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5 (수)

  • 흐림동두천 23.5℃
  • 흐림강릉 30.0℃
  • 서울 24.7℃
  • 대전 24.5℃
  • 대구 28.9℃
  • 흐림울산 27.3℃
  • 광주 26.0℃
  • 부산 23.5℃
  • 흐림고창 25.6℃
  • 흐림제주 29.7℃
  • 흐림강화 22.9℃
  • 흐림보은 24.4℃
  • 흐림금산 25.4℃
  • 흐림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8.5℃
  • 흐림거제 24.1℃
기상청 제공

[오피니언 칼럼] 최창일 시인, '울지마 톤즈'의 뜨거운 존재

이태석 신부, 2010년 개봉 '울지마 톤즈' 주인공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서 8년 동안 선교 활동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어머니를 일찍 잃은 소녀의 소원은 엄마의 냄새를 3시만 맞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1시간은 너무 작고 4시간은 너무 욕심인 것 같아서 3시간만이라 했다. 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한 간절함은 누구에게나 있다. 수단의 톤즈에 사는 사람들이 그토록 잊지 못하는 사람, 이태석 신부가 있다.

지난 1월 14일은 수단의 슈바이처 톤즈의 성자로 불리는 이태석 신부의 기일이다. 왜 이태석 신부를 잊지 못하고 기일까지 기억하는 것일까. 거슬러 올라가보면 2010년이었다. 이태석 신부님의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를 방송에서 감상하고 한양성터를 하염없이 올랐다.

수많은 생각들이 발끝에 부딪혔다. 이태석 신부의 티 없이 맑고 맑은 삶으로, 생각의 발끝이 가고 있었다. 이태석 신부는 부산의 판잣집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이신부는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현 남수단 소재)에서 8년간 의사와 교사, 선교사로 활동을 하다가 2010년 1월 14일 48세로 타계했다. 그는 인제대 의대를 졸업한 뒤 신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광주가톨릭대를 거쳐 신부가 되었다.

이후 내전과 전염병으로 고통 받는 톤즈로 달려가 병원을 짓고 아픈 사람을 돌봤다.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웠다. 수학과 음악을 가르쳤다. 총칼 대신 악기를 들게 했다. 35인조 브라스밴드를 결성 했다. 딩카족 후예들은 남 앞에서 눈물 흘리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고 한다. 그들에게 이 신부는 사랑의 눈물을 일깨웠다. 한국에서 대장암 판정을 받던 순간에도 수단에서 파다만 우물을 걱정했다.

그의 헌신적인 삶은 영화 '울지마 톤즈'에 고스란히 담겼다. 지난 9일에는 '울지마 톤즈 2-슈크란바바'가 개봉됐다. 이번 영화에는 그의 제자로 한국에 와 의사가 된 토마스타반 아콧 등 '톤즈후예'들이 등장했다.

인제대 의대를 졸업한 톤즈 출신 젊은이들은 고국으로 가 의료봉사에 나설 계획이다. 한국에서 토목공학을 공부하고 돌아가 남수단의 인프라 건설에 앞장선 청년도 있다.

이렇게 이태석 신부의 삶의 씨앗은 노란 꽃의 민들레처럼 퍼져만 간다. 이 땅에는 제 2의 이태석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2007년에는 이 신부를 돕기 위해 출법한 수단 어린이장학회는 후원국을 확대해 동티모르, 말라위, 잠비아 등 10여개 나라를 지원하고 있다. 이태석 신부를 기념하는 기념관도 1월15일 문을 열었다. 그가 나고 자란 부산의 마을이다. 소박한 자료들이 이태석 신부를 기리고 있다.

'울지마 톤즈'는 한국의 종교 다큐멘터리 흥행 1위, 전체다큐멘터리 역대 흥행 5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영화의 내용은 결코 무겁거나 슬프지 않다. 오히려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게 하는 장면들이 있다.

1편이 수단의 참상과 이 신부의 활동을 소개하는 데에 중점을 뒀다면 2편은 사제이자 의사인 이태석 신부만이 아닌,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인간 이태석을 그려내고 있다. 이 신부의 주변 사람들은 생전에 그는 밝고 재미있고 열정의 사람이었다고 회고 한다. 영화의 담긴 모습도 그러하다.

가진 것 없는 환자에게 진료비 대신 호박을 받아 들고 환한 미소가 좋다. 전쟁과 가난으로 동심을 잃은 아이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직접 악기 연주와 악보 보는 방법을 가르친다. 아이들을 친구처럼 대하는 이 신부의 모습은 천 상 예수님이다.

조계종 자승 스님은 '울지마 톤즈'를 보고 '이 영화를 3번이나 보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내가 종교를 가톨릭으로 개종해야 하는 거 아닌지' 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영화는 불자들이 단체로 관람을 한다.

이 영화를 통해 그 누구보다 구체적인 사랑을 실천했던 이 신부의 삶이 우리들에게 젖어만 든다. 너무나 착하고 뜨거운 온도의 인간, 이태석 신부가 그리운 날이다.

"나를 위해 울지마, 네 이웃을 위해 울어,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라는 그의 마지막 가르침과 함께.

- 최창일(시인·이미지문화학자)

i24@daum.net
배너
서울특별시한궁협회, '제1회 서울특별시한궁협회장배 세대공감 한궁대회' 성료
(서울=미래일보) 서영순 기자 = 서울특별시한궁협회가 주최·주관한 제1회 서울특별시한궁협회장배 세대공감 한궁대회가 지난 17일, 서울 노원구 삼육대학교 체육관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약 250명의 선수, 임원, 심판, 가족, 지인이 함께한 이번 대회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스포츠 축제로, 4세 어린이부터 87세 어르신까지 참가하며 새로운 한궁 문화의 모델을 제시했다. 대회는 오전 9시 한궁 초보자들을 위한 투구 연습으로 문을 열었다. 이어진 식전 공연에서는 전한준(87세) 작곡가의 전자 색소폰 연주로 '한궁가'가 울려 퍼졌으며, 성명제(76세) 가수가 '신아리랑'을 열창했다. 또한 김충근 풀피리 예술가는 '찔레꽃'과 '안동역에서'를, 황규출 글벗문학회 사무국장은 색소폰으로 '고향의 봄'을 연주해 감동을 더했다. 마지막으로 홍소리 지도자가 '밥맛이 좋아요'를 노래하며 흥겨움을 더했다. 오전 10시부터 열린 개회식에는 강석재 서울특별시한궁협회 회장을 비롯해 허광 대한한궁협회 회장, 배선희 국제노인치매예방한궁협회 회장 등 내빈들이 참석해 대회의 시작을 축하했다. 김도균 글로벌한궁체인지포럼 위원장 겸 경희대 교수와 김영미 삼육대 교수, 어정화 노원구의회 의원 등도


배너
배너

포토리뷰


배너

사회

더보기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 위안부 피해자·단체 명예훼손 소송 패소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제기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류석춘 전 연세대학교 교수가 패소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6월 13일, 류 전 교수가 피해자 및 관련 단체에 대해 5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류 전 교수가 지난 2019년 강의 중 '반일종족주의'를 인용하며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는 발언을 하고, 이를 항의한 여학생에게 성희롱성 발언까지 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그는 당시 학교로부터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았으나 불복하며 소송을 제기했으며, 2023년 대법원에서 징계가 정당하다는 최종 판단이 내려졌다. 형사 재판에서도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지난 2024년 2월, 서울서부지법은 류 전 교수가 "정대협이 피해자들을 모아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는 등의 발언으로 단체의 명예를 훼손한 사실을 인정해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이와 관련해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는 6월 13일 입장문을 통해, 이번 민사소송 판결이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의연은 "피해자

정치

더보기
김민석 총리 후보자 "억울해도 버텼다…세금 완납, 가족에게까지 고통 줘선 안 돼"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과거 정치자금 추징금과 관련한 진실을 털어놓으며, 청문회를 앞두고 제기되는 의혹들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후보자는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책임을 다하고, 숨통을 조이는 세금 압박에도 신용불량 상태에서 끝내 완납했다"며 "이제는 가족에게까지 고통이 전가되는 상황이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김 후보자는 "표적 사정으로 시작된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며 "요청하지도 않은 중앙당 기업 후원금 영수증 누락 문제로 2억 원의 추징금을 받았고, 숨막히는 중가산세까지 더해 최종적으로 10억 원 가까운 세금을 납부했다"고 밝혔다. 당시 2002년은 기업의 정치 후원이 법적으로 가능했던 시기였다. 김 후보자는 "당시 전세금까지 털어 추징금을 갚았고, 분납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세무당국의 냉정한 태도에 결국 어머니 명의의 집을 담보로 내놓고도 해결이 어려워, 지인들에게 천만 원씩 빌려 급한 불을 껐다"고 설명했다. 김 후보자는 최근 이 채무도 은행 대출로 모두 정리했다고 밝혔다. 추징금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을 소상히 밝힌 김 후보자는, "정치적 미래가 전혀 없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