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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왕조, 남겨진 장미… 베트남 마지막 황후 '남프엉 황후'의 삶

<남프엉 황후와 바오다이 황제의 발자취를 따라> 출간…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역사 조명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황후였던 남프엉(Nam Phương)의 삶과 역사를 조명한 책 <남프엉 황후와 바오다이 황제의 발자취를 따라>가 베트남여성출판사(Nhà xuất bản Phụ Nữ Việt Nam)에서 최근 출간됐다.

이 책은 베트남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Bảo Đại)와 그의 황후 남프엉의 삶을 따라가며 왕조의 몰락과 근대 베트남의 역사적 전환기를 함께 조망한 역사 교양서다.

베트남 중부의 고도 후에(Huế)는 한때 왕조 권력의 심장이었다. 흐엉 강(香江)이 흐르는 이 도시는 수백 년 동안 베트남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지만, 20세기 세계사의 격변 속에서 왕조의 기억을 간직한 역사적 공간으로 남게 되었다.

이 책은 바로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 남프엉 황후의 삶을 통해 왕조의 마지막 시간을 조명한다.

프랑스 유학 소녀에서 황후가 되다

남프엉 황후의 본명은 응우옌 흐우 티 란(Nguyễn Hữu Thị Lan).

베트남 남부의 가톨릭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서구식 교육과 교양을 쌓으며 성장했다.

1934년 그녀는 당시 베트남 황제였던 바오다이(Bảo Đại)와 결혼하며 황후가 된다. 결혼과 함께 그녀에게 내려진 ‘남프엉’이라는 칭호는 ‘남쪽의 향기’를 의미한다.

그녀는 베트남 역사에서 공식적으로 '황후' 칭호를 받은 거의 유일한 인물로 기록된다. 하지만 왕궁의 화려한 삶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왕조의 몰락과 망명의 삶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정치적 격변 속에서 바오다이 황제는 퇴위를 선언한다. 이로써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웅우옌 왕조(Nguyễn Dynasty)는 약 143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막을 내렸다.

왕조가 사라지면서 황후의 삶 역시 완전히 바뀌었다. 남프엉 황후는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조용한 삶을 살았고, 1963년 프랑스 남부에서 생을 마감했다.

왕관을 내려놓은 뒤의 삶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 고요한 세월 속에는 한 왕조가 사라진 뒤의 역사적 고독이 깊게 배어 있었다.


공동 저자들이 복원한 역사 속 황후

이 책은 베트남 학자들의 공동 연구 작업으로 완성된 역사 기록이다.

공동 저자인 빙 다오(Vĩnh Đào)는 프랑스 소르본대학교(Sorbonne University)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로 프랑스와 베트남의 문화·역사 교류 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파리에서 오랫동안 학문 활동을 이어오며 베트남 왕조사와 식민지 시대의 역사 연구에 집중해 왔다.

또 다른 공동 저자인 응웬티 타잉투이(Nguyễn Thị Thanh Thúy)는 사회학 학자로 '어머니들의 모임' 회장이며, 여성·아동 및 역사 관련 저서의 공동 저자이다.

두 학자는 남프엉 황후의 삶을 단순한 왕실 전기가 아니라 정치사·여성사·문화사가 교차하는 역사 서사로 복원해 냈다.


번역자 배양수 교수의 평가

한국어 번역에는 한·베 양국 학자들이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배양수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가 번역을 맡았으며, 베트남에서는 응우옌티투번(Nguyễn Thị Thu Vân)과 레 투이 쭝(Lê Thuỳ Dung)이 공동 번역자로 참여했다.

공동 번역자 중 응우옌티투번(Nguyễn Thị Thu Vân)은 인류학 박사로 현재 하노이 국립외국어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베트남 문학과 문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번역가이자 소설가로도 활동하며 여성 문화와 가족, 젠더 문제를 중심으로 여러 학술서와 번역서를 발표해 온 연구자인 응우옌 티 투 번은 국제한국어·한국문화교육학회(ISKLCE) 부회장, 베트남작가협회 및 하노이작가협회 회원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또한 투이 쭝(Lê Thuỳ Dung)은 한국어 교육 석사이자 현재까지 한·베트남어 번역 도서 약 30권을 번역했다.

배양수 교수는 번역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프엉 황후의 삶은 단순한 왕실 이야기가 아니라 한 시대의 역사적 전환을 상징하는 인간의 기록입니다. 제국과 식민, 전통과 근대, 동양과 서양이 교차하는 역사 속에서 한 여성의 삶이 어떻게 시대의 굴곡을 통과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또 "이 책은 베트남 왕조의 마지막 순간과 식민지 시대의 복합적인 역사를 동시에 보여주는 문화사적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후에 황궁에 남아 있는 왕조의 그림자

베트남 중부의 고도 후에(Huế)는 한때 베트남 왕조의 중심지였다. 향강(香江, Hương Giang)이 유유히 흐르는 이 도시는 수 세기 동안 왕조의 정치와 문화가 꽃피었던 곳이다.

오늘날 여행자들이 후에 황성을 찾으면 오래된 성벽과 궁전 사이에서 사라진 왕조의 흔적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종종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바로 베트남 마지막 황후 남프엉이다.

그녀는 단순히 왕비라는 지위를 넘어 한 시대의 품격과 비극을 함께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난 근대적 황후

남프엉 황후의 본명은 Nguyễn Hữu Thị Lan(응우옌 흐우 티 란)이다. 그녀는 1914년 남부 베트남의 부유한 가톨릭 가문에서 태어났다. 당시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 지배 아래 있었으며 사회 전반이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어린 시절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은 그녀는 서양식 교양과 국제 감각을 갖춘 여성으로 성장했다. 프랑스어에 능통했고 유럽 문화에도 깊이 익숙했다.

그러나 동시에 베트남 전통과 문화적 정체성을 잊지 않는 인물이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은 훗날 그녀가 왕궁에 들어가 황후가 되었을 때 특별한 상징성을 갖게 한다.


마지막 황제와의 결혼

1934년 그녀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Nguyễn Dynasty)의 황제 바오다이와 결혼한다. 당시 바오다이 황제는 프랑스 유학을 마친 젊은 군주였으며 근대화된 국가를 꿈꾸고 있었다.

두 사람의 결혼은 단순한 왕실 혼인을 넘어 전통 왕조와 근대 세계가 만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그녀는 결혼과 함께 '남프엉(Nam Phương)'이라는 황후의 칭호를 받는다. 이는 "남쪽의 향기"라는 뜻으로, 그녀의 품위와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

궁정의 품격과 지성

후에 황궁에서 남프엉 황후는 단순한 왕비 이상의 존재였다. 그녀는 여성 교육과 사회복지 활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자선 사업을 펼쳤다. 궁정에서도 절제된 태도와 지적 품위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프랑스 교육을 받은 현대적 여성임에도 베트남 전통 의복 아오자이를 입고 궁정 의례를 지키는 모습은 당시 베트남 사회가 경험하고 있던 전통과 근대의 공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이러한 삶의 단면을 통해 한 여성의 전기를 넘어 식민지 시대 베트남 사회의 문화적 풍경을 함께 그려낸다.

왕조의 몰락과 격동의 시대

20세기 중반 베트남은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일본이 패망하고, 베트남에서는 독립을 요구하는 혁명운동이 거세게 일어난다.

결국 바오다이 황제는 퇴위를 선언하게 되고,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응우옌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왕관이 내려지는 순간 베트남의 왕조 시대도 막을 내렸다. 남프엉 황후의 삶 역시 이때부터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왕궁에서 프랑스의 작은 마을로

왕조가 붕괴된 이후 남프엉 황후는 프랑스로 건너가 조용한 삶을 살게 된다. 후에 황궁의 화려한 궁정에서 살던 여인이 유럽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생을 마쳤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녀는 1963년 세상을 떠났지만 베트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우아하고 품위 있는 황후로 남아 있다. 베트남 마지막 왕조가 남긴 역사적 의미

응우옌 왕조의 몰락은 단순히 한 왕실의 종말이 아니라 베트남 근대사의 전환점이었다. 왕조 시대가 끝나고 베트남은 식민지 시대, 독립운동, 전쟁과 분단이라는 격동의 역사를 거치게 된다.

이 책은 남프엉 황후의 삶을 통해 이러한 역사적 변화를 인간적인 이야기로 풀어낸다. 한 여성의 삶 속에서 왕조의 영광과 몰락, 그리고 근대 베트남의 탄생이 함께 교차하는 것이다.

기억 속에 남은 마지막 장미

오늘날 후에 황성을 찾는 여행자들은 오래된 궁궐의 돌계단을 걸으며 사라진 왕조의 흔적을 느낀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종종 바오다이 황제와 함께 남프엉 황후의 이름을 떠올린다.

권력은 사라지고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품격과 아름다움은 오래 남는다. 어쩌면 남프엉 황후는 베트남 왕조의 마지막 장미였는지도 모른다.

전쟁과 혁명의 격랑 속에서도 조용히 피어 있었던 한 송이 장미.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은은한 향기를 남기는 장미 말이다. 후에의 강가에 바람이 스칠 때면, 오래된 궁정의 향기가 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그 향기 속에는 아직 한 여인의 이름이 남아 있다. 남프엉. 남쪽에서 피어난 마지막 왕조의 장미다.

베트남의 고도 후에(Huế)를 찾은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오래된 궁궐의 돌계단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화려했던 왕조의 흔적은 이제 관광지의 풍경이 되었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한 시대의 기억이 조용히 숨 쉬고 있다.

베트남 마지막 황후 남프엉(Nam Phương)의 삶은 바로 그 기억의 중심에 서 있는 이야기다. 그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Bảo Đại)와 함께 막을 내린 응우옌 왕조(Nguyễn Dynasty)의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왕조의 몰락은 정치적 사건으로 기록되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인간의 삶과 감정이 함께 존재한다. <남프엉 황후와 바오다이 황제의 발자취를 따라>는 바로 그 인간적인 서사를 통해 베트남 근대사의 한 장면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특히 한국의 베트남학자 배양수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를 비롯한 한·베 양국 번역자들이 함께 참여했다는 점은 이 책이 단순한 역사 교양서를 넘어 문화 교류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왕관은 사라졌지만 한 시대의 품격은 기억 속에 남는다. 후에의 향강 바람 속에서 여전히 은은한 향기를 남기고 있는 이름, 남프엉.

그녀는 어쩌면 베트남 왕조가 남긴 마지막 장미였는지도 모른다.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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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다시 오늘을 건너다…<묵묵히 질량을 쓴다> 출간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시조는 과거의 유산일까, 아니면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현재형의 언어일까. 묵묵히 질량을 쓴다는 이 질문에 대한 또렷한 답이다. 14명의 시조시인이 '초월'이라는 공통의 화두 아래 모여, 시조가 동시대의 감각과 질문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는 형식임을 한 권의 책으로 증명했다. 시조 동인 초월 동인이 첫 시조집 <묵묵히 질량을 쓴다>를 도서출판 도화를 통해 펴냈다. 이번 시조집은 우리 시조의 현재와 가능성을 탐색해온 14명의 시인이 함께 참여한 공동 작업으로, 동인의 출범과 동시에 내놓은 의미 있는 첫 결실이다. 이들은 특정 이론이나 경향에 기대지 않는다. 대신 '초월'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중심에 두고, 각자의 시적 세계를 자유롭게 펼쳐 보인다. 결과적으로 이 시조집은 하나의 목소리로 수렴되기보다, 서로 다른 결들이 나란히 놓인 '다성적 풍경'을 형성한다. 이 시조집에서 말하는 '초월'은 흔히 떠올리는 관념적 탈속이나 현실 도피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상식과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창작의 태도, 전통 형식 안에서 새로운 감각을 길어 올리려는 시도의 다른 이름에 가깝다. 참여 시인들은 시조라는 틀을 해체하기보다, 그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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