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전북에서 풍천의 지명을 거론하고 나오는 것은 색다른 주장이다. 모운동도 지도상에 없는 지명이었다. 모운동은 구름이 모이는 장소를 말한다. 이 같은 언어들은 시인의 창작 창고에서 나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운동(강원도 영월) 마을이 형성되고 사평역(2008년)도 생겨났다.
김경수 시인이 펴낸 <기수역의 탈선>도 실재 지도상에 없는 역명이다. 이 같은 것들은 곽재구 시인의 시집 <사평역에서>는 은유의 극대치를 이끌어 내는 문학의 샅바다.
故 황금찬 시인은 ‘지구상에 없는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이 시인의 사명이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사기꾼이 없다’고도 했다. <기수역의 탈선>을 펴낸 김경수 시인의 독특한 앵글이 돋보인다.
<사평역에서>는 곽 시인이 형상화 하고자 하는 것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애환을 조용하게 응시하고 있다. 과거의 그리웠던 순간, 꽃처럼 밝고 따듯했던 순간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현재의 삶의 무게를 묵묵하게 지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연민으로 바라본다. 특히 ‘한줌의 눈물을 불빛에 던져 주었다’는 표현은 시의 절미(晢美)다.
기수역이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경계를 말한다. 바닷물과 밀물의 만남은 그저 흐르는 물이다. 탈선이 있을 수 없다. 김 시인은 묘하게도 이 지점을 탈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곽재구 시인의 시선과 다를 바 없다.
곽재구 시인의 시집에 영감을 받아 임철우 작가는 <사평역> 소설을 펴내기도 했다. 곽재구 시인의 시가 소설이 되고 역명이 실존으로 탄생되었다.
기수역은 바닷물이 만남으로 수많은 생명체가 살기 좋은 물의 중심이다. 김경수 시인은 시는 어딘가 부딪히면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암시를 수없이 주고 있다. 마치 작심하고 ‘부딪히기만 해보라’는 항거와도 같다. 부딪힘은 맑고 투명해지는 시경(詩經)의 주장을 일컫는다.
김경수 시인의 <기수역의 탈선>은 언어가 빗방울을 깨무는 그 소리들이 들린다. 존재의 맨살에 싹을 틔우는 시어들이 생동감이 넘친다. 그는 ‘시는 죽은 씨앗을 살리는 힘이 존재’라고 믿고 있다. 김경수 시인은 시묘상(詩苗商)의 주인과도 같다. 언어의 사용과 감각은 작가의 피나는 노력의 결실이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작품에서 성경을 약 1000번을 인용하고 있다. 1000번을 인용했다는 것은 셰익스피어가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읽고 이해를 했다는 것이다. 그가 영국의 성공회 신자였는지 아니면 비밀리에 로마 가톨릭을 믿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부모 양쪽이 로마가톨릭 가문인 것은 분명하다. 당시 국법은 로마 가톨릭 때문에 죽임을 당한 사람도 있어서 셰익스피어가 신자였다면 비밀 신자였다는 추측이 뒤 따른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종교와 관계없이 성경을 본다. 성경에는 수많은 은유와 비유가 빼어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에는 2만8829개의 단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그 두 배가 넘는 6만 여개를 쓰고 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는 신조어가 1700개나 나온다. <햄릿> 한 편에 600개가 등장하는데 이런 것들이다. '셀 수 없는(countless)', '서두르다(hurry)', '외로운(lonely)', '우울한(gloomy)'…. 단어를 몇 개씩 이어 만드는 것도 그의 특기 가운데 하나였다. '침묵을 깨다(Break the ice)', '명백한 진실(Naked truth)' 같은 것들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연인이 사랑을 나누다 헤어지며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별은 달콤한 슬픔(Sweet sorrow)이다.' 이와 같은 단어들은 셰익스피어의 천부적 재능도 있지만 성경을 깊이 이해한 차용효과라는 학자도 있다.
배우 김지미가 이혼을 하며 '사랑을 하기에 헤어진다'는 말을 남겨서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같은 말은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의 차용문구로 보인다.
시인 권일송은 무신론자다. 그러나 시를 쓰기 위해 성경을 20회 이상 읽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성경시편을 100회 이상을 탐독하였다고 한다. 문학, 시는 흩어지는 작은 목소리를 붙드는 것이다. 눈을 맞추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시를 읽게 되면 세상에 내어 주었던 나와의 재회하는 저녁이 된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힘이 탄생한다. 문학은 세상의 문을 여는 것이 아니다. 문을 만드는 것이다.

- 최창일(시인·이미지문화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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