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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숙의 단상] 마음을 밝히는 오월의 등불, 부모라는 이름

바다를 닮은 부모의 침묵과 사랑을 기억하며

(서울=미래일보) 박인숙 작가 = 석양이 바다 위로 노을 져 간다. 유성들이 민둥산 뒤로 달리던 밤하늘의 별들과, 검은 바다를 황금빛으로 일렁이게 했던 풍경이 5월이면 어김없이 떠오른다.

달빛이 부서지던 바다의 침묵을 깨며 노를 저어 가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파도 위에 너울진다. 차고 시린 바람을 마주하며 하늘 끝 수평선을 투사처럼 바라보시던 어머니도 생각난다.

그 침묵으로 가족을 지탱하기 위해 등에 짊어졌던 무게가 떠오르는 계절이다.

프랑스 추리 소설의 대가 조르주 심농(Georges Simenon)이 아버지를 회고하며 쓴 산문집 『아버지의 초상』에는 이런 말이 있다. "그가 떠난 뒤에야 나는 그를 만났다."

아버지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그의 부재 이후에야 가능했다는 고백이다. 심농은 말한다. 세상은 그 이름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사람들 덕분에 굴러간다고.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명의 존재들이라고, 그 진실을 조용히 증명한다.

심농처럼 나 역시 가정의 달 5월이 되면, 세월을 거슬러 아버지를 다시 떠올려보게 된다.

새벽 어스름한 어둠 속으로 조용히 배를 밀고 나가시던 아버지. 수평선 너머 침묵 속으로 사라지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다리며 보냈던 바다가 있었다.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를 지키기 위해, 우리 가족의 족장인 두 분은 거센 물결 속에 삶을 온전히 담그며 살아오셨다. 얼마나 많은 폭풍과 파도와 싸워야 했을까.

내 하루의 시작도 바다를 바라보는 일로 시작되었다. 흰 구름을 매단 무인도의 뒷모습을 상상하며 바람결에 실려 온 짠내 나는 바람이 두렵기만 한 하염없는 날들이었다.

들꽃처럼 하얗게 흔들리는 햇살에 물결이 일렁이던 그 바다가 더는 거세지 않기를 바라던 일곱 살의 나는, 고요한 바다가 아무런 예고 없이 커다란 입을 벌리고 마을 깊숙이 달려와 모든 것을 삼켜버리던 삶을 본 적이 있다.

바위만 한 두려움이 어린 가슴에 내려앉아, 옹이가 박히는 듯했다. 썰물과 밀물이 교차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바닷가를 떠나지 못했던 그 기다림은 밤바다처럼 깊고도 깊었다.

아버지의 배가 파도에 휘말려 싸우는 상상은 한없이 슬프고 원망스러웠다. 아무리 반복된 일상일지라도 바다는 익숙하거나 편안한 공간이 아니었다.

마을 앞바다에는 소형 돌고래 삼괭이 가족이 살았다. 너울진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는 그들을 보며 고래 가족의 삶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하지만 조류가 거세게 휘감기는 고래의 영역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실감하게 했다. 아버지의 배는 고래들처럼 나아갈 수 없었다. 삼괭이의 영역인 조류와 맞선다면, 배는 바닷속으로 가라앉거나 난파될지도 모른다.

산만한 파도와 싸우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상상하며 산 넘어 날아간 비행기를 바라보며 울기도 했다. 어머니를 닮은 하얀 갈매기들이 아버지 머리 위에서 날아다녔다. 자연 속에서 동물과 공존하며 정서적 유대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갈매기는 영리해서 도구를 사용하거나 조개를 떨어뜨려 깨기도 한다. 육지에서 수백 킬로미터를 날 수 있어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튼튼한 새다. 갈매기들은 부모님을 따라 먼바다까지 다녀온 후에도 늘 다시 돌아왔다. 부모님이 갈매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며, 나는 동물에 대한 연민과 존엄을 배우게 되었다.

별들은 밤바다를 항해하는 이들에게 나침반이자 등대가 되어 준다. 별자리를 알아보는 사람은 길을 잃지 않는다고 하셨다. 아버지도 별이 뜨고 지는 방향만으로 동서남북을 판단하셨다. 밤에는 별을 세며 바다를 건너셨다.

배운 사람은 복잡한 원리와 이론을 알겠지만, 부모님은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이해가 몸에 밴 분들이셨다. 원리와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대충 아는 것은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자연을 잘 활용하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씀은 어두운 허공 속에서도 반짝이며 들려왔다.

어린이에게 환경은 감성의 자양분이 된다. 세상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바다는 무한한 상상력과 탐험 정신을 키우는 곳이었다. 바다를 통해 나는 자연의 변화에 귀 기울이며 생명에 대한 존중을 자연스레 배우게 되었다.

누군가에겐 바다는 마음을 여는 속삭임일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두려움 그 자체일 수 있다. 거친 삶도 흘러가게 두어야 한다는 것이 회복력일까, 회의일까. 잘 모르겠다. 다만 바다는 존재 자체로 배움이고 가능성이다.

"두려움이 너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거라."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그 바다의 주인이 아니지만, 자연을 아는 것이 지식이고 생존이며 인간의 조건이라던 나의 아버지는 별이 되셨다. 그러나 물결의 속삭임처럼, 달빛에 물든 밤바다의 황금빛 너울처럼 그 말씀이 잔잔하게 들려온다.

"태풍이 지나간 바다는 더욱 푸르고 빛이 난단다."

가족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와 인내를 요구하는지. 5월, 가정의 달에 어머니가 들려주는 침묵의 서사시를 한 번쯤 들어보면 어떨까. 부재 속에 숨어 있는 아버지의 마음도 함께.

박인숙 작가는 2010년 종합문예지 격월간 <서라벌문예> 시부문 신인 작품상으로 처음 등단했다. 저서로는 2014년 시집 <나, 어머니로 태어나 아버지로 살았네>를 출간했다.

현재 (사)한국문인협회,(사)국제PEN한국본부,(사)한국현대시인협회, 국제계관시인연합 한국본부(UPLI-KC) 등에서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울림>과 <문학의 뜨락> 등 동인지에 작품을 기고하고 있다. 세종여성플라자 새봄기자단과 뉴스피치 시민기자로도 활동 중이다.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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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다시 오늘을 건너다…<묵묵히 질량을 쓴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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