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올해 처음으로 장맛비가 내리는 2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소문로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화단에 핀 나리꽃이 장맛비에 젖어 있다./사진=장건섭 기자
-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
궁거한인사(窮居罕人事) 어렵게 살다 보니 찾는 이 드물어
항일폐의관(恒日廢衣冠) 매양 의관도 갖추지 않고 있네.
패옥향랑수(敗屋香娘墜) 낡은 가옥 천장에선 노린재가 떨어지고
황휴부비잔(荒畦腐婢殘) 갈지 않은 밭두렁엔 붉은 팥꽃만 남아있네.
수인다병감(睡因多病減) 병이 많아 잠은 적어지고
추뢰저서관(秋賴著書寬) 글 쓰는 일로 수심을 달래보네.
구우하수고(久雨何須苦) 비 길다고 하나 뭐 괴로울까
청시야자탄(晴時也自歎) 맑은 날도 혼자 탄식하는 것을.

▲ 올해 처음으로 장맛비가 내리는 2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소문로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장맛비 속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사진=장건섭 기자
종일 장맛비가 내린다. 올해도 지겹도록 비가 자주 내릴 모양이다. '비 길다고 하나 뭐 괴로울까 맑은 날도 혼자 탄식하는 것을' 이란 다산 선생의 구우(久雨)의 마지막 구절(句節)이 참 마음에 와 닿는다.
병들고 그래서 수심도 깊고, 비는 무던히 내리고 천장(天障)에서는 노린재가 떨어지고, 의관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선생의 글 쓰는 모습이 참으로 기가 막힐 정도로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아무리 살 맛 안 나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지독하게 취해 세상을 원망하느니 차라리 그 세상을 비록 노쇠하고 병든 몸으로 보듬어 안으려 했던 선생의 詩 한 수가 요즘 세상사의 무심한 넋두리처럼 들리고, 또 이런 세상 우리 다 같이 위로 받고 싶어진다.
선생의 그 넋두리, 오늘따라 참 쓰리게 절창(竊聽)이다.
- 감상평/장건섭 기자(본지 편집국장)
i24@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