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알브레히트 후베(Albrecht Huwe, 독일 Bonn대 명예교수) = 어느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서 사는 사람이 없어도 그 주변의 모든 것 통해 그 사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듯이 지난 11월 8일에 한국에서 오래 살아 봤는데도 수원에 결국 처음으로 가 봤을 때 첫 순간, 즉 기차에서 내릴 적부터 그런 분위기가 바로 느껴지게 되었다. 역에 기다려 준 사람의 따뜻한 그 환영이 호텔에 가는 곳까지 빨간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팔달산 서장대를 향한 좀 가파른 길은 시원한 레몬의 노란 색 빛을 내는 은행나무 밑에 두 사람의 걸음이 가벼워졌다. 그 산에서 사는 싱싱한 소나무의 향기도 인연을 신비하게도 더 아름답게 굳게 했다. 사람과 도시와의 인연. 그 소나무 사이에 신나게 날아다니는 멋진 까치들이 까악 까악 울었다.
그 나무들이 팔달산 기슭에 있는 궁궐이 정조대왕이 머무르던 화성행궁이라는 곳인지 알고 있을까? 화성행궁 앞의 저 몇 백 년을 견디고 살아 온, 현재 시민의 존경을 받고 있는 느티나무 몇 그루가 확실히 알 것이다.
매우 슬프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도세자의 이야기가 다시 생생한 현실이 되는 것 같다. 박래헌 수원시 문화체육교육국장님의 행궁의 구석구석에 대한 전문적인 안내를 받으면서 더욱더 흥미로운 곳이 되었다. 화성행궁 뒷길에 자라고 있는 노란 색 야생 국화의 아름다운 향기도 언제든지 수원의 팔달산과 기억이 될 것이다.
화성행궁 맞은편에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두 개의 인상적인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는 것도 그날의 하이라이트 중의 하나이었다.
특히 줄리안 오피의 움직이는 LED그림들은 사람의 생존에 무엇보다 중요한 걸음을 예술적인 차원에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본인에게 새로운 발견이었으며 매우 인상적인 것이었다.
미술관의 두 번째의 권용택 화가의 작품 전시회도 똑같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그의 돌(청석) 그림들이 아마도 세계 미술사에서 새로운 페이지를 열어주었는지 모른다.
곧 이어 짧게나마 수원화성박물관에 관람했다. 모든 내용들을 사람의 흥미를 일으키는 식으로 공을 들여서 진열했다.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꼭 다시 가고 싶은 박물관이다.
그 동안 네 사람으로 늘어난 일행이 전통 한옥집의 음식점에서 약수 물로 지은 향기로운 밥은 수원에서 처음으로 먹게 된 것이었다. 좋은 대화를 나누면서 그 자리에서 마신 막걸리는 그 식당에서 빚은 것이 아니었지만 참 시원했다.
수원 시니어합창단 연주회 참석하기 전에 수원의 저녁 빛으로 둘러싼 효원공원에 구경하기도 하면서 그 전통 중국식 건물 안에서나 그 공원 호수 옆에나 갑자기 이백 시인이 나타나 시를 읊은 장면이 등장했으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 옛날 중국 문화를 생생하게 살려준 곳이기 때문이다.
합창단 연주회에 참석하면서 한국인이 노래 부르는 것을 매우 좋아하신다는 것을 그날 다시 확인되었다. 동시에 독일 속담도 생각났다. 즉 노래하는 사람과 걱정 없이 얼려도 좋다. 악한 사람은 노래 없기 때문이다. 정말 맞는 속담이다. 신나게 불러 준 노래를 들으면서 일행과 같이 박자를 맞추어서 박수를 치는 것도 감동적인 하이라이트중의 하이라이트이었다.
이 날의 즐거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원래 연주회를 이어서 플라잉 수원도 할 계획이 있었지만 저녁이 늦어서 영업시간이 이미 끝났다. 아쉬웠지만 대신 화성성곽 길을 갔다. 기억에 오래 간직될 산책이 되었다. 이미 늦은 저녁에 아무 사람도 없었다. 하늘에 달님도 없는 것 같고 바람도 잠잠했지만 저절로 여류시인 성명순 시 ‘달빛 성곽’이 생각났다.
서른에 걸어봤던 그 길
연민으로 바라보고 있는 소나무
그리움의 등피를 따라 휘어져
달무리와 우정을 나누듯 그렇게 의연했다.
먼 빛 속으로 바람은 잠들고
어느 집 감나무에 매달린
가을이 그리움처럼 덮이는데
문득 들어오는 햇살 한 줄기
비밀 통로를 지난다.
찬바람 소리, 옛적 횃불 소리
시공을 지우듯 깃발 흔들면
한 편의 노래가 될까
그림자 하나 오래 오래 달무리 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환한 헤드라이트에 담은 성곽 벽은 옛날 그 뒤에 살던 사람을 잘 보호해 주었다는 인상을 받게 했다.
성곽을 걷다가 약간의 불법적인 행위를 고백할 일도 있었다. 즉 포루에 올라가려면 신발을 벗으라고 포루 앞에 원래 쓰여 있지만 어두우니까 아무도 모른다고 믿고 그냥 신발을 신고 올라갔다.
갑자기 어디 어둠 속에서 깊은 목소리가 울렸다. 신발로 포루를 밟으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깜짝 깜짝 놀랐다. CCTV로 우리 일행의 행동이 밝혀졌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놀랐지만 끝에는 이 경고는 수원이 현재도 잘 보호되어 있다는 안심이 되었다.
국장님한테서 예쁜 청개구리 인형을 작별 선물로 받았다. 청개구리가 어떻게 수원의 상징 동물이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전국에 청개구리가 없어졌는데 수원에서만 살아남았다는 설명을 듣고 자연을 사랑하는 본인에게 약간의 충격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겠다 하는 생각도 떠올랐다.
수원역에서 내리고 특히 팔달산 산길이나 화성성곽 길을 가다가 나도 모르게 가슴이 열려지고 저절로 숨을 깊게 쉬게 되었다. 역시 수원시에서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는 도시인지를 알았다.
수원에서 하고 싶은 것이 많이 남았다. 예를 들면 봄, 여름, 가을, 겨울에, 환한 낮에나 달빛 밤에나, 비나 눈이 올 때나,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성곽 길을 다 가고 싶은 소망, 전통 시장에 돌아다니는 소망, 플라잉수원을 타는 소망, 기타 여러 소망이 생겨서 꼭 다시 와야 하겠다고 결심하면서 수원을 아쉽게도 일단 떠났다.
인생에도 그런가? 간절히 하고 싶은 소망이 있는데 어떤 상황 때문에 이루지는 못 해야 이 세상에서 계속 좋은 일을 할 수 있기 위해 다시 태어나는 조건인가?
아무튼 그 날에 수원 사람과 도시와 깊은 인연이 맺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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