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국가무형문화재 제49호 '송파산대놀이'와 서울지방문화재 제3호 '답교놀이'의 복원 및 제정에 80평생을 바친 인간문화재 49호인 한유성(1908~1994년) 선생의 예술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제7회 한유성문학상’이 오는 12월 9일 오후 서울 송파구청 4층 대강당에서 개최된다.
계간 시 전문지 '포엠포엠'(대표 한창옥)과 서울 송파구(서강석 구청장)은 이번 2023년 '제7회 한유성문학상' 수상자로는 박완호 시인을 선정했다고 9일 밝혔다. 시상식은 문학매거진 '포엠포엠' 100호 발행 기념과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수상자 박완호 시인은 1965년 충북 진천 출생으로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한 뒤 서정적 울림으로 전염력 강한 시세계를 견지하며 시집 '아내의 문신', '너무 많은 당신', '내 안의 흔들림', '누군가 나를 검은 토마토라고 불렀다', '문득 세상 전부가 되는 누군가처럼' 등 여러 권의 시집을 간행했고, 2011년 '김춘수시문학상', '경희문학상'등을 수상한 한국 시단의 중견이다.
현재 풍생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이다.
심사위원으로는 이건청 시인(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나태주 시인(전 한국시인협회 회장, 이숭원 문학평론가(한양대학교 명예교수, 한창옥 시인(포토포엠 대표)가 맡았다.
이승원 문학평론가는 심사평에서 "수상자 박완호 시인의 일상은 전 궤적과 용량이 시에 응결되어 있다"라며 "'어딘가에 새겨져 있을 노래의 지문을 찾아', '아무것도 아니다가 문득 세상 전부가 되는 누군가'를 찾아 구만리 장천을 쉬지 않고 비행한다. 한국 시단의 희유한 박완호는 영혼과 언어의 격렬한 싸움판이 그의 시의 무대다"라고 평했다.
박완호 시인은 수상 소감을 통해 "지인들과 석촌 호수를 걷다가 만난 한유성 님의 기념비 앞에 멈춰 서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라며 "'송파산대놀이'와 '송파다리밟기'의 복원과 계승을 통해 전통 문화예술의 가치를 살리고 그 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공헌하신 고인의 값진 삶을 마음 깊이 새기겠다"라고 전했다.
박 시인은 이어 "시의 울타리 밖 넓은 세상에 우뚝 서 계신 그분의 이름을 새긴 뜻 깊은 상을 받는 설렘을, 제 시의 시야와 보폭을 더 넓혀가라는 회초리로 삼아, 시인의 본분을 지켜가며 시 쓰기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송파산대놀이'는 서울 송파 지역에서 전승되던 탈놀이로, 놀이꾼들이 탈을 쓰고 재담, 춤, 노래, 연기를 하며 벌이는 연극적인 놀음이다.
송파는 한강변의 5강(송파, 한강, 서빙고, 용산, 마포)의 하나로서 송파진(松坡津)으로 불리던 곳이며, 조선왕조 후기에는 한국에서 가장 큰 향시(鄕市) 15곳 중의 하나인 송파장을 이루어, 송파산대놀이의 경제적 요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문헌 자료에 따르면 약 200년 전부터 '송파산대놀이'가 창성되었으나 중도에 쇠진되었던 것을 1900년부터 송파에 거주하는 허윤(許鈗)에 의해 구파발 본산대 연희자 윤희중(尹熙重, 1840∼1923)을 초빙하여 재건하고, 그 뒤 연중행사로 정월 보름·단오·백중·추석에 놀았는데 7월 백중에는 크게 놀았다고 한다.
1924년에는 큰 규모의 산대놀이 모임을 송파에서 열었는데 이때에 구파발·아현·퇴계원·의정부·노량진 등지에서 20여 명의 이름 있는 연희자들이 모였다고 한다.
이듬해 한강대홍수로 송파마을이 유실되자 주민들은 가락동과 돌말이(石村])에 정착하면서 산대놀이의 명맥을 이어오다가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49호(1973년 11월 11일 지정)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으며, 서울놀이마당 전수회관에서 전수되고 있다.
또한 '송파다리밟기'는 정월 대보름에 하는 놀이로 자기 나이만큼 개울가 다리를 밟으면 다리에 병이 나지 않고, 모든 재앙을 물리칠 뿐만 아니라 복도 불러들인다는 신앙적인 풍속에서 나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다리밟기를 하면 다리 병을 앓지 않는다는 관념이 강한 것은 다리(脚)와 다리(橋)의 발음이 같은데서 생긴 민간신앙이며, 언어의 유희성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다리밟기는 답교 또는 답교놀이라고도 하며 강릉지방에서는 다리빼앗기라고도 한다.
다리밟기놀이는 양반에서부터 서민까지 구분없이 즐겼으며, 다리밟기를 할 때에는 사대문도 닫지 않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것을 알 수 있다.
옛날 장안에 있던 다리는 몇 개 되지 않아 몰려든 사람들로 혼잡해지자 양반층에서는 서민과 어울리기를 꺼려 하루 전날인 14일 저녁에 다리를 밟아 양반다리밟기라 하였고, 부녀자들은 16일 저녁에 다리를 밟았다고 한다.
무리를 지어 다리밟기를 하면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어 혼잡한 가운데 여흥으로 기분을 돋우던 것이 점차 그 성격이 변하여 놀이패가 따로 조직되면서 연희성을 띠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송파다리밟기'는 뛰어난 가무가 특색이다. 다리밟기놀이는 고려 때부터 행하여졌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이며 우리민족의 생활감정이 담겨 있는 민속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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