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양방송) 고진아 기자 = 국가보훈처는 독립기념관, 광복회와 공동으로 미주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이끈 한시대 선생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한시대 선생은 1889년 황해도 해주에서 부친 한준상과 모친 문성선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3년 노동 이민자로 하와이로 건너가 한인기숙학교와 중학과정인 밀스학교를 졸업했고 1913년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로웰고등학교 4학년으로 편입, 졸업했다.
고교 졸업 후 1916년 4월 대한인국민회 맨티카지방회를 설립해 부친이 초대회장에, 선생은 법무원에 선임돼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뛰어 들었다.
1917년에는 흥사단에 입단했고 다뉴바지방회 대의원 자격으로 1918년 개최된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대의원회에 참석해 1918년 신규사업 10개조를 입안했는데 국어학교 설립등 주로 민족교육을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3.1운동 소식이 전해진 이후 미주지역에서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외를 중심으로 선전, 외교활동과 재정모금활동이 추진됐다. 선생 역시 독립의연금 모금운동에 적극 참여해 당시로서는 거금인 550.85달러를 납부하기도 했다.
1921년 다뉴바에서 결성된 국민대표회기성회에 참가했는데 기성회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독립운동 진영의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어 이를 바로잡기 위해 국민대표회를 개최할 것을 주장하고 준비하는 단체였다.
1925년 딜레노로 이주, 대한인국민회 딜레노 지방회를 설립하고 회장에 취임해한 선생은 딜레노 대의원 자격으로 대한인국민회 대의원회에 참가하면서 한인사회의 통일과 국민회 중심의 통합운동에 앞장섰다. 로스앤젤레스에 대한인국민회 총회관 신축시에는 건축준비위원으로 참여하여 총회관 신축에 많은 역할을 했다.
1940년 이후 3년간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위원장을 역임하면서 한국광복군 창설을 위한 후원금 모금과 지원활동, 해외한족대회 개최, 임시정부의 국제적 승인을 위한 외교활동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1945년 4월에 개최된 샌프란시스코회의에 대비해 같은 해 4월 해외한족대회를 주도하고 단장으로 선임된 한시대 선생은 비망록을 작성해 미국, 영국, 소련, 연합국의 지원으로 한국이 완전한 독립국이 될 것임을 믿으며 한국인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태평양전쟁에서 최후 승리를 이루는 데에 앞장설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1946년 9월 초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중립적 입장에서 중간세력들과의 통합운동과 좌우합작을 통해 통일 정부수립을 위한 활동을 지속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미국으로 돌아 온 이후에도 선생은 농장사업과 흥사단 활동에 전념하며 여생을 보냈고 정부에서는 선생의 미주지역에서의 독립운동 공훈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한편 독립기념관에서는 한시대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오는 29일까지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에서 전시회를 개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