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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창일 시인, 목마와 숙녀의 죽음

"혼돈과 타락에 맞서는 것이 시인이다"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교보빌딩 지상 주차장 옆 화단을 지나면 팻말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박인환 시인이 살았던 집터를 알린다. 시인의 대표작 '목마와 숙녀'는 도시적 감각을 떠올린다. 노래를 부른 박인희 님의 청량한 미성과 시를 낭송해 주는 목소리도 인상적이다. 사람들은 박인환 시인의 서구적 이미지와 낭만적 취향이 가득 찬 시의 느낌을 좋아한다. 박인환은 목마와 숙녀와 같이 낭만의 시인만은 아니다.

1940년대 말 암울한 시대의 상황을 그저 바라보지 않는다.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라는 동인지를 만든다. 박인환·김수영·김경린·임호권 등 신시론 동인 5인이 20편의 시를 수록하여 1949년에 간행한다.

시집의 성격은 '전쟁·속도·지축·시간·음향·시민·지구·광선·층계·국제열차·폭음' 등의 시어에서 볼 수 있듯이 도시 문명의 명암을 주로 묘사한다. '낡아 빠진 전통'에 대한 항거의 기록이다.

시집에서 박인환은 '열차·지하실·인천항. 인도네시아 인민' 등의 제재와 소재를 통해 도시 문명과 세계시민에 대한 지향성을 주지적 감각으로 노래한다. 김수영은 '아메리카타임지·공자의 생활난' 등 지적이고 현실적인 제재와 이국적 감수성을 시각으로 형상화한다. 기존의 청록파가 추구하는 전원탐구나 '생명 파'의 생명탐구에 대한 하나의 반동이자 저항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광복 후 최초로 모더니즘을 표방한 동인지다.

이렇듯 의식의 시인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1956년이다. 천재 시인 이상의 추모일을 맞아 3일 동안 술을 마시다가 갑작스러운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박인환 시인은 타인의 죽임을 늘 자신의 삶과 무관하지 않게 여겼다. 목마와 숙녀에 등장하는 버지니아 울프가 1941년 봄, 우즈강에서 자살의 소식을 알리는 날도 박인환은 우울의 잔을 비웠다.

옥스퍼드 인명사전을 만들 정도의 상당한 지성적인 평론가의 아버지를 둔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은 영국민의 일이 아니었다. 박인환은 "당신은 나에게 환상과 열병과 착각을 알려주고 그 빈사의 구렁텅이에서 우리 문학에 따듯한 손을 빌려준 정신의 동료다."라고 생각했다.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은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목마를 타고 산 숙녀와 아폴론을 따라간 30세의 박인환 시인의 마지막 유작이 된 <세월이 가면>은 박인희에 의해 우리에 불리고 있다.

박인환의 시와 그가 남긴 기록의 사진을 보면 멋의 불꽃이다. 박인환은 이 땅의 현실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현실이 괴로워도 시와 문학은 아름답고 모양새 나는 것, 우아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시에서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기록은 찾기 힘들다.

김수영은 이런 박인환을 보면서 어설픈 '유행 추종자'의 모습이라고 비판을 했다. 어느 기록에는 상종 못 할 위인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친한 사람이 적이라는 말이 여기에도 해당한다. 이렇게 박인환에 대한 세간의 여론은 목마와 숙녀와는 별개의 시선이다.

김수영의 작품은 박사 논문의 제재가 된다. 무려 500여 명의 석사와 박사가 김수영의 시를 조명하고 있다. 박인환에게는 김수영과 대조적이다. 김수영 전집의 사진만 해도 그렇다. 러닝셔츠의 마른 얼굴이 김수영 시인의 이미자다.

박인환의 전집에 나오는 기록 사진은 낭만이 가득하다. 시인 김광주와 이봉래 등과 함께 남산 산책로를 걸으며(1961년, 겨울) 만든 사진은 영화의 스틸 사진에 손색이 없다. 시집의 표지를 보아도 1940년대의 디자인이지만 요즘 시집의 표지에 비교하여도 뒤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어느 날 김규동이 만든 시집을 박인환에게 전했다. 박인환은 김규동 시인에게  "너도 시인이냐, 시집의 표지가 이 모양이냐"라고 핀잔을 주었다는 일화도 있다.

"대기(大氣)에는 희망이 있으며 그것을 듣고 고통이 생기면 그것을 느끼는 것이 시인이다. 시인은 민감한 도구이자 지도자는 아니다."라는 CD 루이스의 말을 박인환은 좋아했다.

박인환이 살았던 집터를 뒤로하고,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질문한다.

포기하지도 않고 견디는 것이 우울과 고난에 대한 해법으로 답을 내린다. 혼돈과 타락에 맞서는 것이 시인이다. 이상을 기리며 3일의 폭음으로 심장 마비를 일으키는 박인환의 죽음은 우리 문단의 손실이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화학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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