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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통일

독일 '통일의 아버지' 헬무트 콜 前총리 별세…향년 87세

앙겔라 메르켈 현 총리의 정치적 멘토..."콜 전 총리는 내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았다"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독일 통일의 아버지', '유럽통합 설계자'로 불리며 독일 최장 기간(16년) 총리를 지낸 헬무트 콜(Helmut Kohl | Helmut Josef Michael Kohl)이 16일(현지시간) 숨졌다. 향년 87세.

독일의 일간 빌트는 이날 콜 전 총리가 서남부 라인란트팔츠주 루트비히스하펀 자택에서 아내 마이케 콜 리히터가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졌다고 전했다.

1930년 4월3일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콜 전 총리는 역사와 정치를 공부했으며 보수 기독민주당(CDU)을 통해 정계에서 급부상했다.

중도 우파 기독민주당 출신인 콜 전 총리는 1982~1989년까지 서독총리로, 1989년부터 1998년까지는 통일독일의 총리로 16년간 총리직을 지켰다. 현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을 중앙 정계로 이끌어 그녀의 '정치적 사부'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독 초대 총리인 콘라트 아데나워를 자신의 이데올로기 '조상'으로 여겼다. 그는 또한 총리로 재임하던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조기 통일론'을 주장하면서 미국 러시아 등을 설득해 이듬해인 1990년 통일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당시 프랑스, 영국 등 이웃국가에선 '다시 강대국이 되어 유럽평화를 위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강력하게 견제했다. 하지만 그는 통일에 대한 확신과 뛰어난 외교술을 바탕으로 이를 극복해냈다. 통일 독일을 만든 업적을 인정받아 그는 1990년과 1994년 연거푸 총리 선거에서 승리했다.

콜 전 총리의 정치적 역작이었던 '독일 통일'은 역설적으로 그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다. 통일에 따른 불가피한 후유증과 경제난으로 민심이 등을 돌린 것이다. 1998년 잇따라 터진 비자금 스캔들로 검찰조사까지 받게 되면서, 결국 같은 해 치러진 총선에서 슈뢰더 게르하르트 슈뢰더에게 총리직을 내주어야만 했다.

그는 대중의 사랑을 받은 정치인으로도 유명하다. 1980년대 당시 서독 총리였던 그를 놀리는 우스개를 모은 책 '콜 수상의 웃음'이 큰 인기를 끌었고, 국내에도 소개돼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이 책은 권위주의에 눌려있던 한국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2002년 9월 정계은퇴를 선언한 그의 말년은 어두웠다. 같은 해 초 햇빛 알레르기로 고생하던 부인 하넬로레 여사가 자살했다. 2008년엔 35살 연하의 마이케 리히터와 결혼했지만 콜 전 총리가 말년에 접어들면서 사실상 감금을 당한채로 지낸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여기에 2012년 심장수술, 2015년 장수술과 고관절 치료를 받는 등 노환에 시달려왔다.

콜 전 총리는 그 첫번째 부인 하넬로레와 사이에 두아들을 뒀으며 사별 이후 7년만에 경제보좌관 출신으로 35세 연하인 마이케 리히터와 재혼했다.

콜 전 총리는 앙겔라 메르켈 현 총리의 정치적 멘토로, 그녀를 1991년 통독 초내 내각의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콜 전 총리는 내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았다"며 "그의 덕분에 다른 수백만인처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의 삶을 떠나 자유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콜 전 총리가 없었다면 지난 27년 동안 일어난 모든 일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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