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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거목 '광장' 최인훈 별세, 향년 84세…대장암 투병 중 사망

'광장'은 남북의 이데올로기 모두 비판, 분단의 새 시각 제시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분단 문학의 상징이자 한국 현대 문학계의 거목인 소설 <광장>의 최인훈 작가가 23일 향년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4개월 전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이날 오전 10시46분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했다.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

남과 북,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질문에 중립국이라 답하는 주인공. 그리고 비극적 결말.

4.19 혁명 직후인 1960년 발표된 소설 <광장>은 요동쳤던 한국 현대사의 거울이었다.

한국 전쟁 때 부산행 피난민 배를 타고 월남한 청년 최인훈이 해방과 전쟁, 이어진 분단의 소용돌이에서 끊임없이 부딪혔던 고민의 산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작가 스스로도 <광장>을 쓰게 만든 힘은 자신의 문학적 능력이 아니라 역사 그 자체였다고 회고했다.

1934년(공식 출생기록은 1936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목재상인의 4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최 작가는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교육을 체험했다. 해방 후 밀어닥친 소련군의 진주로 함경남도 원산으로 온 가족이 강제이주를 당했다.

원산고등학교 재학 시절 6·25전쟁이 일어나자 피란수도 부산으로 향하는 해군 함정 LST편에 몸을 싣고 남쪽으로 왔다. 그는 해방과 전쟁, 분단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를 몸으로 겪어낸 셈이다. 이는 그의 작품세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전쟁'의 화두를 놓지 못한 이유에 대해 “평생 머릿속에서 전쟁과 피란을 계속해온 것”이라며 “결국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피란 다니는 것이 아닌가”라고 답했다.

목포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4학년 재학 중이던 1956년 "한국 사회의 현실이 혼란스럽다"는 이유로 학업을 중도 포기했다. 그해 군에 입대해 6년간 통역장교로 복무했다. 1959년 '자유문학'지에 단편소설 'GREY 구락부 전말기', '라울전' 등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고인은 4·19혁명의 뜨거운 열기가 채 식지 않은 1960년 가을에 발표한 소설 <광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분단체제의 상징적 지식인인 주인공 이명준은 남과 북의 체제에 절망하고 제3국 인도행을 택하지만, 결국 바다에 몸을 던진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 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는 소설 속 구절처럼 <광장>은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와 정치체제를 모두 비판함으로써 분단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전후 새로운 시대정신의 출현을 알렸다.

최 작가는 1953년 휴전협정이 조인될 당시 76명의 포로들이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으로 추방되는 것을 목격한 것이 <광장>의 집필로 이어졌다고 한다.

"아시아적 전제의 의자를 타고 앉아서 민중에겐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구정권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 저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

<광장> 발표 당시 '새벽'지에 실린 '작가의 말'의 한 구절이다. 염무웅 문학평론가는 "4·19를 계기로 이제 한국 문학은 '전시체제'를 벗어나 새로운 비약을 시작하고 있었다. 선두에 선 작가는 최인훈이었다"고 평한다.

'전후 최대의 작가'라는 평을 받았지만 고인은 시종일관 겸손했다. 2008년 등단 50주년을 맞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4·19라는 역사가 갑자기 큰 조명등을 가지고 비춰줬기 때문에 영감이나 재능이 부족한 작가도 갑자기 1급 역사관이 머리 위에 떠오르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시대의 '서기'로서 쓴 것이지 나의 문학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분단시대를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사유했던 최 작가는 최근까지도 병상에서 남북관계의 급진전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유가족은 그가 "통일보다 재통일이 더 위대하다. 처음부터 통일되어 있어 끄떡없는 것보다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했다가 여태까지의 흐름을 거슬러서 한국이 다시 통일된다면 참 위대한 일이다. 삼단뛰기라는 운동의 원칙처럼, 한 번, 두 번, 세 번, 같은 뜀박질이라도 세 번째 한 것이 더 위대하다. 그것이 변증법이라는 말의 진정한 가치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끝내 분단체제의 종식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최 작가는 <광장> 이후 <회색인>, <서유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화두> 등 장편과 '가면고', '구운몽', '열하일기' 등 중편, '우상의 집', '국도의 끝'과 같은 단편을 잇따라 발표한다. 발표작마다 정치·사회적 문제를 다뤄 "시대적 징후를 표현한 작가"(염무웅)로 표상됐다.

최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작품을 새롭게 고쳐 써 완성도를 높이고자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광장>의 개작이다. <광장>은 1960년 발표 이후 신구문화사·민음사 등 출판사에서 나오다가 개작에 가까운 대폭적인 수정 후 1976년 문학과지성사가 펴낸 <최인훈전집>에 실렸다. 이후에도 10여차례 수정됐다. 최 작가는 "정신력이 살아 있는 동안에 한 글자라도 좋은 모습으로 후대의 독자들에게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2015년 <광장> 출간 55주년에도 또 한 차례 개정판이 나왔다. <광장>은 현재까지 통쇄 205쇄를 찍었고, 여러 판본을 모두 합하면 100만부 이상이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은 희곡 창작에도 열정을 쏟았다. 1970년대 극작가로서 10년간 희곡만 썼다. 2009년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연극이야말로 인류문화와 마찬가지 연령을 가진 '위대한 예술'로,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상업적인 수지(계산) 없이 뒷받침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고인은 1977년부터 24년 동안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강단에 섰다. 2001년 정년퇴임한 후 2003년 단편 '바다의 편지'를 잡지 '황해문화'에 발표했다. 이후 신작 발표는 없었다.

외부활동보다는 작품활동에 집중한 '은둔의 작가'였던 고인은 마지막까지 작품활동에 열정을 쏟았다.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는 "새롭게 작품 구상을 하고 사유하는 일을 마지막까지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병상에서도 문병 온 제자들과 평론가들을 격려하고 작품을 다듬는 모습을 보였다. 최 작가는 2008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권 분량의 새 작품집을 낼 만한 원고를 갖고 있다. 말로 무언가를 적는 것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실험한 탐미적이고 심미적인 작품"이라고 밝혔으나 작가 생전에 신작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는 2011년 박경리문학상을 받을 당시 "글은 최소한 예술적인 훈기가 불어와야 한다. 그럴 때가 오면 쓸 만하면 쓸 것이고, 못 쓰면 못 쓰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2월엔 서울대 법대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입학 65년 만에 백발이 성성한 머리에 학사모를 썼다. 그는 당시 학위수여식에 참석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현실과 갑자기 만났다"며 "열악한 환경에서 최상의 혜택을 줬는데도 누리지 못한 그때의 내가 밉다"고 회한을 표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원영희씨와 아들 윤구, 딸 윤경씨가 있다. 장례는 문학인장(장례위원장 김병익)으로 치러진다.

최일남·하성란 소설가, 김윤식·이광호 문학평론가, 황동규·김혜순 시인 등 37명의 문인들이 장례위원을 맡았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으며 영결식은 25일 오전 8시에 예정돼 있다.

i24@daum.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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