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한글날을 맞아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한 사단법인 갈물한글서회(회장 박정숙)의 55번째 전시회 ‘한글편지 모음전’이 지난달 28일 개막식을 갖고 오는 10월 4일까지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옛 선인들이 남긴 편지글을 한글서예로 다시 쓴 작품들이다.
숙종대왕이 고모 숙휘공주에게, 순원왕후 편지글, 명성황후 편지글 등 평소 접하기 힘든 궁중 편지글과 다산 정약용 선생이 자녀들에게 남긴 편지, 김대건 신부의 마지막 편지, 윤봉길 의사가 두 아들에게 쓴 편지 등 옛 선인들의 편지글을 한글서예로 재탄생시킨 작품 등 역사적 인물들의 편지글이 다양하게 선보인다.
이외에도 이미 고인이 되신 부모님께 생전에 드리지 못한 애절한 심정을 쓴 한글서예 작품 등 갈물한글서회 456명 회원들이 남편, 아들, 딸, 스승, 친구들에게 쓴 다채로운 소재의 편지 글들도 전시된다.
사단법인 갈물한글서회는 우리나라 1세대 현대 궁체 한글서예의 개척자인 한글서예가이자 여성운동가인 갈물 이철경(1914∼1989) 선생의 뜻을 이어 그 후진들이 만든 서예단체로 1958년 첫 전시회를 시작으로 올해 55회째 전시회를 마련했다.
갈물 이철경 선생은 항일 민족주의 교육자이자 국어학자 이만규(1882~1978) 씨의 2남4녀 중 셋째 딸이다. ‘갈물’은 부친이 지어준 아호로 ‘가을물’이란 뜻으로 한글 서체인 갈물체를 만들어 한글 서예(書藝)의 경지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궁체를 갈고 다듬은 갈물체는 단아함이 특징이다.
배화여고·이화여고·진명여고·경기여고 교사, 금란여고(현재 이대부고로 통합) 교장, 대한주부클럽연합회 초대 회장 등을 지낸 갈물 이철경 선생은 조선 후기 궁중 한글서체에 가까운 정돈되고 깔끔한 궁체로 이름난 한글 서예의 대가다. ‘신사임당 동상 명문’ ‘육영수 여사 묘비’ ‘유관순 열사 기념비’ ‘독립선언문’ 등을 남겼다.
개성 태생인 갈물 이철경 선생은 분단으로 부친, 쌍둥이 언니 봄뫼와 다시 만나지 못했다. 남편은 서정권(1910∼1990) 전 서울고 교장이다. 가수이자 방송인 서유석(71) 씨가 갈물의 차남이다.
박정숙 사단법인 갈물한글서회 회장은 “이번 전시회는 회원들이 직접 편지를 쓰고 붓끝으로 한자 한자 옮겨 담았다는 점에서 획기적으로 시도해 본 전시형식”이라며 “그 편지에는 기쁨과 슬픔, 회한과 반추, 감사와 격려의 마음이 녹아들어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어 “이미 고인이 되신 부모님께도 생전에 드리지 못한 효도어린 한마디를 한글서예로 승화시켰다”며 “후일 사람들은 모두 가고 세대는 바뀌더라도 한 시대를 살아 간 갈물한글서회 여성들의 삶의 애환은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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