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5 (목)

  • 흐림동두천 0.1℃
  • 구름조금강릉 4.8℃
  • 박무서울 2.0℃
  • 박무대전 -0.1℃
  • 연무대구 -0.8℃
  • 연무울산 3.8℃
  • 구름많음광주 4.1℃
  • 구름많음부산 5.5℃
  • 흐림고창 2.2℃
  • 구름많음제주 8.4℃
  • 흐림강화 1.8℃
  • 구름많음보은 -2.9℃
  • 흐림금산 -2.1℃
  • 구름많음강진군 1.5℃
  • 구름많음경주시 -2.8℃
  • 구름많음거제 7.1℃
기상청 제공

[오피니언 칼럼] 최창일 시인, <진달래> 시집, 세로쓰기의 향수

세로쓰기는 중국, 일본, 한국 등에서 전통적으로 널리 쓰여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세로쓰기의 편집,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 권일송 시집은 1966년 9월 10일 발행 됐다. 137 페이지 책값은 250원이다. 판형은 세로쓰기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 <진달래> 김소월의 시집은 단기 4284년(서기 1950년)에 숭문사에서 펴냈다. 가격은 230원이다.

백석 시인의 정본 시집, 깊은샘 도서출판에서 원본 그대로 2007년 1월에 펴냈다. 당시의 가격을 표기하지 않았다. 정본이라는 말은 처음 펴낸 시집을 그대로 다시 만들었다는 말이다.

이들의 시집은 세로쓰기다. 세로쓰기는 중국, 일본, 한국 등에서 전통적으로 널리 쓰였다. 세로쓰기는 주로 한자의 사용과 관련이 깊다. 문서나 책의 디자인에 따라 일반적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편집이 됐다. 우리나라가 한문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일본, 중국과 같이 세로쓰기를 자연스럽게 사용됐다. 대표적으로 성경도 그렇다. 세로쓰기는 문화의 특성과 역사적 배경에 따라 발전해 왔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책들은 가로쓰기로 시작되었다. 이처럼 인쇄술 발달과 함께 가로쓰기는 책의 판형에 자연스럽게 세계의 모든 나라는 가로쓰기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나라도 서양의 책이 들어오고 타자기, 컴퓨터 자판의 일반화에 의해 가로쓰기는 어느 날 요이땅 하고 신호도 없이 자연스럽게 사용됐다. 굳이 역사를 표기하면 20세기 초로 기술함이 옮을 것이다.

이근배 시인이 2013년에 펴낸 <추사를 훔치다> 시집에는 제목은 세로쓰기, 본문은 가로쓰기했다. 이근배 시인이 제목을 세로쓰기하고 본문을 가로쓰기에는 나름의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하여 본다.

추사는 한문 쓰기의 명필가다. 한문 쓰기는 주로 세로쓰기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亂中日記)는 한문이다. 세로쓰기다. 그 시절에는 세로쓰기가 문화였다.

이근배 시인 시집의 편집은 추사를 떠올리게 하고, 그 시절의 문화를 편집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는 제목을 세로쓰기로 한 것은 추사와 같은 곧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인 것으로 유추된다.

시도반이 <시화무> 시집을 내면서 제목을 세로쓰기했다. 시도반이 제목에서 세로쓰기는 본문의 시가 두 줄, 길게는 다섯 줄, 짧은 내용이다. 시각적으로 공백의 시각을 살리기 위해서 제목에 한해서만 세로로 편집하였다.

우리나라의 최초 신문인 <독립신문>은 1896년 4월 7일에 창간되어 1899년 12월 4일에 종간되었다. 독립신문은 우리글로 편집되고 가로쓰기를 했다. 200년 전, 한문 사용과 세로쓰기가 익숙하던 시절이다. 신문을 창간한 서재필, 유길준은 개화파다. 이들이 독립신문을 만든 것은 ‘독립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정부의 상당한 예산 지원도 받았다. 신문은 근대민족주의·민주주의·자주화 근대화 사상을 강조했다. 국민을 계몽하는 일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독립신문이 수구 정파 정부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하면서 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매각을 강요하였고 이에 굴복, 1899년 12월 4일 자 신문을 끝으로 종간했다. 정부는 민간인의 신문사를 매수하며 속간을 약속했으나 결국 폐간됐다. 폐간을 위한 속임수였다.

독립신문이 나오던 편집의 형태는 타블로이드판 크기로 모두 4면이었다, 3면까지는 국판으로, 4면은 영문판으로 편집했다. 주 3회 화, 목, 토요일 격 일간으로 발행됐다. 1면은 대체로 논설과 신문사 광고, 2면에는 관보·외국 통신. 잡보, 한글판과 영문판으로 만들어졌다. 다분히 영어권의 사람도 읽히는 것에 착안을 둔 것으로 보인다.

서재필의 회상에 의하면 창간 당시 서울의 정동 본사 이외에 인천·원산·부산·개성·평양·수원·강화 등지에서 지국을 두었다. 신문의 부수는 300부씩 인쇄하던 것이 500부가 되고 나중에는 3,000부씩 발행하게 되었다 한다. 다른 자료에는 1898년 1월 독립협회 회원이 2,000명이었을 때 약 1,500부를 발행했다,

그해 11월 회원이 4,173명으로 늘었을 때 3,000부로 급증했다. 영문판은 미국, 영국·러시아·중국 등에 상당한 부수가 발송됐다. 영문판 발행 부수는 1898년 1월 약 200부였다. 개략적인 숫자지만 당시로 서는 많은 부수다. 오늘날은 한 집에 한 부를 보지만 당시는 여러 집이 돌려가며 보았던 것을 감 안, 상당히 폭넓게 회독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시집의 가로쓰기 이야기가 너무 장황 설이 됐다.

가로쓰기의 시집은 활판으로 다소 투박하다. 그래도 가로쓰기의 <진달래>,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 백석의 정본 시집은 학인의 서가에서는 가장 정면에 꼽혀, 가보와 같은 책이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화 평론가)

i24@daum.net
배너
대전문인총연합회 제6대 회장에 노수승 시인 취임
(대전=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대전문인총연합회(이하 대전문총)가 제39차 정기총회를 통해 노수승 시인을 제6대 회장으로 추대했다. 대전문총은 29일 대전 시내 한식당 '바다로'에서 회원 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기총회 및 회장 이·취임식을 열고, 신임 회장 인준을 비롯한 주요 안건을 처리했다. 이날 총회에서는 전년도 주요 업무 보고와 정관 개정, 2026년도 사업 계획 발표도 함께 진행됐다. 대전문총은 1990년 창립 이래 회장 선출을 둘러싼 갈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독특한 선출 방식을 유지해오고 있다. 문단 원로와 고문들로 구성된 회장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를 엄선해 추대하고, 이를 총회에서 회원들이 인준하는 이른바 '교황 선출 방식'이다. 이날 최송석 고문의 회장 인준 경과보고에 따라 참석 회원들은 만장일치로 노수승 시인을 제6대 회장으로 인준하며, 대전문총 특유의 화합 전통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지난 6년간 대전문총을 이끌어온 제5대 김명순 회장은 퇴임사를 통해 "열정을 바쳤던 회장직을 내려놓고 다시 평범한 문학인의 자리로 돌아가 순수한 창작의 열정을 되살리고자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특히 그는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이 소외되는 AI 시대


배너
배너

포토리뷰


배너

사회

더보기
송운학 민청학련동지회 이사 겸 개헌개혁행동마당 상임의장, 고(故) 이해찬 전 총리 추모 글 남겨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송운학 민청학련동지회 이사 겸 개헌개혁행동마당 상임의장이 공무 수행 중 별세한 고(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추모하며, 그의 민주화운동과 정치적 여정을 기렸다. 특히 대학 시절부터 이어진 동지적 관계와 옥고의 기억은 이해찬 전 총리의 삶을 관통한 민주화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으로 언급됐다. 송운학 이사는 최근 발표한 추모 글에서 "이해찬 동지는 민주주의를 말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한 인물”이라며 “이제는 모든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해찬 전 총리는 지난 1월 25일 베트남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공무 출장 중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별세했다. 그는 7선 국회의원, 교육부 장관,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을 지내며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를 거쳐 이재명 후보에 이르기까지 민주진영의 주요 정치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의 정치적 이력 이전에 민주화운동가로서의 삶은 대학 시절부터 시작됐다. 이해찬 전 총리는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73년,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학내 시위에 적극 참여했으며, 이듬해인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돼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당시 비

정치

더보기
'통일교 1억' 권성동 징역 2년…법원이 규정한 것은 '부패'가 아니라 '정치의 거래'였다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통일교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1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1심에서 징역 2년과 추징금 1억 원을 선고받았다. 같은 재판부가 김건희 여사에게 선고한 징역 1년 8개월보다 두 달 더 무거운 형량이다. 법원이 이번 사건을 단순한 금품 수수가 아닌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결탁으로 본 결과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는 권 의원이 2022년 1월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으로부터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교단 현안에 대한 청탁과 함께 현금 1억 원을 받은 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국회의원은 헌법상 청렴의무에 따라 국가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며 "이번 범행은 국민의 기대와 헌법적 책무를 저버린 행위"라고 못 박았다. 특히 재판부는 '실제 대가성'을 분명히 했다. 권 의원이 금품 수수 이후 윤 전 본부장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면담시키고, 통일교 행사에 직접 참석했으며, 나아가 통일교 수뇌부의 해외 원정도박 관련 수사 정보를 전달한 점까지 지적했다. 이는 단순한 친분 차원의 편의 제공이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 행사의 실행으로 판단된 대목이다. 권 의원 측은 특검 수사의 적법성과 공소장 일본주의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