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인류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자원은 ‘물’이었다. 인류 최초의 정원인 에덴동산은 두 줄기의 강물에서 시작되었다. 철학자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 정의했다. 생명은 물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인류의 문명은 늘 물을 둘러싼 투쟁과 협력 속에서 전개되었다. 강이 흐르는 곳에 사람이 모여 살았고, 그곳에서 도시와 국가가 세워졌다. 물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문명의 토대였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이 물을 '저수'하기 시작한 순간은 곧 문명의 출발점이었다. 기원전 6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유역,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주변에서는 계절마다 반복되는 범람과 가뭄을 대비하기 위해 인공 저수지가 만들어졌다. 이는 단순한 저장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공동체적 선택이었다. 이집트의 나일강도 마찬가지였다. 나일강의 범람은 기름진 토양을 주었지만, 동시에 불확실성을 안겼다. 이를 제어하기 위해 파라오는 관개와 저수 시스템을 구축했고, 그것은 곧 국가 권력의 기반이 되었다. 중국 황허강 주변의 초기 농경사회도 큰 강의 범람을 막고 물을 모으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그들에게 물은 곧 생존의 열쇠였고, 물을 다스리는 자가 천하를 다스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K-드라마', 'K-팝', 'K-한식'까지.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 주자는 무엇일까?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감독 메기 강은 주저 없이 말한다. "이제는 트로트(Trot)의 시대가 올 겁니다. 나의 다음 애니메이션 주제는 트로트입니다." 한류의 물결 속에서 트로트라는 장르는 한때 '올드하다'는 인식에 가려져 있었다. 젊은 세대와는 거리가 있다고 여겨졌고, 세계 대중문화와는 더더욱 연결고리를 찾기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고, 사람들의 감성은 다시금 원형으로 향하고 있다. 그 중심에 바로 '트로트'가 있다. K-팝이 세련된 안무와 강렬한 사운드, 열성 팬 문화로 세계를 사로잡았다면, 트로트는 다르다. 화려한 겉모습보다는 그 속에 담긴 감정, 즉 '한(恨)'과 '흥(興)'의 미학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메기 강 감독이 밝힌 "관객들이 원하는 건 '진짜'다"라는 말은 곧 트로트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트로트는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다. 그 안에는 한국인의 정서, 서사, 감정선이 농밀하게 녹아 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별, 기다림, 눈물, 그리고 다시 일어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시는 흔히 '언어의 예술'이라 불린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시란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언어를 모아내는 작업이다. 흩어져 있는 언어의 파편을 주워 모아 반짝이는 질서로 배치하고, 일상의 말을 빛나는 음악으로 바꾸는 일. 이것이야말로 시인의 소명이다. 세상의 언어는 너무 많다. 그러나 그중에서 아름다운 말, 인간의 영혼에 울림을 주는 말은 드물다. 시인은 그 드문 언어를 알아보고, 한 편의 시 속에 보존하는 사람이다. 고대의 서사시인에서 현대의 자유시인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행위는 본질에서 언어를 모으는 일이었다. 시인은 무엇을 모으는가. 그것은 단순히 '단어'가 아니다. 시인이 모으는 것은 의미와 울림, 감각과 정서다. 언어가 인간의 입술에서 떨어져 나올 때 그것은 흔히 무채색의 소리로 흩어지지만, 시인은 그 소리에 색을 입힌다. 무지개의 시인, 워즈워스는 "시는 강렬한 감정의 자발적 흘러넘침"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흘러넘침이 언어의 질서를 만나지 못한다면, 시는 산문과 다른 바 없다. 시인이 하는 일은 바로 그 언어의 바다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조각을 수집하고 배열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집의 과정은 사소한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편집국장 = 매년 전 세계 문학계가 숨죽이는 노벨문학상 시즌이 돌아오면, 한국 문단에도 기대와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식 추천권이 없는 현실에서 일부 단체가 '노벨문학상 추천기관'을 자처하며 문인들을 현혹하는 일이 벌어진다. 진짜 한국 문학의 세계 진출은 어디에 있으며, 한강 작가가 보여준 진정한 길은 무엇인지 살펴본다.[편집자주] 가을마다 되살아나는 질문이 있다. 매년 10월,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스웨덴 아카데미 회관 앞에는 전 세계 언론과 문학인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올해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한국 문단도 예외가 아니다. 온라인과 신문, 방송에서는 "한국 작가가 유력하다"는 기대 섞인 추측이 돌지만, 정작 한국에는 '노벨문학상 후보를 공식 추천하는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후보자와 추천인의 명단은 50년간 비공개된다. 이 때문에 누가 한국 작가를 추천했는지, 또 몇 차례 추천이 이뤄졌는지는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 이 비공개 원칙을 악용해 일부 단체나 개인이 '우리는 노벨문학상 추천기구'라고 내세우며 문인들을 현혹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들은 추천 절차와 관계없는 회원 가입이나 상장, 행사 참여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가 세상에 나온 지 반세기가 지났다. 그러나 책이 던진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책을 읽고, 소개하고, 그 의미를 되새겼다는 이유로 학자와 작가들이 '이념적 편향'이라는 비난을 받는 현실은 당혹스럽다. 단지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정체성이 의심받고 사상의 색깔이 덧씌워진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 지식 풍토다. 우리 사회는 지식인의 글을 텍스트로 읽지 않는다. 먼저 그 사람의 소속과 좌표부터 확인하려는 습성이 만연하다. 이영희의 책을 읽었다고 하면, 내용보다 그 사람이 어느 진영에 속했는지가 먼저 논의된다. 독서란 사유의 시작이어야 한다. 세종과 정조대왕이 그러했다. 그러나 21세기, AI 시대에도 책 한 권이 '사상 검열'의 대상이 된다. 그것도 같은 화이트칼라 집단 내부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점이 씁쓸하다. 지식인은 시대를 통찰하는 새로운 언어를 제시하는 존재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지성은 여전히 낡은 이념의 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좌우의 프레임, 해묵은 지역감정, 이념으로 줄 세우는 풍토는 사유를 가로막는다. 이념은 원래 현실을 꿰뚫는 렌즈였으나, 지금은 다름을 배척하고 대화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新자산어보>(인간과문화사, 2016), 손해일 시집을 피서 독서 목록에 넣었다. 명징한 시어와 해박한 지식에 감탄한다. "삼복더위에 최고봉의 보양식은 정1품 민어탕, 정2품 도미탕, 정3품 보신탕이니 여봐라! 민어(民魚)로 하여금 ‘보국안민(報國安民)’케 하라." <참백성 고기 민어> 시의 일부 구절이다. 시인의 청정한 언어를 대하면서, 왕정(王政) 시절 조선은 물고기까지 품계를 주었다는 사실에 감탄하게 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돌이켜보아도, 조선은 분명 특별한 나라였다. 왕의 수라상에 오르는 음식은 단순한 식재료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생선일지라도 왕의 입에 닿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백성의 국물 재료가 아닌 '조선의 얼굴'이자 '국왕의 취향'을 담은 국격이었다. 생선이 궁궐의 품을 받는 순간, 그것은 엄정한 절차와 위계를 거쳐야 했다. 고기를 잡는 어부부터 물류를 담당하는 수군(水軍), 관리, 수라간 상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손을 거쳐야 비로소 국왕 앞에 설 수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지방에서 생산된 특산물을 중앙에 바치는 '공물' 제도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어물’은 계절마다 엄정하게 정해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최은하 시인은 대구탕을 좋아했다. 그러나 대구는 알탕이 제격이라 말한다. 선생은 부드러운 대구 알탕을 앞에 두고 대구에 대한 놀라운 상식들을 풀어놓곤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국문학을 전공한 시인의 폭넓은 독서가 실감난다. 대구 이야기는 정자에서 시작된다. 정자란 종족 보존의 시작이다. 생명이 살아남아 다음 세대로 유전자를 전달하는 과정은 단순한 본능을 넘어서 장대한 생명의 드라마다. 그 드라마의 서막은 바로 '생식세포'에서 열린다. 그중에서도 수컷 개체가 방출하는 정자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중 '정자의 제왕'이라 불릴 만한 생명체가 있으니, 바로 대구(Gadus morhua)다. 주로 대서양에 서식하는 대구는 단순한 어종이 아니다. 수억 년을 진화하며 바다 생존의 전략을 체득한 존재다. 대구 수컷 한 마리는 번식기마다 무려 수십억에서 수천억 개에 이르는 정자를 바닷물에 방출한다. 왜 그렇게 많은 정자가 필요할까? 답은 암컷에게 있다. 암컷 대구는 한 번 산란에 5천만 개에서 많게는 2억 개의 알을 낳는다. 이 어마어마한 양의 알을 수정시키기 위해 수컷은 말 그대로 정자의 바다를 만들어야 한다. 체외수정 방식의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어이없는 질문을 ChatGPT에게 해본다. "시(詩)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의외의 대답이다. "파시즘(Fascism)"이라고 답한다. 파시즘은 20세기 유럽에서 등장한 전체주의적 정치 이념이다. 개념은 단순히 독재를 넘어 훨씬 복합적인 사상적·정치적 현상을 이른다. 어원은 라틴어 'fascis'에서 유래했다. 이는 "막대기 다발"이라는 뜻으로, 고대 로마에서 권위와 단결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파시즘은 국가 또는 민족의 절대적 우위를 주장하며, 개인의 자유를 억제하고, 강력한 지도자와 군국주의적 질서 아래에서 통합을 도모하는 전체주의 체제다. '파시즘의 역사(최초)'로 알려진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Amilcare Andrea Mussolini)는 1922년 이탈리아에서 "국가 파시스트당"을 이끌고 집권했다. 노동운동과 공산주의의 확산에 반발해 "질서", "권위", "민족 통합"을 강조했다. 국가는 유기체이며 개인은 그 부속일 뿐이라는 철학을 발전시킨 것이다. 여러 학자의 이론을 차용한 ChatGPT는 이러한 학설을 바탕으로 시(詩)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파시즘이라고 대답한 것으로 보인다. 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