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양방송) 고진아 기자 = 국가보훈처는 오금손 대위를 3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오금손 대위는 1931년 독립운동가 오수암 선생의 외동딸로 북경에서 태어났다. 한 돌이 되기도 전에 부모를 잃은 오 대위는 중국인 가정에서 자라다가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 항일투쟁의 길로 나서게 된다. 해방 이후 조국에서 개성 간호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개성도립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오 대위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진 입대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초, 오 대위는 포항 형산강지구 전투에서 부상자들을 돌보던 중 병원을 기습한 북한군의 공격을 물리치고 북한군 6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려 2계급을 특진, 대위로 진급하게 된다. 이는 광복군 시절 사격과 전투훈련을 철저하게 받은 결과라고 본인은 회고햇다. 아군의 북진 시기에도 늘 전장을 지키며 어려운 역할까지도 묵묵히 감당해냈던 그녀는 금화와 철원 중간지점에 있는 케이(K)고지 전투 중, 전우들과 함께 북한군의 포로가 된다. 끊임없는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던 그녀는 적군이 교전에 빠진 순간 탈출을 감행해 부대에 복귀, 끝까지 임무를 수행했다. 오 대위
(서울=동양방송) 고진아 기자 = 국가보훈처는 2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최전선에서 작전을 전두지휘하던 중 헬기사고로 전사한 브라이언트 이. 무어 미(Bryant E. Moore) 육군소장이 선정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31일. 한국에서 미 육국사관학교 교장이었던 무어 소장은 맥아더 사령부의 요청으로 미 제9군단장으로 부임해 바로 썬더볼트 작전에 참여, 중공군 및 인민군의 대공세에 맞서 경기도 및 서울 남부 지역에 반격을 가했다.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늘 최전선에서 병사들과 함께하고자 했던 무어 소장은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한 후 미8군이 중공군에 대해 실시한 최초의 적극 공세 작전인 킬러 작전에 참여했다. 킬러 작전은 중공군의 4차 공세로 형성됐던 중동부 전선의 열세직역을 회복하고 그 지역 안에 있는 적군을 포위해 격멸하기 위한 작전으로 1951년 2월 21일 개시됐다. 이 작전에서 무어 소장의 제 9군단은 주요 공격 임무를 맡아 양평~횡성 선으로 곧바로 진격하기 시작했고 무어 소장은 부하들을 진두지휘하며 최전선을 벗어나지 않았다.그러나 2월 24일, 정찰을 위해 탑승한 헬기가 여주 근처 한강에 추락하는 사고로 무어 소장은 전사하게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