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사노바는 시를 쓰며 동양의 나라들, 특히 한국에 대한 동경을 가졌던 인물로 알려진다. 동양을 다녀온 성직자가 한 폭의 그림을 카사노바에게 선물한 적이 있다. 그림에는 한국의 선비가 '갓'(양반, 관리가 쓰는 모자)을 쓰고 거리를 걷는 것이 호기스럽고 이채로웠다. 모자의 재료가 거웃이나 말꼬리 털 같지만 위엄이 있어보였다.
카사노바는 언젠가 여행을 통하여 한국의 갓을 쓰고 의관을 직접 체험하여보리라 다짐 했다. 그가 남긴 22권의 회고록, 40권의 저서는 연애지상주의자라든가 성적 쾌락주의자라고 폄훼, 무리한 해석들이 분분하다.
그의 회고록은 200년 전의 베네치아와 로마, 프랑스의 문화가 형태학적으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는 유럽 도시의 곳곳을 여행하였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가 사랑했던 여자들의 심리, 가정 배경도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복식 학자나 당시의 문화형태학을 연구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 우리로 치면 유홍준 교수의 ‘우리문화유산 답사기’와 같다.
카사노바는 물의 도시 베니스에서 1725년 4월 2일에 태어났다. 당시 베니스는 예술과 정치, 음모가 화려하게 꽃피는 유럽의 중심이었다. 카사노바의 부모는 무명배우로 외할머니 댁에 카사노바를 맞기고 유럽의 곳곳을 순회공연을 하였다.
할머니 손에서 자란 카사노바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 애정결핍이 있었다. 아버지마저 일찍 사망하게 된 그는 9살에 학교의 기숙사에 보내진다. 외로운 시간을 엄청난 독서로 지식을 쌓는다. 이 당시 쌓은 지식은 평생 동안 밑천이 되고 저서를 남기는 동력이 되었다.
그에게 여섯 형제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명석한 두뇌를 가졌다. 여동생은 유명화가로 그림 수집가의 관심을 충족시켰다. 카사노바의 키는 2미터가 될 정도로 거인인데다가 수려한 외모를 가졌다. 파도바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한다. 선천적으로 탁월한 언어 능력이 있어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히브리어에 능통했고 스페인어, 영어도 어렵지 않게 구사 했다.
회고록에서 밝힌 교제의 여자는 122명이다. 세간의 소문은 900명이다, 1000여명이라는 등 부풀려져 있다. 당시는 군인이 되거나 성직자가 되는 것이 출세의 길이었다. 카사노바는 성직자를 택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알비세 말리피에로의 도움으로 1740년 열 일곱의 나이에 사제 수업을 마치고 성직에 입문한다.
베네치아의 코레 대주교로부터 신품을 받는다. 그는 스페인 주재 교황청 대사인 아쿠아비바(Acquaviva,1696~1747) 추기경의 비서실장을 지내며 아주 짧은 기간에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한다. 대주고 말리피에로가 영일곱살인 어린 가수 테레즈를 농락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 혼란스러웠다. 그러는 사이 카사노바에게 몽레알 백작부인의 관리인 딸인 루시아를 알게 되고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사제(司祭)라는 것을 인식, 사랑과 욕정을 절제한 채 그녀를 떠난다.
훗날 그녀가 호색한에게 농락당한 것을 알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다. 다시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성으로 절제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리고 사제의 길이 맞지 않다고 판단하고 파도바대학에서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박사학위는 받았으나 카사노바의 경제적인 어려움이 컸다.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소극장의 초라한 바이올린 연주자로 빵을 해결한다. 위기는 기회를 가져온다고 했다는 말이 카사노바에게도 주어졌다. 연주를 마치고 곤돌라에 올랐는데 때마침 베니스의 시의원이던 브라가딘 경이 뇌졸중을 일으켰다.
카사노바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브라가딘 경을 집으로 옮기고 간호했다. 브라가딘 경이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이 초자연적인 힘을 사용하여 치료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너무 뻔뻔한 카사노바의 말을 믿고 브라가딘 경은 카사노바를 양자로 입적하고 그에게 부와 명예를 가지는 기회를 주었다.
시인, 요리사, 법학자, 군인의 경력을 가진 천재의 카사노바에게 수많은 상류사회의 여성들과의 교제를 나누는 계기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카사노바는 예술과 감각의 세계를 사랑한 18세기, 세기의 풍운아적 인물이다. "나는 그것이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평생 모든 일을 행하면서 내가 늘 자유로웠다"는 회고록의 첫 문장을 남기며 70세의 생을 살았다.
보헤미아의 둑스 성에서 발트슈타인 백작의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자서전 <나의 인생이야기>를 썼다. 1798년 6월4일 둑스에서 눈을 감는다. 하지만 꿈꾸었던 한국 여행계획은 결국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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