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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조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회장 "피로 지킨 민주주의, 왜곡되지 않기를"

강경대 열사의 부친 강민조 회장이 말하는 '기억해야 할 진실'
강민조 회장 "민주주의는 누군가의 피로 쓰인 역사입니다"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이연종 기자 = 1991년 4월, 서울 명지대학교 앞 거리에서 열아홉 청년 강경대가 경찰의 쇠파이프에 쓰러졌다. 시위 도중 백골단에 의해 무차별 폭행을 당한 그는 끝내 세브란스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독재와 불의에 저항하던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피 끓는 현실이자, 1991년 봄을 뒤흔든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33년이 흐른 지금, 그의 아버지 강민조 씨는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회장으로서 여전히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8월 3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 20길 충신회관 7층 강경대열사기념관. 1991년, 잔혹한 공권력의 폭력에 쓰러진 열아홉 청년 강경대의 모습이 흑백 사진 속에서 여전히 오늘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아래 놓인 국화 곁에서 한 노인이 묵묵히 시선을 내린다. 강경대 열사의 부친이자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회장인 강민조 씨다.

"우리 자식들이 피로 지킨 민주주의는 정권의 도구나 정치적 유불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역사 그 자체로 기억돼야 합니다."

강민조 회장은 이날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민주화운동의 희생이 오히려 왜곡되거나 외면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깊은 우려를 밝혔다. 그리고 지금의 자유와 권리가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강경대 열사의 삶과 죽음

강경대 열사는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1년 명지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민중가요 동아리 ‘땅의 사람들’에 가입하며 사회적 감수성을 키워갔다.

그러나 그해 한국 사회는 여전히 완전한 민주주의로 가는 과도기에 있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노태우 정권(1988~1993) 하에서 여전히 권위주의적 통치와 공권력의 폭력성은 남아 있었다.

학생운동권은 등록금 인상 반대와 학내 자치 쟁취 등 학내 문제를 넘어 사회변혁을 향한 시위로 나아갔다. 그러나 정부의 강경 대응과 충돌하며 운동은 점점 과격화되었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안정과 질서를 명분으로 경찰력을 강화했고, 사복경찰 기동대인 백골단까지 동원해 학생들을 진압했다.

1991년 4월 26일,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며 시위하던 강경대는 경찰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던 중 백골단에게 붙잡혀 머리에 무차별적인 구타를 당했다. 심각한 두부 손상으로 의식을 잃었고, 결국 이틀 뒤 세브란스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공권력에 의해 살해당한 청년의 비극이었으며, 곧 1991년 한 해를 뒤흔든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1991년 '분신정국'을 촉발한 불꽃

강경대 열사의 죽음은 전국적인 항거의 불씨를 지폈다. 서울대 등 전국 대학에 분향소가 차려졌고, 수많은 청년들이 추모 촛불을 들었다. 학생, 노동자, 종교계, 문화예술계까지 참여한 대규모 시국선언과 장례투쟁이 이어졌다.

특히 같은 해 5월까지 청년들의 연쇄 분신이 이어졌다. 박승희, 김영균, 김기설, 김귀정 등은 한국 사회를 뿌리째 뒤흔들었다. 민주주의가 제도로만 보장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수많은 희생 위에 지켜져야 한다는 절규였다.

당시 시민사회는 "강경대를 살려내라"는 구호를 외쳤고, 경찰의 백골단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물었다. 결국 여론에 밀린 정부는 1991년 7월, 백골단을 공식적으로 해체했으나, 공권력의 개혁은 여전히 표면적인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아들의 길을 이어간 부친의 삶

아들의 장례를 치른 강민조 회장은 고통에 주저앉지 않았다. 곧장 아내와 함께 광주로 내려가 5·18의 아픔을 간직한 이들과 함께했다. 무료 한방진료소를 운영하고, 지역 어르신들에게 경로잔치를 베풀며, 민주화운동가들에게는 숙식과 쉼터를 제공했다.

"경대의 생일에는 어르신들 수백 명을 모셔다가 식사를 대접했고, 민주화를 위해 온 활동가들은 우리 집에서 재웠습니다. 그것이 봉사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강 회장은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위해 30년 넘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정치권의 무관심, 일부 극우 세력의 왜곡으로 법 제정은 요원하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었다. 강 회장은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높여왔다. 하지만 정치권의 무관심과 일부 극우 세력의 왜곡된 주장 속에 법 제정은 아직도 요원한 현실이다.

"정치는 없어도, 역사는 살아야 합니다"

강 회장은 특히 "정치가 진정한 가치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독립운동가와 민주열사들의 희생은 후손에게 이어져야 할 정신적 자산인데, 지금은 ‘정치의 유불리’에 따라 폄훼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지금 대통령을 비판해도 괜찮은 세상은, 우리 아이들이 목숨으로 만든 결과입니다. 그런데도 그 희생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어요. 너무 슬프고, 너무 분노스럽습니다."

그는 민주주의의 뿌리가 교과서에 명확히 기록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지 ‘민주화’라는 단어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물과사건, 그 희생의 맥락을 후세가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강경대 열사의 죽음 이후, 한국 사회는 점차 민주주의의 길로 나아갔다. 하지만 그 과정에 있던 수많은 이름들이 오늘의 청년 세대에겐 낯설다. 강민조 회장은 묻는다.

"다시는 우리처럼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가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뜻이 완성될 때까지,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겁니다."

기념관에는 '진실은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는 문구가 걸려 있다. 그리고 그 아래, 흑백 사진 속 열아홉 살 청년 강경대는 여전히 조용히 세상을 응시하고 있다.

강경대 열사의 죽음과 이름은 단지 1991년의 슬픈 기록이 아니며 역사로만 남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날 청년 세대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 그리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한 꼭짓점이다. 그러나 여전히 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이나 폄훼가 존재하고, 강경대의 이름조차 모르는 젊은이들도 많다.

강경대의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책임을 지는 일이다. 그것이 오늘의 민주주의가 지닌 빚이며, 앞으로도 갚아나가야 할 약속이다.

i24@daum.net ,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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