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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희 시인, 신작 시집 <별들의 보고서> 출간… 내면과 우주를 잇는 사유의 서사

존재의 흔적을 별빛으로 기록하는 시적 장부… 별빛으로 기록한 존재의 문장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검은 밤하늘을 하나의 '기록'으로 읽어내는 시인의 시선이 도착했다.

박세희 시인이 최근 신작 시집 <별들의 보고서>를  주식회사 도서출판 등대지기를 통해 존재와 시간, 사랑과 기억을 하나의 우주적 문장으로 엮어냈다.

이번 시집은 삶과 죽음, 내면과 세계를 잇는 깊은 사유의 결을 담아낸 문학적 성과로 주목된다.

소백산 아래 초가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웠던 박세희 시인.

그 꿈을 품고 서울로 올라온 그는 1993년 <문학과 의식>으로 등단한 이후, 한결같은 시적 여정을 걸어왔다.

시집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탐문해온 그는 현재 계간 <문학에스프리> 발행인으로 활동하며 문단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다.

이번 시집 <별들의 보고서>는 그러한 그의 문학적 궤적 위에 놓인 또 하나의 깊은 결실이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끝나도 돌아오는 것들이 있다 / 그것이 계절이고 사랑이었다"고 밝히며, 순환과 귀환의 사유를 시집 전반에 펼쳐 보인다.

이숭원 문학평론가(대한민국 예술원 회원)는 그의 시를 "존재론적 사유에 상상력의 뿌리를 둔 시 세계"로 규정한다. 시인은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밀고 나가며, 시 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고 삶의 방향을 조율하는 수행적 태도를 견지해왔다.

이러한 성향은 그의 시를 단순한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실존적 탐색이자 윤리적 실천으로 확장시킨다.

이숭원 평론가는 "박세희 시인은 시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진지하게 되묻는다"라며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시 쓰기는 자신의 사유를 온축하고 확장하는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이숭원 평론가는 이어 "때로 사랑을 노래하기도 하고 절망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그 정념도 사유의 기반 위에서 작동한다"라며 "사유가 극점에 이르면 그의 시 쓰기는 고행 수도자의 정진을 연상시킨다. 그는 자신의 영육을 바쳐 생의 깨달음에 이르려는 수행자의 면모를 보인다"고 평했다.

또한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는 박세희 시의 본질을 '사랑과 견인(堅忍)의 정신'에서 찾는다. 사물과 마음이 서로를 비추며 생성되는 그의 시는, 오래된 슬픔을 눈부심과 고요로 전환시키는 언어의 힘을 지닌다.

유성호 평론가는 "시인은 사물의 소리와 모습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서로 비추어가면서, 삶이란 오랜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반추하는 과정이라고 노래한다"며 "이때 박세희 시에는 남다른 온기가 번져가는데, 그리움과 따뜻함을 주조로 하는 위안의 언어를 통해 아름답게 점화(點火)하는 서정의 정점을 매혹적으로 이루어간다"고 말했다.


사유의 흐름을 따라가는 네 개의 장

이번 시집은 총 제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는 하나의 사유의 결을 이루며 점층적으로 확장된다.

제1부는 '한계령을 넘으며', '봄의 특강', '이팝나무 아래', '별들의 보고서' 등으로 이어지며 자연과 존재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선이 중심을 이룬다. 일상의 풍경 속에서 존재를 묻는 질문이 솟아오르고, 사유의 출발점이 마련된다.

제2부는 '마두금이 울리는 저녁', '고비사막', '서울에는 한강이 있다', '검룡소' 등 공간과 이동의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이 부에서는 시인의 내면이 외부 세계와 교차하며 기억과 시간의 층위를 확장한다.

제3부는 '모든 사랑은 오해다', '능소화', '안녕이란 말은 지구처럼 둥글다' 등 관계와 사랑, 존재의 본질을 탐문하는 시편들이 배치되어 있다. 인간 내면의 복합적인 감정과 아이러니가 가장 밀도 높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제4부는 '모란이 지고 작약이 피듯', '침묵의 언어', '살아봐야겠다', '동강할미꽃' 등으로 이어지며 수용과 성찰의 단계에 이른다. 사라짐과 이어짐, 그리고 다시 살아가려는 의지가 고요하게 흐른다.

이러한 구성은 자연에서 출발해 인간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갔다가 다시 삶으로 귀환하는 순환적 구조를 이룬다. 시집 전체가 하나의 긴 사유의 여정으로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시집의 표제작 '별들의 보고서'는 이러한 시 세계를 상징적으로 압축한 작품이다. 밤하늘을 하나의 기록 장부로 바라보며, 존재의 흔적들이 별빛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는 시적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별들의 보고서

- 박세희

밤은 끝없이 펼쳐진 장부
검은 종이 위에 흩뿌려진 빛의 문장들이
서로의 흔적을 맞대며 이어진다
어떤 별은 태어난 지 하루된 아이처럼
짧은 문단으로 떨리는 불꽃을 남기고
어떤 별은 수천만 년의 호흡으로 끌어안아
거대한 장편의 서사로 기록된다
지상에서 꺼져간 이름들이
하나둘 은하의 여백에 적히면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고 선으로 연결된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것을 별자리라 불러왔고
별자리는 사실 보고서의 각주이자
떠난 이들의 서명이라는 전설이 남아 있다
별빛의 줄기는 길고도 고요하여
누군가는 그것을 운명의 사슬이라 읽고
누군가는 잊혀진 서약이라 해석한다
바람에 흩날린 유언조차
우주에서는 빠짐없이 받아 적혀
한밤의 천장에 기록된다
그 기록이 쌓이고 쌓이면
어둠은 빛으로 구멍 뚫린 천막이 되고
하늘은 하나의 방대한 보고서가 된다
그곳에서 죽은 자와 산자는
같은 행으로 이어져
서로를 바라보며 잠든다
빛과 그림자가 함께 적히는 그 문서에는
결코 완결이 없으며
오직 끝없이 이어지는 문단만 있다
밤마다 펼쳐지는 이 보고서는
읽는 눈이 없어도 쓰이고
쓰는 손이 없어도 흘러간다
별들이여 그렇게 계속 이어져라
지상에서 흩어진 목소리들이
하늘에 다시 모여 하나의 별자리가 될 때까지


- 표제시 '별들의 보고서' 전문

이 시에서 밤은 '장부'가 되고, 별은 '문장'이 된다. 인간의 삶과 죽음은 하나의 문서 안에 함께 기록되며, 존재는 우주적 서사의 일부로 편입된다. 시인은 보이지 않는 것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존재의 영속성을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한편, 시집에 수록된 '폭설 2'는 전혀 다른 결의 긴장감을 보여준다. 이 시는 '순수'라는 이름 아래 덮여버리는 존재의 진실을 강렬하게 고발한다.

폭설 2

- 박세희

내 죄를 덮지 마라
흰 것들아
용서라는 이름으로
나를 흡수하지 마라
나는 아직 뜨겁다
손끝의 피가
눈보다 먼저 굳는다
피 위로 또 눈이 내린다
세상은 정결이라는 이름의 무덤이다
신도, 죄도, 벌도, 모두 백색이다
그 안에 갇히면
누구도 더럽지 않지만
아무도 살아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더러움을 원한다
살의 냄새, 욕망의 문장,
잠시라도 나였던 것의 흔적들
제발 감옥에라도 가게 해줘라
벽이라도 있어야 부딪힐 텐데
흰 것들은 벽조차 삼킨다
부서질 권리도 사라진다
나의 유죄를, 유일한 증거를,
감쪽같이 백지화 마라
흰 것들은 순수하지 않다
그건 기억의 사체다
세상은 부조리 위에 눈을 덮고
그걸 평화라 부른다
그러나 평화는 얼음의 다른 이름이다
살아 있는 것들은
늘 피가 좀 묻어있다
계속되는 고문처럼 눈은 내리고
나는 내 삶의 유죄를
끝까지 뜨겁게
껴안는다

- 수록시 '폭설 2' 전문

이 시는 '백색'이라는 상징을 통해 순수의 폭력성을 드러낸다. 덮어버림으로써 지워지는 존재의 진실에 저항하며, 시인은 오히려 '더러움'을 통해 살아 있음의 증거를 붙든다. 이는 존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삶을 향한 치열한 윤리적 태도다.

박세희 시인의 이번 시집 <별들의 보고서>는 고요한 별빛과 거센 폭설이 공존하는 시집이다. 사유와 감각, 서정과 철학이 교차하는 이 작품은 독자에게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문장으로 기록되고 있는가.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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