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강기옥(시인·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 태어나자마자 울음을 터뜨리지 않는 아이는 정상이 아니다. 세상에 태어난 기쁨이든 두려움이든 울음은 자신의 탄생을 알리는 언어의 변형이다. 인간의 삶은 그렇게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표현하는 언어로 시작한다. 미분화된 상태의 울음은 점차 세련된 언어로 발전하며 예절과 도덕적 성숙도를 동반한다. 누구나 탄생 초기에는 떼를 쓰는 육탄적 방법으로 표현하였기에 태어나면서부터 완벽한 언어를 구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류사에서 생물학적 한계를 초월한 인물이 있었다. 신앙적 시각으로 접근해야 이해할 수 있는 '고타마 싯타르다'다.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탄생게(誕生偈)를 외친 카필라 왕국의 왕자는 가장 완벽한 인간의 탄생이었다. 상식적으로는 감탄보다 전설이나 신화로 받아들여지는 신이(神異)한 언동이지만 불자들에게는 절대적 숭앙의 가치를 지닌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보지도 않은 핏덩이가 왜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하늘 위와 땅 아래에서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고 외쳤을까. 위대한 인물의 종교적 형성 과정은 신앙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이해가 가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시인에게는 정신의 가방이 있다. 이 정신의 가방은 시인의 생명이며 그 나라의 히스토리다. '바람과 눈물사이' 시집은 권일송(1933~1995. 순창출신) 시인이 1980년대 말쯤에 발표한 작품이다. 70~80년대 시인들은 늘 시대와의 불화 속을 거니는 시간들이었다. 그들이 마시는 한 잔의 소주는 시대의 항거였다. 어느 골목이던 시인이 자리한 술집은 독립투사들이 모이는 만주의 들판이다. 바람이 일고 황량하다. 한잔의 소주잔에는 만주벌판을 달리는 칼바람소리가 들어있다. 권일송 시인의 '바람과 눈물사이' 세 번째 페이지에 올려 진 시 한편은 70~80년대 그날의 함성이 들린다. 과녁을 조준(照準)하라!/ 무너지는 복판을 향해/ 아우성치며 달겨드는/ 반란의 니그로들/늪에 갇힌 것들은 모조리 일깨우고/ 소리 나지 않은 종을 울려서/탄생의 아픈 순간에 세우노니/울어라 씽씽 마파람이여 / 살갗이 터져서 아픈 울음을/속으로 도져서 으깨신 몸살을/ 망각의 들판 위에 흩뿌리는가/ 아이야야얏… /선비피 낭자한 옥양목 하늘/ 쇳소리 한 마당 풀무질 한 채/ 사납게 일렁이는 바람의 기둥('회초리' 시 전문)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아도 70년대를 살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본지 편집국장/시인) = 늘 종종걸음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종종걸음으로 일과를 마치는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아침 출근길이나 퇴근길, 또는 퇴근 후 잠시 갖는 산책길에서 만나는 들꽃 풍경은 언제 보아도 정겹고 운치가 있다. 설령 기분이 울적하더라도 거리를 산책하다 보면 울적한 마음이 곧 사라지고 즐거운 마음이 들곤 한다.엊그제 퇴근 무렵 도심의 복잡한 상가 한편에 핀 각종 아름다운 꽃들과 함께 흰 들꽃도 자세히 보게 되었다. 여름철 산과 들은 물론이고 공원이나 도로 옆길 가장자리에도 잡풀이 있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몇 개 또는 군락을 지어 피어나는 꽃이다. 하얀 '개망초꽃'이다. 개망초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귀화식물이다. 내 고향 전라도 지역에서는 개망초라는 이름보다는 '담배풀, 또는 '계란 꽃'이라고 부르던 이름이 더욱 친숙하게 다가오는 꽃이기도 하다. 또한, 꽃을 피우지만 강한 생명력과 번식력 때문에 농부들이나 공원 관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잡초이기도 하다. 그래서 관상용 꽃으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잡초로 천대받는 꽃이다. 그동안 무심히 지나쳐 왔던 '개망초꽃'이었지만 이날은 개망초가 그렇게 미운 꽃일까를 생각해 봤다.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391년 전 네덜란드에서는 바이러스에 걸린 변이종의 꽃을 두고 열광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열광은 지금의 비트코인과 똑 같다. 투기가 되어 돈을 번사람, 엄청난 재산을 날리는 사람도 나왔다. 훗날 사람들은 그 당시를 '튤립 꽃 광(狂) 시대'라 불렸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 1802~1870)는 시대상을 투영, '검은 튤립'이라는 소설을 썼다. 네덜란드의 국화인 튤립은 터키도 국화로 사용한다. 본래 랄레(lale)라고 불리던 튤립은 마치 터번(Turban)처럼 생겼다. 이슬람, 아랍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터번이 튤립에서 유래되었다는 여담(餘談)도 있다. 비록 한때지만 네덜란드인들에게는 알뿌리 하나로 경제를 흔든 파멸의 꽃이다. 하지만, 네덜란드인들에게 지금도 사랑스러운 꽃이라는데 어찌할까. 한해에 90억 송이 이상의 튤립을 재배한다. 75억 세계인들에게 한 송이를 전해주고 남는 양이다. 당시,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면, 바이러스의 존재를 모르는 시대다. 병에 걸린 튤립을 보며 '신의 꽃'이라 열광 했다. 사람들은 생소한 튤립의 탄생에 경외감을 가졌다. 그런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라일락은 물푸레나무과 수수꽃다리 속에 속하는 교목으로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산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북한산 지킴이 노릇을 한 나에게 북한산을 제일 먼저 오른 사람을 기억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나무꾼'이 아니냐며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다. 라일락꽃은 나 말고도 유럽의 남부지방, 따뜻한 곳에 이런저런 종들이 살고 있다. 시간은 흘러 새로운 종들이 탄생, 지금은 그 종의 수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물론 알려 들면 모를 리 없지만 나는 그리 한가한 식물은 아니다. 한 가지 유념할 것은 도봉산의 나와 유럽 종은 다소 다른 얼굴을 가졌다. 5월이면 나는 어느 꽃보다 바쁘다. 시인 노천명은 '푸른 오월'이라는 시에서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은 정오/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라고 낭송했다. 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5월에 태어났다. 그리고 오월에 세상을 떠났다. 5월을 사랑한 그는 '오월'이라는 시를 남겼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그래서 나는 오월이면 마치 시인처럼 설레고 바쁘다. 사실은 이렇게 한가한 이야기를 하려는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일부교회는 예배시작 전 준비찬송을 하면서 피아노와 함께 드럼을 치는 교회가 늘어난다. 일부교회만의 것이 중대형 교회로 번진다. 소리가 너무 커서 드럼 주변에 유리박스가 아이러니다. 드럼은 연주보다는 친다는 표현이 더 익숙하다. 친다는 것은 격정의 표현으로 와일드한 분위기, 폭풍을 연상케 한다. 교회는 신나게, 즐겁게, 젊게 의미를 둔 것으로 보인다. 교회의 분위기는 뭐니 뭐니 해도 피아노 반주의 클래식 함이다. 우리나라에 1900년 3월 26일 미국 선교사 사이드보텀(Sidebotham)이 들여 온 게 피아노의 시작이다. 대구의 사문진 나루터(현 화원동산)로 들여왔다. 121년 전에 피아노를 접한 사람들은 '귀신 통'이라 불렀다. 육중한 피아노를 상여 막대기를 이용해 옮기는 과정서 붙여진 이름이다. 달성군은 2011년부터 피아노가 들여온 날을 기념하여 '달성 100대피아노' 축제를 매년 열기도 한다. 낙동강의 석양빛 노을과 100대의 피아노 연주는 사람들의 큰 호응을 받기에 족하다. 시간은 흘러 피아노 없는 교회는 상상할 수 없다. 교회의 찬송가 반주는 피아노가 상징이다. 피아노는 세계적 악기의 명사다. 피아노 발명자는 이탈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백영규 시인은 영암의 산골에서 십자매를 기르며 목회를 했다. 백 시인은 교회 정원에 나들이 온 새들과 십자매와 사이좋게 놀게 하고 싶었다. 새장 안에서의 십자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려는 시인의 넉넉함이다. 하지만 십자매는 새장 밖의 자유 함을 누리려 하지 않았다. 새장 문 앞 50cm 정도에 모이 그릇을 두면, 십자매는 모이를 먹곤 곧장 새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백 시인은 십자매가 숲을 날다 석양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자유의 꿈을 꾸었다. 반년에 걸쳐 꾸준한 노력은 계속되었으나, 50m정도의 새장 밖에서 모이를 먹고 곧장 들어가는 것이 고작 이였다. 거기에 숲속의 새들이 십자매를 공격하기도 했다. 새는 집에서 기르는 새, 물에 사는 물새, 산에서 사는 새, 도심 속에 사는 새로 구분한다. 물새는 영하의 날씨에도 발이 동상에 걸리지 않는 자연의 신비를 타고 났다. 새는 세계적으로 8500종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396종이 살고 있다. 새는 날면서도 노래를 할 수 있는 건 폐가 인간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새는 기초대사량이 높기 때문에 매일 밤마다 체중의 10%를 잃고, 깨어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먹는다. 인간이 새와 같은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사형수가 단두대에서 처형되기 직전 머리를 받침대 위에 올려놓는다. 사형집행인이 "마지막 할 말은 없는가" 물었다. "내 수염은 잘리지 않도록 조심해 주슈. 그건 죄가 없으니…" 사형을 당하는 사람이 죽는 시간까지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다는 토머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의 정치공상소설 '유토피아(Utopia.1516)'의 중간에 나오는 구절이다. 우리의 정치인들은 물론, 너나없이 사람들의 이미지는 경직되고 있다. 선거기간에 나오는 언어는 모두가 격분의 대상이다. 아주 시시한 문제로 상대를 헐뜯는 정치인의 언행을 보면 이골이 난다. 조금은 진지해야 할 교육자, 종교 지도자까지 표독한 언어가 툭툭 튀어나온다. 그들에게 좀처럼 밝고 파안대소하는 장면은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역사속의 인물들이지만 미국의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1911~2004)은 미국 대통령 선거역사상 최대의 선거인단 크기로 이긴 대통령이다. 그의 유머감각은 널리 회자된다. 재선에 나섰던 레이건은 먼데일(Walter F(rederick) Mondale.1928~)에게 나이가 많은 것에 공격을 받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샤넬의 설립자 코코샤넬(Coco Chanel. 1883~1971)은 장미보다 동백을 좋아 했다. 그는 동백꽃을 꽃 중의 꽃이라 했다. 나폴레옹(Napoleon.1769~1821)은 그의 아내 조세핀(Josephine. 1763~1814)에게 동백꽃을 선물했다. 19세기 서양에서는 튤립처럼 동백이 투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동백(冬柏)은 혹한에서 꽃망울을 터트린다. 문인들이 혹한의 추위를 견디고 피어낸 동백과 목련을 선호하는 이유도 그런 뜻이다. 동백꽃의 꿀을 좋아하는 새는 동박새다. 동백이 피는 시간은 곤충이 없다. 동백은 향기도 없다. 동백은 오르지 붉은 색으로 동박새를 초대하여 꿀을 재공하고 수정을 한다. 그래서 조매화(鳥媒花)의 하나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1836년 권문해의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보물 제878호)'에는 선조들이 마셨던 차(茶)들 중 산다화(山茶花)라는 동백꽃차가 등장한다. 추웠던 겨울이지만 그래도 동백은 붉게 노래한다. 경남 통영 장사도에 10만 그루의 동백이 동박새를 초대하여 잔치를 한다. 여수 오동도 동백숲이 빨갛게 물들였다. 전남 강진 백련사 1500그루 동백숲은 터널을 만들어 발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창을 열자. 창을 열고 햇빛이 쏟아지는 봄의 은총을 마시자. 모멸의 추위는 갔다. 성가신 시간들이 멀어져 간다. 따뜻한 오후, 성곽 길의 흙냄새가 정겹다. 사실 흙냄새라기보다 세월의 냄새라고 해야 할 것이다. 600년 전에도 미세한 실바람이 담벼락을 긁었고, 허공의 구름을 징검다리 삼아 유영의 새들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놀고 있다. 걷다가 멈춰서 그 성곽 길에 등을 기대면 벽 안으로 스며들었던 역사의 기억들이 들리는 듯.홀로 걷는 내게 끊임없이 새로운 풍경으로 인사하듯 역사의 음성이 들린다. 성곽을 쌓던 토목기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성곽 돌의 홈을 만지고 들여다본다. 한참을 걷다보니 낙산공원의 팻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낙타의 등 모양으로 다닥다닥 모여 살았던 곳. 봄날 꿈을 보자기에 쌓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던 소녀들의 미싱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곳은 지금도 가난한 미싱사들이 맥을 이어가며 살고 있다. 10여명 중년의 남녀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다. 40을 넘긴 해설사가 낙산의 스토리를 들려준다. 슬그머니 그들의 대열에 끼어 낙산의 역사를 듣는다. 2006년 '낙산 공공 미술 프로젝트' 작업 덕분에 지금은 마을 전체가 미술관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우리가 원한다면 새벽은 다가 올 것입니다/이 끝없는 그늘에서 빛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우리가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역사는 우리를 바라봅니다/…미혼모 밑에서 자란 깡마른 흑인 소녀가 대통령이 될 것을 꿈꾸는 나라에서/…우리나라를 산산조각 낼 세력을 보았습니다/…우리가 감히 미국인이 되는 것은 우리가 물러 받은 자존심 그 이상이기에…'(노맨다 고먼 시의, '우리가 오르는 언덕' 부분) 지난 1월 20일 46대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는 시인의 취임식이라는 부제(副題)가 붙게 되었다. 22세의 시인, 어맨다 고먼(Amanda Gorman)은 상냥한 목소리로 '우리가 오르는 언덕(The Hill We Climb)'이라는 축시를 낭송하기 전 "대통령님, 바이든 박사님, 부통령님, 엠호프(부대통령의 의붓딸), 미국인 그리고 세계인 여러분"이라고 무릇 세계인의 청(請)을 불러 모았다. '바이든 박사'는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을 뜻한다. 대학 교수인 질 바이든은 남편이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강단을 지키겠다고 밝혀 직업을 유지한 첫 번째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작가 조지프 앱스타인은 월스트리트저널에 '박사로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12월은 성탄절의 달이다. 들뜬 크리스마스에는 마음 둘 곳을 찾는다. 들뜬 환경은 늘 절제가 힘들다. 그렇지만 한 인생의 성공의 결실은 절제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 "행복은 인생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 내는데 달렸다"(스벤 브링크만)고 말한다. 그는 '절제의 기술'에서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하는 것이 욕망이 아니라 절제라 설득한다. 심리적, 윤리적, 정치적, 미학적 관점에서 절제는 즐거움과 고통사이의 밸런스 속에서 존재한다. 절제의 예술가로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을 꼽는다. 베토벤은 총각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친구들은 술자리에서 그를 유럽 총각연합회 회장이라 부르며 건배도 했다. 그가 독신을 주장하거나 결혼관에 대하여 부정한 예술가도 아니다. 베토벤은 브라운슈바이크 백작의 딸인 줄리에타를 위해 피아노 소나타 ‘월광’을 헌정하며 구애 했고, 자신의 주치의 딸인 테레제와도 열열이 사랑하기도 했다. 작품 '엘리제를 위하여'는 사실 '엘리제'가 아니라 '테레제'를 위해 만든 곡으로 알려졌다. 차가운 독주를 즐겼던 베토벤은 사랑의 결실은 작품처럼 완성 하지 못했다. 평론가들은 베토벤은 작품에 대한 열정과 절제의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김규화 시인의 새 시집 '바다를 밀어 올린다'을 받았다. 제목부터 낮 설다. "사물들보다 눈에 안 보이는 내 의식 혹은 인식의 파편을 제재로 하여 쓴 것이다. 어둡고 무겁다"(김규화 시집 서문)고 짧고 굵게 한마디다. 해설자는 낮 설게 쓰기 등 현대 시법에 다양한 시법을 구사, 시인은 다분히 공식이나 등식을 거부하는 곳에서 시를 출발시키고 있다.(박진환 평론가) 무릇 "시는 없는 것을 말하는 무리들이다. 시인만이 허구를 말하는 것은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황금찬 시인) 시, 산문, 소설은 공통점이 있다. 행위는 글자의 획을 긋는 손의 움직임이 같다. 소설과 산문은 명령하고 지적하고 질문도 한다. 어느 부문에서는 하소연도 한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의미를 떠나지 않고 폭로하거나 행동의 인식이 주제가 된다. 시는 사물에 대하여 침묵으로 접근 한다. 깨끗함으로 찾아 나선다. 하늘, 땅, 물, 계절 등 모든 창조물과의 사이에서 다리를 놓고 유연한 관계를 만들어 간다. 시인은 사물을 위하여 대변하고 그들이 하지 못한 말의 뜻을 해석해 준다. 기차에서 아이가 운다. 새내기 엄마는 젖을 물린다. 그래도 아이는 자지러지듯 울음을 그치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키스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여행도 내가 스스로 걷는 것이 아니다. 설레거나, 벅찬 감정의 순간을 심장(心臟)이 시키는 것. 한시도 멈춤 없는 심장은 키스나 여행에 대하여 관심이 크다. 그것은 설렘이 부딪히는 결정체다. 결국 부딪치지 않는 것은 불륜일까?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의 문이 닫혔다. 여행을 못한 사람들의 우울게이지가 100이다. 새해, 비행기와 배를 타지 않고 국내여행의 '걷기 코스'를 잡는 것은 어떨까. 서울의 걷고 싶은 길, 1위는 덕수궁길이다. 남대문을 오른편에 두고 덕수궁 길을 돌아 정동으로 이어진다. 작은 언덕을 오르면 서울시립미술관이 된 옛 대법원이 있다. 정동교회(1882년)는 붉은 벽돌 교회로는 나지막한 것이 오히려 높은 천국이 가깝다. 교회는 한국 최초로 지어졌으며 민주화의 성지 역할을 했다. 조금 지나면 러시아공사관이 나타난다. 구한말에 지어졌으나 가슴 저린 사연을 담고 있다. 순종이 커피를 처음 맛본 장소다. 장인의 손길이 만든 돌담길은 태평로의 번잡함을 잠재우고 정동으로 이어진다. 이 고즈넉 분위기가 팡세가 말한 '군중속의 고독'일 것이다. 그곳은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 이국적인 분위기, 심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바람이 불기 전 풀이 먼저 눕는다'는 겸손의 시인, 김수영(金洙暎1961~1968)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를 그가 쓴 수필에서 일려주고 있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말들로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서산대, 벼룻돌, 부싯돌을 꼽았다. 김 시인이 좋아하는 말들은 아무래도 시인의 환경과도 연관이 있다. 김수영 시인의 아버지는 상인이었다. 장사꾼의 말들을 자연히 많이 듣고 배웠을 것이다. 그렇듯이 김수영 시인이 아름답다는 우리말은 시장의 언어들이 꽤 있다. '마수걸이'는 하루나 한 해 중 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일을 뜻한다. '은근짜'는 몸을 파는 여자를 뜻하며, '서산대'는 옛날 글방에서 학동들이 책의 글자를 짚는 데 사용하던 막대기다. 먼지떨이라는 '총채'는 요즘은 많이 쓰지 않는 도구다. 진공청소기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김 시인이 고른 아름다운 우리말은 마치 역사속의 아련한 이야기로만 들릴 수 있다. 요즘은 특별히 몇몇 작가를 제외하면 외국어를 적절하게 넣어서 사용하는 것이 ‘유식자‘처럼 되어 있다. 가능하면 듣는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면 더 식자(識字)가 된다고 꼬집는 말도 있다. 허홍구 시인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