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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송의 'DJ 1호' 최동욱 아나운서 별세...향년 87세

1964년 동아방송 '탑튠쇼'로 국내 방송 DJ 1호 탄생..지난해까지 인터넷방송 '라디오 서울 코리아' 직접 운영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한국 방송 디스크자키(DJ) 1호 최동욱(87) 아나운서가 17일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젊음의 낭만과 푸른 꿈을 노래 속에 싣고 기쁨을 찾는 멜로디와 리듬의 퍼레이드! 미국의 최신 유행 음악을 소개하는 탑-튠-쇼!"

1964년 10월, 동아방송의 전파를 타고 생동감 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흐트러짐 없는 아나운서의 억양과 달리 청취자를 초대해 대화를 나누는 듯한 말투였다.

마이크 앞에 앉은 이는 곡명을 소개하고 해석을 곁들인 뒤 기기를 만져 음악을 틀었다. 한국 방송 최초의 디스크자키(DJ)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한국 최초의 라디오 DJ로 불리는 최동욱 아나운서는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3학년 복학생 시절이던 1961년에 서울 종로 YMCA 뒤편에 있던 음악 감상실 '디쉐네'에서 DJ로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디쉐네'에는 멘트 없이 음악을 들려주는 플레이어가 있었는데 최동욱 아나운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멘트로 해설을 하면서 음악을 들려주는 DJ시대를 열었다.

최동욱 아나운서는 이어 1962년 KBS2 라디오가 생기고 주 1회 방송한 '금주의 히트퍼레이드'를 통해 빌보드 차트를 근거로 한 최신 팝송을 선곡하고 스크립트를 담당하며 그 시대 팝송에 심취한 젊은이들 사랑을 받았다.

이후 1963년 동아방송(DBS) 공채 1기 PD로 입사하고, 1964년 10월 5일부터 동아방송 '탑튠쇼'의 제작과 진행을 직접 맡아 하면서 우리나라의 방송 DJ 1호가 되었다.

동아방송의 간판 프로그램이 된 '탑튠쇼' 이후 '세시의 다이얼' 등 방송마다 히트를 치자 MBC 문화방송에서는 故 이종환 아나운서를 내세워 '탑튠 퍼레이드'로 맞불을 놓았고, TBC 동양방송의 전신인 '라디오서울'에서는 인기 성우이자 수필가 故 피천득 선생의 아들인 피세영 아나운서를 DJ로 내세워 '뮤직 텔스타'를 방송하면서 '60년대 라디오 DJ 3인방' 시대가 열리기도 했다.

최동욱 아나운서는 이 밖에도 '0시의 다이얼', '최동욱쇼', '추억의 팝송', '최동욱의 미드나이트 스페셜', 인터넷 방송 '라디오 서울 코리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최동욱 아나운서는 2010년 가을, 이종환, 박원웅 등 후배 DJ들과 함께 '한국방송DJ협회'를 창립, 제1대와 2대 회장직을 연임하였고, 1964년 처음으로 동아방송국에서 DJ를 했던 10월 5일을 'DJ의 날'로 선포하고 2014년 10월 5일 'DJ 50주년 기념행사'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성대하게 개최하게도 했다.

한편, 방송 관계자 주 모씨는 SNS를 통해 "작년 12월 11일 한국방송DJ협회 임시총회에 참석하셨을 때도 건강한 모습이셔서 별 걱정을 안 했다"라며 "1936년생의 고령이시라 한두 달 사이에 이렇게 변고를 당하셨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고인의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20일 오전 5시 20분이다..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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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캐는 '봉성리문화예술창조마을', 채굴의 기억을 문학으로 캐다
(보령=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일제강점기 사금 채취와 석탄 채굴로 이름을 알렸던 충남 보령시 미산면 봉성리가 문화와 문학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찾고 있다. 한때 땅속에서 금과 검은 석탄을 캐내던 이 마을이 이제는 시와 언어, 기억을 캐내는 '금캐는 마을'로 변모하며 또 하나의 문화 발굴 시험에 나섰다. 봉성리는 일제강점기 시절 사금 채취장으로 활용되었고, 이후에는 검은 석탄을 채굴하던 광산촌으로 알려졌다. 마을 곳곳에는 당시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땅을 파면 사금이 섞인 모래와 채굴의 기억이 함께 드러난다. 산업화 이후 급격한 쇠퇴를 겪었던 이 마을은 이제 과거의 상처를 지우는 대신, 기억을 문화 자산으로 전환하는 길을 택했다. 그 중심에는 봉성리문화창조마을 이장이자 시인, 그리고 무형문화유산 석공예 이수자 김유제 시인이 있다. 김유제 시인은 봉성리 마을 전체를 하나의 문학공원으로 조성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현재까지 전국 최대 규모인 300여 기의 문학비를 마을 곳곳에 세웠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시비와 문학 조형물이 자연과 어우러져 방문객을 맞는다. 김 시인은 "봉성리는 단순한 시골 마을이 아니라,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과 노동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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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정황은 있다"면서 면죄부… 기본소득당, 류희림 '민원사주' 재수사 촉구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류희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민원사주' 의혹에 대해 감사원이 사실상 면죄부에 가까운 결론을 내리자, 기본소득당이 강하게 반발하며 철저한 재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노서영 기본소득당 대변인은 5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감사원이 '정황은 확인됐다'면서도 '단정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했다"며 "이는 민원사주 의혹 규명의 책임을 방기한 무책임한 감사"라고 비판했다. 노 대변인은 류희림 전 위원장이 재임 당시 정권 비판 언론에 과도한 제재를 반복하고, 법적 근거가 미비한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를 졸속 설치하는 등 언론 규제와 탄압에 앞장섰던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민원사주 의혹 역시 "내란정권 하에서 언론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드러난 중대 사안"이라는 주장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류 전 위원장의 친족과 지인 11명이 이틀 동안 34건의 민원을 집중 제기했으며, 민원 문구의 분량과 표현 방식, 심지어 맞춤법 오류인 '사실인냥'이라는 표현까지 유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노 대변인은 "이는 기존 보도보다 축소된 규모일 뿐, 명백한 민원사주 정황"이라며 "그럼에도 감사원이 물적 증거 부족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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