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군의 집터의 정확한 위치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의 후문 근처다. 종로5가역 방향으로 200m 정도 내려가다 보면 남이장군이 태어난 집터라는 돌판이 도로변에 위치한다. 가까이 있는 꽃가게 주인은 간혹 자그마한 꽃 화분을 시인 남이장군 집터 돌판 아래에 놓곤 한다. 꽃집은 1평도 되지 않지만 비교적 손님이 끓이지 않아 장사가 잘 되는 꽃집이다.
시도반(詩道伴, 詩 공부자)은 그 꽃집의 주인이 남이장군 집터에 꽃 화분을 놓는 것에 늘 궁금했다. 주인에게 묻기보다는 추측을 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무속인들은 힘이 센 장군을 사당에 모신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영하다는 무속인에 의하면 무속인들이 남이장군을 가장 많이 모셨을 것이라 한다.
연유인즉, 남이장군은 우리나라에서 최연소 나이인 17세(세조 3년 1453년)에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관직에 오른다. 장군은 이시애(李施愛) 난을 3개월 만에 평정한 기개를 보인다. 여세를 몰아 만주 요동의 노략자(擄掠子), 여진족을 강순 장군과 함께 출전하여 토벌에 혁혁한 전과를 올린다.
그 기개는 세조에게 인정을 받아 26세의 조선 최연소 병조판서(兵曹判書), 오늘날의 장관직에 오른다. 고려말부터 조선 초에 걸쳐 압록강 너머에 오랑캐 정벌이 네 차례 있었다.
첫 번째는 공민왕 때 이성계 장군이 두 번, 요동을 정벌한다. 세 번째가 최윤덕 장군이다. 마지막 네 번째가 남이장군이다. 이 전투들은 우리나라 전투사에 큰 승전보라는 기록을 남긴다. 남이 장군이 26세에 세운 전과다. 전쟁을 치르고 귀경하면서 백두산에 올라 두만강을 바라보며 詩 한 수를 짓는다.
후일 생명을 담보한 문제의 시가 될 줄 짐작하지 못했다.

詩의 해석을 보태지 않아도 남아의 기개가 넘친다.
또 다른 혼자 말이 화근에 보태진다. 밤하늘의 혜성이 땅으로 떨어지는 광경에 "묵은 것이 가고 새것이 나타날 징조다"라고 말한다. 이 말을 평소 시기와 질투를 하던 유자광(柳子光 1439~1512)이 듣는다. 세조에 이어 예종이 왕권을 잡고 궁궐에는 역모가 끓이지를 않던 분위기였다. 유자광은 예종에게 남이장군이 역모를 꾀하고 있다며, 근거로 ‘북정가’ 시와 밤하늘의 떨어지는 혜성을 보고 뱉은 말을 근거로 간신(姦臣) 상소한다. '아주 나쁜' 필화모략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 필화로 남이장군은 한강 변에서 두 팔과 두 다리 그리고 머리를 별처럼 5개 방향으로 우마차에 묶여 참수당한다. 우리 역사상 가장 잔혹한 참수 기록이다. 억울한 모략의 죽임이다. 얼마나 한이 많은 장군인가. 그의 영혼은 지금도 우리의 주변을 떠돌 것이다.
남이섬(춘천시 남산면 남이섬길 1번. 둘레 약 5km)에 가면 남이장군의 묘가 있다. 그곳은 '겨울연가'(2002년)의 촬영 장소이기도 하다. 겨울연가로 남이섬은 일본 관광객까지 붐비게 하는 명소가 되었다. 학인은 겨울연가의 관객몰이는 남이장군과 무관치 않다 말한다.
한 많은 남이 장군은 겨울연가 제작진과 배우에게 위로를 받았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이장군은 영의 세계에서 겨울연가 제작에 참여한 시인 장군이라는 흥미로운 해석을 한다. 겨울연가는 그에 힘입어 국내의 흥행은 물론, 동남아 전역에 붐을 일으켰다고 덧붙인다. 학인의 해석은 무속답지만, 흥미로운 작가적 발상으로 웃어넘기기로 했다.
하나의 설화는 이를 더 설득력이 있게 한다. 남이 장군은 어렸을 때 거리에서 놀다가 어린 종이 작은 상자를 보자기에 싸서 들고 가는 것을 본다. 그런데 보자기 위에 '분 바른 여자 귀신'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따라간다.
권람(1416~1465)의 집으로 들어간다. 잠시 뒤 그 집에서 통곡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어린 남이는 급히 들어가 자초지종을 묻는다. 들어가 보니 분 바른 여자 귀신이 낭자의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남이는 지체없이 귀신을 향하여 "썩 물러가라" 고함을 치자 허겁지겁 귀신이 달아나고 낭자는 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본 권람의 가족은 놀란다. 이로 인해 영의정을 지낸 권람의 딸과 남이는 결혼을 했다는 설화다. 이런 연유로 무속인들이 남이장군을 사당에 모시는 것이라 설명한다.
예나 지금이나 문학과 정치의 불화는 변하지 않는다. 詩 한 편으로 억울하게 오지가 찢긴 남이 장군, 오적(五賊)의 詩를 만들어 사형 선고를 받았던 김지하 시인. 오늘도 '그들만의', '그들만이' 공정하다는 권력 세계는 문학과 예술의 심장에 비수를 호시탐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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