적 결을 가진다. 정조에게는 나무에 대한 심리적 결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송재구 친구의 말이다. 아버지 사도가 뒤주라는 죽은 나무에 갇혀 죽은 것이 정조에게 심리적 트라우마로 작용할 수 있다. 송 친구는 전자업종의 경영자다. 송 친구의 정조에 대한 분석이 논리적이다.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 왕조 500년에 역대 임금의 취미나 행적에 관한 기록은 비교적 상세하다. 정조는 강의를 좋아하고 술을 좋아했다는 자료가 많다. 신뢰하는 나무위키에도 정조 대왕의 식목에 관한 기록은 한 줄도 없다. 정조가 가까이한 장약용이 아들에게 보낸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이탄 시인과 이웃에 살았다. 조우(遭遇)하는 시간이 많았다. 이탄 시인의 동인 활동 이야길 듣기도 했다. 1967년에서 1968년까지 최하림, 권오운, 이성부, 김광협 시인과 신춘 시 동인(시학) 활동을 했다. 이들은 한주 한 번씩 만나서 꾸준한 시작토론도 하였다. 이탄 시인이 한주라고 했지만 만남의 주기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이탄 시인에 의하면 최하림 시인은 늘 지각을 하였다. 나오지 않아서 연락하면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모임 시간을 잃어버린 일이 자주 있었다 한다. 토론 중 시작(詩作)의 단점을 지적받으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경우도 있었다. 다시는 나오지 않겠다. 얼굴 붉히며 휭 하고 바람을 일으키기 일쑤였다.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하니 지적받은 부분이 옳은 고침이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된다. 아무런 사과도 없이 슬그머니 나와서 토론을 다시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시 얼굴을 붉히면서 돌아서는 일이 많았다 회고하며 웃는다. 동인이란 시작을 위하여 만나고 토론하지만, 인간 깊숙이의 감정을 앞세우기도 한 것이다. 이탄 시인은 최하림 시인과의 불화가 많았다 소개하면서 피식 웃었다. 이 시인은 이외에도 1975년에는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작가에게 작품과 더불어 '시대의 지성'이라 불리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장미의 이름> 소설보다는 기호학의 대가로 알려진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2016)에게는 작가, 기호학자, 시대의 지성이라는 칭호를 불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 평론가의 이구동성이다. 그가 2016년 향년 86세로 눈을 감자 세계의 언론들은 하나같이 "21세기를 산, 위대한 르네상스인이 영원한 이름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가장 슬픈 활자를 사용해 주었다"고 애도했다. 움베르토는 철학자, 비평가였다. 이탈리아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영어, 프랑스어, 라틴어 등 8개국 언어를 구사했다. 그를 들어 언어 천재이자 기호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불렀다. 그의 명성을 알려준 소설 <장미의 이름>은 1980년 세상에 알렸다. 이 작품은 14세기 초반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을 영국인 수도사 윌리엄이 밝혀내는 과정을 그린 추리 소설이다. 윌리엄과 주변 인물을 통해 종교재판 등 중세사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이 소설은 40여 개국에 걸쳐 총 2000만 부 이상이 팔렸다.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오월에는 계절의 여왕을 대표하는 장미, 라일락, 붓꽃이 손을 들고 얼굴을 내민다. 그중에 붓꽃은 한국, 일본 중국의 들판에 자생하는 야생화다. 그 붓꽃이 생명력은 강하지만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식물이다. 기후위기를 살아가는 노년층이 붓꽃과 닮았다는 취지의 퍼포먼스의 사진 한 장이 조간 신문에서 눈길을 끈다. 평균 63세의 ‘어르신’이 회견을 하고 “기후위기는 노년층에게 생명 박탈의 위험”이라고 주장한다. 환경부가 2020년 발표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 보고서를 보면, 폭염증가·기온상승으로 인한 사망·질병은 65세 이상 고령 인구에서 많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됐다. 진정인들은 10년 새 폭염수가 길어져 2018년에 65세 이상의 온열 질환 사망자 수가 연평균 2배 이상이었다는 내용을 담았다. 63세 노인 123명이 국가 인권위원회 앞으로 진정서와 함께 멸종 위기종인 붓꽃종이 모형을 들었다. 야생 붓꽃멸종은 노인의 죽음과 무관치 않다는 의미다. ‘어르신’들이 들고 있는 사진은 2023년 10월 세상을 떠난 노벨상 작가 루이즈 글릭(Louise Elisabeth Gluck, 1943~2023)의 ‘야생 붓꽃’ 시가 떠오른다. 루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