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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끝에 걸린 삶의 진동… 박은선 시인, 다섯 번째 시집 '손톱 끝에 걸린 세상' 출간

미세한 통증과 사라질 듯한 순간들을 붙잡는 손끝의 시학

박은선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손톱 끝에 걸린 세상>을 펴냈다. 이번 시집은 삶의 가장 미세한 감각과 통증, 그리고 놓치면 사라질 듯한 순간들을 손끝의 언어로 길어 올린 작품집이다. 거대한 선언 대신 사소한 진동에 귀 기울이며, 개인적 상흔과 일상의 숨결을 절제된 시어로 기록한 이번 시집은 박은선 시 세계의 한층 깊어진 내면을 보여준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박은선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손톱 끝에 걸린 세상>을 펴냈다. 월훈출판사에서 출간된 이번 시집은 삶의 가장 미세한 감각과 통증,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지속의 의지를 섬세한 언어로 길어 올린 작품집이다.

<손톱 끝에 걸린 세상>이라는 표제는 이번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시적 태도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거대한 세계나 선언적 언어 대신, 놓치면 사라질 듯한 순간들, 손끝에 스쳐 머무는 감정의 떨림을 끝까지 붙잡으려는 시인의 시선이 이 시집의 중심에 놓여 있다.

표지에 담긴 눈을 감은 인물과 흐릿하게 번지는 꽃의 이미지는 그러한 내면의 집중과 미세한 감각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환기한다.

특히 표제시 '손톱 끝에 걸린 세상'은 이번 시집의 미학과 세계관을 가장 응축된 형태로 보여준다.

문틈 사이로 스며드는
한 줄기 햇살
우연히 스친 낙엽의 소리
옷깃에 맺힌 이슬 한 방울
작고 사소한 것들이
하루를 지탱하고
그 안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터득하는 우리의 삶

작고 사소한 것들로
완성해 가는 매듭의 물결
작고 일상적인 것들로
삶을 채워가는 온정의 손길
손끝에 남은 온기와
무심코 던진 미소로
그 작은 것들이 모여
큰 이야기가 되고
우리는 우주를 만난다

- 박은선 시인의 표제시 '손톱 끝에 걸린 세상' 전문

이 시에서 '손톱 끝'은 삶의 주변부이자 가장 예민한 감각이 모이는 지점이다. 시인은 세상을 움켜쥐거나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긁어모으듯, 겨우 걸어두듯,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계의 파편들을 손끝에 매단다. 이는 삶을 관통한 고통과 상흔을 과장하지 않고, 그것이 남긴 진동만을 조심스럽게 기록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표제시 속 세계는 크지 않다. 그러나 그 작음은 결핍이 아니라 밀도다.

시인은 "손톱 끝에 걸린 채 피 한 방울 스미듯 지나간 순간들"을 통해, 삶이란 결국 사소함의 누적이며 감당 가능한 떨림들의 연속임을 말한다. 이 시에서 통증은 절규로 터져 나오지 않고, 침묵 속에서 은근히 문장을 밀어 올리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 절제된 긴장감이 바로 박은선 시 세계의 핵심이다.

이번 시집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는 표제시의 시적 태도를 변주하며 확장한다.

1부 '내 붉은 방석에 누워버린 절명의 시간'에서는 존재의 극점과 감정의 응어리가 밀도 있게 펼쳐지고, 2부 '장미, 그 환생'에서는 상처 이후의 회복과 반복되는 생의 이미지가 시적 서사로 이어진다.

3부 '잠잠히, 그러나 영원히'는 표제시가 놓인 중심부로, 침묵과 여백, 쉼의 언어가 가장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4부 '꽃 피는 詩의 달'에서는 기억과 지역, 자연의 정서가 비교적 밝은 리듬으로 펼쳐지며, 5부 '피사체 앞에서'는 작가의 말과 해설을 통해 이번 시집의 미학적 지향을 정리한다.

시인의 말에서 박은선 시인은 "손톱 끝에 아주 작은 먼지처럼 걸려 있던 것들이 돌아보면 내 삶의 호흡을 이끌어온 것이었나 봅니다"라고 적고 있다.

그는 거대한 세상을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대신 시의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작은 세계의 진동을 전하고 싶다고 고백한다.

이 시집은 사라질 뻔했던 감정과 순간들을 끝내 놓치지 않으려는 기록이며, 상흔이 빛으로 남기를 바라는 조용한 의지의 산물이다.

해설을 쓴 이승하 시인(중앙대 교수)은 이번 시집에 대해 "시를 쓰면 아픔이 사라진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며, "박은선 시인의 시는 빛나는 문장의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침묵의 바다에서 퍼 올린 언어"라고 평했다.

이승하 시인은 최근 시단의 난해성과 산만함을 지적하며, 박은선 시인의 시가 "우리 곁에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의 본령에 닿아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쉼표', '어간 1·2', '여백의 춤', '꽃피는 시의 달' 등을 앞으로의 시적 다짐이 담긴 작품으로 짚었다.


대전광역시 출신인 박은선 시인은 시인이자 수필가로 활동하며, 한국문인협회, 한국현대시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회원으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바다의 달을 만나기 전>, <바다만 아는 비밀>, <삶 이외다 홍 이외다 청 이외다>, <갈비뼈에 부는 청초한 바람> 등 다수의 시집을 발표했으며, 유튜브 채널 '낭독하는 시인'을 통해 시 낭송과 퍼포먼스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독립서점 '산아래 詩 다시공방' 등에서의 낭독회와 북토크를 통해 독자와의 현장 소통에도 힘쓰고 있다.

<손톱 끝에 걸린 세상>은 크지 않아서 더 오래 남는 감정, 말로 다 하지 못해 더욱 깊어진 침묵의 기록이다.

표제시가 보여주듯, 이 시집은 세계를 움켜쥐지 않고도 삶을 견디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다. 손끝에서 감지되는 미세한 진동을 통해, 독자는 자신의 삶 또한 조용히 다시 만지게 된다.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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