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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접미사로 시의 맛을 살려낸 김춘수·박재삼 시인

글 /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화 평론가)
단어의 끝에서 피어나는 시의 생명…접미사, 언어의 끝에서 울림을 만드는 힘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박재삼, 김춘수는 시의 수정체를 '접미사'로 빛낸 시인으로 꼽힌다.

시란 언어가 자기 자신을 다시 낳는, 곧 탄생의 자리이다. 사전적 의미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숨결로 다시 피어난다. 시는 언어의 구조를 해체하는 예술이 아니라, 그 구조의 끝에서 호흡을 살리는 영감(靈感)의 예술이다.

단어의 끝, 말의 꼬리에서 우리는 종종 감각의 푸른 얼굴을 만나게 된다. 그 끝에 달라붙은 작은 음절, 바로 '접미사'는 시의 숨결을 만들어내는 은밀한 신술(神述)이다.

문법책에서 접미사는 단어의 뒤에 붙어 의미를 바꾸는 도구로 정의된다. 그러나 시 속에서는 훨씬 더 깊은 의미를 품는다. 접미사는 시인이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앵글)이자, 언어의 온도를 올리는 ‘언(言)’ 끝의 결정이다.

접미사는 단어의 끝에서 정서의 울림을 만들고, 의미의 리듬을 새롭게 조율하며, 사물과 인간을 다시 연결한다. 시인은 그 작은 말의 조각을 통해 존재의 온도를 조절하고, 언어의 생명력을 다시 불어넣는다. 조금 과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언어의 창조 행위, 즉 천지 창조의 역할에 가깝다.

김춘수의 '꽃' – 존재의 접미사 '이름'

김춘수의 대표작 '꽃'은 접미사의 본질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서 '이름'은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존재의 완성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언어의 종결에서 피어나는 창작의 순간이며, 김춘수에게 '이름'은 존재의 접미사였다.

'꽃이 되었다'라는 문장 속에는 존재의 인식 변환이 담겨 있다. '되다'라는 말은 단순한 상태의 변화가 아니라 실존의 전환이다. 그 전환의 문턱에는 '이름'이 있다. 이름이 붙는 순간, 무명(無名)의 세계는 의미의 세계로 옮겨간다.

김춘수의 시는 언어가 단순히 사물을 지시하는 표지가 아니라, 존재를 불러내는 부름임을 보여준다. 이름은 존재의 꼬리표가 아니라 그 존재의 뿌리이며, 언어의 접미사는 사물에 생명을 잇는 호흡의 자리이다.

박재삼의 시 – '결'과 '살이'의 언어적 촉감

쉬운 시를 잘 만드는 박재삼의 시에서도 접미사는 중요한 시적 에너지로 작용한다. 그의 시에는 '물빛', '바람결', '눈물살', '세월살이' 같은 단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 단어들은 사전에 이미 존재하거나, 시인이 새롭게 창조한 조합이다. '바람결'에서 '결'은 바람의 흐름과 질감을 표현하며,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감각의 촉감을 만들어낸다. '결'은 사물의 표면과 내면, 현실과 정서의 경계를 이어주는 감각적 다리이다.

'살이'는 더욱 흥미롭다. 원래 ‘살다’에서 파생된 말이지만, 박재삼의 시에서는 한 인간이 살아내는 시간의 감정적 결을 뜻한다. '세월살이', '그리움살이' 같은 표현에서 '살이'는 삶의 덧없음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생명의 지속을 품고 있다.

박재삼은 말을 통해 한 생애의 촉감, 마음의 피부를 표현했다. 접미사는 단어의 끝에 붙지만 의미의 흐름을 끊지 않는다. 오히려 그 끝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이어준다.

말의 끝에서 피어나는 리듬과 낯섦

'물빛 바람결에 내 마음이 흘러간다' 같은 구절을 읽어보면, '빛'과 '결'의 반복이 리듬의 진동을 만들고,'‘흘러간다'의 장음(長音)이 그 리듬을 완성한다. 접미사는 단어의 형태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시의 호흡과 리듬을 결정짓는 요소이다.

시에서 접미사는 낯설음을 창조한다. 시인은 문법의 규칙을 넘어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며, 그 낯섦은 언어의 감각을 새롭게 하고 세계를 다시 느끼게 한다. 그것은 언어의 해체가 아니라 언어의 부활이다.

언어의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생명

김춘수에게 '이름 붙임'은 무명의 세계를 존재의 세계로 끌어올리는 창조의 언어였다. 박재삼에게 '결'과 '살이'는 세계의 감각과 인간의 정서를 잇는 다리였다.

접미사는 문법의 장식이 아니라 관계의 문법, 연결의 미학이다. 언어의 말단에서 시작된 존재와 존재의 만남, 그것이 곧 시의 본질이다.

언어의 끝은 곧 존재의 시작이다. 시인은 단어의 꼬리에서 세계의 얼굴을 본다. 김춘수의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는 언어의 종결에서 피어난 창조였고, 박재삼의 '살이'는 언어의 끝에서 다시 이어지는 생명이었다.

시의 끝, 그리고 다시 시작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이 짧은 구절 속에는 언어의 신비가 모두 들어 있다. 부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접미사는 종결이 아니라 생명이다. 언어의 끝에서, 말은 다시 피어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가 태어난다.

시의 언어는 논리나 문법의 질서 안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어의 경계가 풀리는 자리, 말의 끝에서 다시 피어나는 생명의 경험이다. 김춘수의 '이름'과 박재삼의 '결', '살이'는 그 문을 통과한 언어들이며, 그 문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본다.

접미사의 자리

- 최창일 시인

단어의 끝에 와서
조용히 세상을 바꾸는 언어,

‘다’로 마침표를 찍고
‘음’으로 사유를 열며
‘이’로 관계를 잇는다.

접미사는 말의 꼬리에서
새 뜻을 잉태하는 씨앗,
끝에서 시작되는 시작이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화평론가)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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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시인협회, 2026 창작지원 제3차 특강 개최… "나는 시인인가?" 존재를 향한 질문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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