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론 역사를 바꾸는 수레바퀴를 하나의 부분으로 규정을 짖는 것은 어리석은 모습이다. 과학자에게 물으면 과학이 역사를 바꾼다 할 것이다. 논리정연하게 과학적으로 제시하면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인문 학자에게 물으면 당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역사를 바꾸고 쓰는 실체는 그 누구에게 물어도 답은 없다. 그러나 단정적으로 역사를 바꾸는 것은 ‘나무’라고 전제하고 싶다.
2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의 500년 역사 임금 중에서 가장 나무를 많이 심은 왕은 조선 제22대 이산(李祘) 정조(正祖, 1752년~1800년) 왕이다. 그의 별명을 식목 왕이라고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정조는 왕위에 있는 동안 1,20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었다.
정조는 백성을 만나고 대화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 나무를 심는 방법을 택하였다. 요즘으로 치면 마치 취미생활과 같이 ‘나무심기정치’를 했다. 정조는 왕의 역할을 매우 부지런하게 하였다. 그러면서 무려 1,2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는 것은 독특한 왕이다.
정조는 나무와는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억울하게 죽은 선친 사도세자는 나무뒤주에서 숨을 거두었다.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에게 뒤주를 가리키며 아버지를 살라달라고 애원했던 쓰라린 아픔도 있다.
정조는 선친 사도세자의 무덤을 녹화한 식목정치를 하며 효의 모법을 보였다. 백성들은 정조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의 산소에 나무를 심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정조는 나무 병충해를 막기 위해 송충이를 잡아온 백성에게 그 무게만큼의 돈을 지불했다. 산림을 아끼며 백성을 사랑하는 성군의 모습을 읽힐 수 있다.
정조 왕이 나서서 대대적으로 송충이를 구제하여 산림을 보호하는 기록도 있다. 당시는 농약과 같은 과학적인 병충해를 막는 약이 없었기에 송충이 피해가 심각했다.
조선왕릉에 나무를 심은 기록은, 태종 8년에 태조 이성계의 장례를 건릉원에서 치른 무렵에 처음 나타난다. 당시 장례가 여름에 치러져 나무를 심을 수 없었다. 장래 후 태종은 건릉원에 행차,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게 된다. 조선 왕릉에 가장 많이 심은 나무가 소나무다. 소나무는 왕실의 존엄을 상징했다. 지금도 부유층의 정원에는 소나무가 많다. 모두가 조선 왕릉의 존엄과도 같은 역사적 문화로 보인다.
이후 태종과 세종대에 심었던 것과 같은 나무 심기 기록은 한동안 찾아보기 어렵다. 후대의 왕들은 왕릉에 나무를 심는 것은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마치 밥 먹는 것을 일일이 기록하지 않듯이 구지 실록에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 영조에 들어서 경종의 능인 의릉을 조성하기 위해 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정조 당시에는 수레를 끄는 소가 땀을 흘릴 정도로 많은 양의 나무심기가 있었다. 정조의 일기에는 나무를 심었던 백성의 이름과 이들이 일한 기간, 지불한 품삯도 남겨졌다.
정조는 고을의 사또와 아전들, 나무를 심었던 군인, 나무 심는 일을 감독한 관리들이 기록에 있다. 특히 나무심기만을 위해 파견된 신하인 식목차사원(植木差使員) 등 많은 이들의 이름을 기록에서 보게 된다. 정조는 나무심기를 하고 반드시 시상도 했다. 마치 축제처럼 식목을 했다. 지금으로 치면 순천의 정원박람회와 같다. 정조는 이뿐이 아니다. 나무의 종류와 수량, 나무를 캐온 장소, 운반한 사람까지 꼼꼼히 후대가 알게 남겼다.
한마디로 정조는 나무심기로 조선의 중흥을 이끈 왕이다. 정조는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를 정조가 추존한 이름)의 무덤인 현륭원, 다시 말해 지금의 융릉에 가장 많은 나무를 심었다.
이 같은 정조의 모습에 백성들은 자기 돈으로 나무를 구입하여 현륭원에 심었다. 정조의 모습에서 백성들은 산소에 나무를 심는 것은 효의 실천으로 받아 드렸다.
정조는 역사는 나무가 쓴다고 보았다. 정조는 조선의 왕들 중, 가장 나무를 많이 심은 식목왕이다. 정조 왕은 역사는 울창한 숲이 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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