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콜릿이 상품화되기 전의 역사는 1510년대로 올라간다. 여러 모양의 상품화 된 것은 150년 전, 음료나 분말형태로 마시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당시의 초콜릿은 귀족, 상류사회의 전유물이었다.
1826년에는 네덜란드인 반 호텐(Van Houten)이 물에 녹는 카카오 분말을 만들었다. 이어서 1847년 영국에서는 오늘날 먹는 판형(태블릿) 초콜릿 제품이 출시되면서 어린이는 물론 성인에 이르기까지 일대 혁명과 같은 인기를 모았다.
1870년 프랑스의 므니에(Menier)와 그의 자손들이 누아지엘(Noisiel) 마을에 스마트한 모양을 디자인한 초콜릿 공장을 설립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현상은 프랑스에서 향수를 상품화하기 시작한 것은 1828년이다. 프랑스에서 초콜릿과 향수가 공장을 설립한 시기는 불과 40년 사이, 같은 년대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 나오기 시작한 향수의 역사는 5천 년 전으로 올라가지만 상품으로 만든 것은 200년 전 프랑스다. 초콜릿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초콜릿을 먹지만 멋들러지게 디자인된 초콜릿은 아니었다.
이런 면에서 프랑스는 여성과 어린이가 좋아하는 향수와 초콜릿 상품을 만들어 문화경제부국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초콜릿을 많이 먹는 나라다. 년 간 1인당 6.8kg의 초콜릿을 소비하고 있다. 물론 향수의 소비량도 세계 최고다.
초콜릿은 원재료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콘칭기법이다. 기술은 초콜릿의 품질이 좌우 될 수 있다. 여기에 작업자의 템퍼링이라는 온도조정 작업이 추가되면서 초콜릿의 기본적인 맛과 풍미가 최종적으로 결정된다. 커피 아메리카노 브랜딩으로 보면 이해가 빠르다.
자그마한 카카오나무의 열매에서 비롯된 맛과 향은 신비롭다하여,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까지 했다. 시간은 흘러 이제는 프랑스의 전유물은 아니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만들고, 소비되는 초콜릿 판매량은 상상을 넘어서고 있다. 그 만드는 기술 또한 나라별 평준화의 길을 걷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벨기에다. 벨기에 가면 와플과 초콜릿을 꼭 먹어봐야 한다는 여행자들의 여행담도 있다.
C작가는 벨기에 나라를 좋아 한다. 좋아하는 이유가 조금은 우습다. 작가가 좋아 하는 미국의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1929~1993)배우가 태어난 나라기 때문이다. 세상에 좋아하는 이유도 별스럽다.
오드리 헵번은 배우 중 가장 많은 팬을 보유했다. 한국에도 햅번기념사업회가 있을 정도다. 고인이 된지 27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헵번의 브로마이드는 가장 많이 나가고 있다. 심지어 유명 화가들이 가장 선호하여 그리는 인물이다. 그 같은 결과는 삶의 태도가 숭고한 봉사자였기 때문이다.
벨기에는 다른 나라를 침략한 역사가 없다. 그래서 평화의 나라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벨기에가 침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대로 벨기에는 수없이 침략을 받은 나라다. 마치 한국의 역사가 수많은 외침을 받았으나 한국이 다른 나라에 침략의 역사가 없는 것과 같다.
벨기에는 해마다 1천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 관광지로 인기가 있다. 거기에 초콜릿, 맥주, 와플의 나라다. 스머프와 플란다스의 개, 틴틴 모험이 만들어진 만화의 나라이기도 하다.
벨기에는 초콜릿 가게가 가장 많은 나라다. 가까운 가게에서 초콜릿을 사들고 ‘레미제라블’과 ‘파리의 노트르담’의 작가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 말한, 그랑플라스 광장을 걷다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의 손에는 초콜릿이 들려 있다. 벨기에를 가는 것은 초콜릿의 맛을 보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다.
초콜릿을 좋아했던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시인 겸 극작가빅 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는 유명 작가 중 가장 염문(廉問)을 많이 뿌리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빅토르 위고는 염문의 여인들에게 달콤한 초콜릿 선물을 즐겨 했다. 그래서 달콤한 초콜릿 선물은 조심해야 한다.
- 최창일 시인('시화무' 작가)

i24@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