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원지는 25명의 대의원이 걸린 플로리다 주였다. 플로리다 주를 뺀 미국 전체의 대의원 확보 수는 공화당의 조지 부시 후보가 246명, 민주당의 엘 고어 후보가 266명, 엘 고어가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만약 플로리다에서 부시가 이기면 역전될 판이었다. 매스콤의 출구조사는 플로리다에서도 엘 고어의 승리를 예고하고 있었다.
결과는 부시 후보의 승리로 나타났다. 박빙의 승부였다. 미 대륙이 발칵 뒤집혔다. 세계도 놀랐다. 더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고도 패배한 기이한 현상 때문이었다. 자연히 플로리다 주 개표에 이목이 쏠렸다. 팜비치 카운티의 투표방식이 도마에 올랐다.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에 펀칭으로 구멍을 뚫는 투표방식 때문에 많은 유권자들이 자기가 찍으려는 후보와 다른 투표결과가 나왔다고 증언했다. 민주당 지지자들과 이들 시민들이 합세 해 재검표 소송을 제기했다. 플로리다 주지사가 부시 후보의 동생인 잽 부시인 점이 의혹을 더 부추겼다.
그러나 연방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부시 후보의 손을 들어 주었다. 연방대법원장 토머스 판사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임명한 사람이라는 것이 구설에 올랐으나 판결은 판결이었다. 여론은 엘 고어에게 승복하라고 압박했고 엘 고어가 여론을 선선히 받아들였다. 상황은 일단락 됐고 그 이후 선거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어떤 주장이아 시위도 없었다. 미국 시민이 자유민주주의 종주국다운 시민의식을 전 세계에 보여준 사례에 속한다.
생뚱맞게 한참 지난 미국 선거 얘기를 꺼낸 까닭은 다름 아니다. 이렇게 당선된 부시 대통령이지만 자기가 표방했던 작은 정부, 강한 미국 정책을 강하게 밀어 붙였다. 부자 감세 정책을 밀어 붙였고 이락에 지상군을 보내 후세인 정권을 붕괴 시켰다.
한반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매파의 부시가 등장함으로서 김대중 정부의 대북 화해정책에 차질이 생겼다. 북한에는 온건파의 위축과 군부강경파가 득세했다.
여기서 우리가 새겨야 할 것은 자유민주주의 하의 선거의 참 뜻이다. 선거를 통해서 지도자를 선출한다는 것은 승자에게 임기동안 국가경영을 맡긴다는 뜻이다. 한 표를 이기든 두 표를 이기든 득표율은 중요하지 않다. 만약 승자가 자기를 반대한 유권자의 뜻을 헤아려 국정에 반영해야 한다면 부시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절름발이 대통령일수밖에 없다. 바로 이 레임 덕 현상으로 인한 국정혼란을 막자는 것이 야박하지만 대통령중심제가 취한 승자 독식제도다.
이 원리를 한국정치에 적용해 보자. 이명박 대통령은 한반도 운하를 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이 됐다. 물론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이 반드시 한반도 운하 공약 때문에 그를 선택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를 지지한 사람 중에도 그의 운하 공약에 반대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의 재임중에 운하든 4대강이든 좌우간 한반도 전체의 물관리 체계를 대폭 정비할 것이라는 것은 예견된 것이었다.
이는 그를 반대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이 4대강을 살리겠다고 시작한 대규모 토목사업에 대해 막무가내 식 반대는 선거제도 나아가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 물론 각론의 반대는 있을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초 공약인 한반도 운하 대신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의 4대강 사업은 국민 여론을 감안한 일종의 절충으로 봐야한다. 이것만으로 반대자들은 일정부분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위장 운하’라는 문제제기도 있으나 이는 본질이 아니다.
새만금 사업, 사패산 터널, 부안 방폐장 등에서 보지 않았는가? 야당과 연계한 시민 사회단체의 무작정 발목잡기로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이 들어갔다.
이미 전국적으로 벌여 놓은 사업을 현 상태로 동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정치권이 선거에서 나타난 유권자의 뜻을 존중한다면 사업 자체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사업 추진에 따른 문제 제기와 함께 해결책을 내 놓아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정부도 성실하게 임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