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십계'는 또 다른 독특한 장면이 눈길을 끈다. 타오르는 나무속에 하나님이 나타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가 서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한다. 이슬람 사원 역시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한다. 신발이 더러운 곳을 밟는다고 본 탓이다.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 가면 동양화가이며 서울대 교수를 지낸 박노수(1927~1923) 가옥(假屋)이 있다. 가옥은 윤덕영(1873~1940)이 그의 딸을 위하여 1938년 건립한 이층집 적산 가옥이다. 이 집은 1991년 5월28일 서울시 문화재대자료 제1호로 지정이 되었다. 윤덕영은 조선 후기 문신이다.
윤덕영은 친일파의 한사람으로 이완용(1858~1926. 을사오적)과 함께 한일합방 조인식에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러면서 일본의 힘을 얻어 요직을 두루 거쳤다.
친일의 윤덕영이 지은 이집은 이층 벽돌집이다. 1층은 온돌방과 마루로 되었다. 집은 튼튼하게 한옥과 양옥의 건축기법으로 중국식이 섞여 있다. 안쪽으로 벽난로가 3개나 설치되어 있어 당시로서는 호사스러운 건축이다.
1973년 화가 박노수가 인수하여 거주했다. 그가 사망하기 전인 2011년에 종로구에 자신의 작품, 고미술 고가구와 함께 기증하여, 보수를 거친 후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으로 개관하였다.
거기에서 200미터쯤 가면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1867~1932) 기념관이 있다. 이회영 기념관은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손자 이종찬 씨가 대표로 있다. 기념관에는 이회영 선생의 형제들이 담소를 나누는 대형 그림이 있다.
이회영 선생께서 중국에 활동한 사료들이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다. 이회영 선생은 설명 하지 않아도 독립운동에 600억 원의 군자금은 물론, 무기를 구입하여 독립운동을 이끈 위인이다. 중국에 무관 학교를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매진하였다. 그럼에도 조선의 해방은 요원했다. 시간은 흘러 이회영 선생의 가족은 바느질을 해 가며 살아가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이야기의 중심은 불과 200미터 거리를 둔 두 개의 기념관에 관한 성지(聖地)와 비성지의 이야기다.
두 곳, 기념관을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김경식 (사)국제PEN한국본부 사무총장(시인)은 원칙을 가지고 안내를 한다.
김 사무총장은 친일의 주역인 윤덕영이 지은 박노수 기념관에 발을 들이면 우당 이회영 기념관은 갈 수 없다고 준엄하게 강조한다. 이회영 기념관은 신성한 곳으로 나의 발을 생각하고 들어가라 설명한다.
마치 '십계' 영화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발을 벗으라'는 이치와 같다. 김 사무총장이 말하는 뜻은 그곳의 환경을 눈으로 보고 들으며 말하는 모든 것이 네 발이 놓인 그곳의 환경에 따라 나 자신이 반응한다는 뜻이다.
오늘 내 발은 어디에 있었는가. 내일로 가는 나에 대한 중요한 기록이다.
역사적으로 신발이 갖는 의미는 크다. 2004년 6월9일, 영화배우 출신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관은 국회의사당까지 2.4km 거리를 말이 끄는 수레에 실어 옮겨졌다.
그 뒤를 기수 없는 말이 따랐다. 말 잔등에는 그가 신던 부츠가 뒤쪽으로 향한 채 매달려 있었다. 1963년 11월23일 존 에프 케네디 전 대통령 장례식 때도 부츠만 실은 '블랙 잭' 이라는 이름의 갈색 말이 운구 행렬을 선도했다.
이 같은 의전은 1865년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의 장례식 의전을 따른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주인 없는 말이 장례식 행렬을 이끄는 의식은 4세기 유럽을 정복한 훈족의 장례 풍습에서 비롯 됐다. 뒤쪽을 향한 부츠는 '죽은 지도자'의 상징이다.
동물 중 신발을 신는 것은 유일하게 사람뿐이다. 모세가 신었던 신발은 누가 만들었을까. 어느 회사의 제품일까. 분명한 것은 나이키는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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