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시 감상에서 유독 어느 문장, 단어에 마음 쓰이는 경우가 있다. 학인과 대화 하며 마음에 두는 문장을 묻는 것은 흔한 질문이다.
시인은 서정주 '국화 옆에서'를 읽으면 ‘뒤안길’이라는 단어가 생각을 멈추게 한다는 말을 주고받는다. '뒤안길'은 지나간 시간, 젊은 시절의 시간이 주마등이 된다. 시골에서는 대안(큰 집의 안쪽)이라 하는 '뒤꼍'도 들어 있다. 으슥하여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도 있다. 마음에 드는 다른 의미는 젊음의 추억이 담긴 심리적 공간이기도 한다.
우리의 삶은 시간의 흐름 속에 성숙하게 된다. 시간의 흐름은 심리적 뒤안길에서 이것저것 상심도 하며 성장하는 것들이다.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의 모습을 성찰하는 것이다.
'국화 옆에서'의 미당은 시를 만들며 한국의 자연, 문화, 정서를 넣는데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토속적인 체취가 스며들고 있다. '뒤안길'은 평범한 단어지만 리듬과 음절의 조합에 특별한 주의도 들어 있다. 이로 인해 '국화 옆에서'는 유려한고 율동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시란 모름지기 아주 평범한 단어를 적절하게 사용하면 뛰어난 언어 건축(묘미)이 된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의 단어를 가지고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우아한 단어를 탄생시킨다. 다시 말하면 언어를 적절하게 배열하면 표현 넘어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낸다. 자연의 비유를 빌어 시인이 하고자 하는 주제를 더욱 심화시켜준다.
시의 정부(政府)라 칭해주는 서정주 시인도 '뒤안길'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지 모른다. 시인이 초기에 만든 <화사집>이 하나의 사례다. 그 시집의 두 번째 면에 실린 시가 화사(花蛇)다. 화사 시의 첫 행에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화사는 꽃뱀이다. 박하는 식물의 하나이며 향신료 쓰인다. 박하는 영어로는 민트(mint), 순 우리 말로 ‘영생’이라 표기한다. 영어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님프 멘테이다.
박하는 교잡이 잘되면서 번식력과 생존력도 어마어마하게 뛰어난 식물로, 인간이 이 향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냥 잡초였을 식물이다. 심지어 박하에는 독성 식물을 지닌 종류도 있다.
미당이 사향과 박하를 시어에 등장시키며 뒤안길을 넣는 것은 기가 막힌 시의 천재성을 말하게 한다. 어느 시인은 미당이 노벨상을 받지 못한 연유가 있다면 화사의 첫 문장 "사향 박하의 뒤안길이다"에 있다라 말한다.
제아무리 뛰어난 번역가가 이 시의 첫 줄을 어떻게 번역하겠냐는 것이다. 사향 박하에는 에덴동산의 이브에 나타난 뱀의 의미가 있다. 그런가 하면 희랍 신화가 들어 있다. 불과 15행의 시지만 광대 무한, 언어벌판의 심상이 들어 있다.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아름다운 배암……/을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둥아리냐.//꽃대님 같다.//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達辯)의 혓바닥이/소리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푸른 하늘이다.……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麝香) 방초(芳草) 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우리 할아버지의 안해가 이브라서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바늘에 꼬여 두를 까부다. 꽃대님 보다도 아름다운 빛……//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고운 입술이다…… 스며라, 배암!//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설…… 스며라! 배암.' <화사> 시 전문이다.
아무리 읽어도 간담이 서늘한 시어들이다. 잔인함과 피 끓는 듯한 생명의 전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화사는 뱀과 꽃, 징그러움과 슬픔, 붉은 아가리와 푸른 하늘, 클레오파트라의 입술과 스물 난 색시 순네의 입술 등과 같은 대조적인 이미지를 사용, 선과 악, 욕망과 갈등을 관능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미당은 다른 시인과 다르게 독특한 문체와 언어 스타일을 가졌다. 이는 한국 현대 시의 대표적인 시인을 상징한다는 의미다. 어떤 이는 시신(詩神)이라 일컫는다.
신라의 국선도와 불교의 윤회전생, 그리고 민간에 떠도는 온갖 설화를 에두르는 시적 방황 또는 정신사적 편력을 지녔다 평한다. 국화 핀 가을 길을 걸어본다. 미당이 좋아한 '뒤안길'을 만날 것이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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