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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한국스카우트 시초 '조선소년군' 창설 100주년 기념식...10월 5일 서울 중앙고에서 개최

'민족의 화랑' 한국스카우트 일군 독립운동가 관산(冠山) 조철호 선생 뜻 잇겠다"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조선소년군 창설 100주년 기념식'이 10월 5일 오후 중앙교우회·한국스카우트연맹 주최로 서울 종로구 중앙고등학교 교정에서 개최된다.

정문헌 종로구청장과 강태선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비와이엔블랙야크 회장) 등이 축사를 하는 이번 행사에는 기념 헌화식과 조선소년군 발대식 재연 등이 예정돼 있다. 행사 백미는 중학생부터 시니어 모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이 전 세계 스카우트 단복을 입고 벌이는 퍼레이드다.

주최 측인 중앙교우회의 성호환 사무국장은 "조선소년군 창설 100주년을 축하하는 뜻깊은 자리인 만큼 행사장이 즐거운 분위기가 되도록 준비했다"고 말했다.

"너희는 민족의 화랑이다. 민족을 구하는 선봉이 되거라."(관산 조철호)

관산(冠山) 조철호(趙喆鎬, 1890∼1941) 선생은 일제 치하의 청소년들에게 독립사상과 민족적 단결을 고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조선소년군을 창설했다. 이것이 연원이 되어 현재의 한국스카우트운동이 시작됐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삼아 민족의 얼과 정신을 가르치며 조선의 어린이들을 보호하고 계몽하였으며, 관산 조철호 선생은 10월 5일을 청소년의 날로 정하여 독립운동의 정신을 이어가게 된다.

1922년 10월 5일 중앙고등보통학교(현 중앙고등학교)의 솔밭 후원에서 8명의 학생을 단원으로 조선소년군 경성제1호대(京城第一虎隊)를 발대하여 조선소년군이 창설됐다. 이날을 기념하여 한국스카우트운동은 10월 5일을 기념일로 삼고 있다.

중앙고등학교는 한국스카우트운동의 본산이자 발상지다. 조선소년군의 창설을 기리고자 중앙중·고등학교는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8년 3월 22일 교정에 '한국스카우트발상지비'를 제막한 바 있다. 이는 한국스카우트운동의 발상지를 나타내는 조형물이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좌표이기도 하다.

2023년에는 전북 부안의 새만금에서 전세계 5만명의 스카우트 회원들이 모여 민족과 문화, 이념, 정치를 초월해 청소년들이 우의를 다지는 제25회 세계 잼버리 대회가 열린다. 한국의 스카우트 운동이 시작된지 100주년을 기념해 세계잼버리 대회(4년에 한번 개최)가 열리는 가장 가까운 해에 맞춰 한국에서 유치한 대회다.

이에 앞서 올해 10월 5일은 한국스카우트 운동사의 시작을 알린 조선소년군 창설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에 조선소년군 창설 100주년 기념식과 기념비 제막식을 중앙고등학교에서 이날 오후 거행된다.

관산 조철호 선생의 생애와 조선소년군 창설

1922년 10월 5일 서울 창덕궁 옆 중앙고보 뒷산에서 청년들의 구령이 울려 퍼진다. 8명의 청년과 장교복장을 한 지도자, 주변에는 중앙고보의 교장 인촌 김성수, 송진우 등 교직원과 청소년 운동에 관심이 많은 단체 관계자들이 행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한국스카우트 운동의 시초인 조선소년군(朝鮮少年軍)의 탄생을 알리는 현장이었다.

1922년 10월7일자 동아일보는 '조선 초유의 소년군' 발회식이라는 제목으로 ‘영국의 베이든 포우엘 경이 창설한 소년군(보이스카우트)’이 조선에서 처음 조직됐다고 보도했다.

'조선 소년군' 출범식 당시 장교 복장의 지도자는 소년의 개조가 민족의 개조임을 확신한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사 관산 조철호 선생이었다. 그는 단원들에게 항상 "너희들은 이 민족의 화랑이다. 민족을 일깨우는 선봉이 되어라"고 훈유했다 한다.

"먼저 사람이라는 그 자체의 개조로부터 시작하여 이 사회의 모든 허식과 악습을 바꾸고자 함입니다. 그러함에는 사람의 시초인 소년의 개조에 착수하여 그들로 하여금 사회를 위하고 자기를 위하기에 최적절한 자각과 시련을 갖게 하고자 함이외다."

관산 조철호 선생은 대한제국 황립무관학교의 생도였다. 한일합방이 되기 전 일제는 대한제국 황립 무관학교를 폐교하고, 당시의 43명의 생도를 일본 육군사관학교로 편입을 시킨다.

1909년 군사 유학생으로 일본에 갔던 그와 동기생들은 망국의 비보에 접해 "기왕 군사교육을 배우려고 왔으니 끝까지 배워 임관한 다음 중위가 되는 날 모두 탈출하여 광복운동에 나서자"는 데 뜻을 모았다. 육사 재학 중 생도들은 주말 외출이 허용되어 당시 조철호는 주일 조선유학생들과 많은 교류를 통해 인촌 김성수, 송진우, 안재홍, 김병로 등과 친분을 유지했다.

당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황립무관학교 생도 중에는 동기인 지석규(지청천·육사26기)와 선배인 김경천(육사23기)이 있었다. 1913년 일본육사를 함께 졸업한 지청천은 독립군이 되었고, 조철호는 3·1운동을 계기로 국민국가를 만들기 위한 터 닦기 작업인 소년운동에 몸을 던졌다.

관산 조철호는 1914년 육사 졸업과 함께 소위로 임관하였으나, 일본군 장교로서의 혜택을 거부, 휴직장교로 귀국한다. 귀국 후 독립운동을 계획하던 조철호 선생은 군사기밀을 갖고 중국으로 망명하던 중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게 된다. 출옥 후에는 평북 정주 오산중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임용됐다.

그는 1919년 3.1운동 당시 조만식 교장을 도와 정주 지역 독립만세운동 주도하고 만주로 망명했지만 봉천에서 일제 헌병대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일본 유학시절부터 친분이 있던 인촌 김성수 선생은 일경의 요주의 감시대상인 조철호를 중앙고보의 체육교사로 임용했다.

관산 조철호는 중앙고보에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구(舊) 한국군 교련 방식의 체육교련을 실시하고 독립사상을 고취했다. 조철호 선생은 1922년 10월 5일에 드디어 '조선소년군'을 창설하여 청소년들을 독립 전사로 키우고자 힘을 쏟았다.

그는 전국 순회강연을 통해 스카우트 활동이 청소년을 군대와 유사한 조직으로 야외활동을 통하여 정신과 육체를 강하게 훈련하고 남을 배려하는 좋은 인성을 길러주는 청소년 활동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이렇게 시작한 조선소년군운동은 전국 80호대 1만여 명으로 확산되었다. 최초의 조선소년군 1호대 대원이었던 오봉환은 조선소년군 지도자가 되어 스카우트 활동을 하게 되며 1926년 6.10만세운동 당시 조철호 선생과 같이 주모자로 체포됐다. 이후 오봉환은 수감중 탈옥해 상하이로 탈출, 의열단에 입단하여 활동한다.

관산 조철호 선생은 1926년 6.10만세운동 때 중앙고보 학생대표들을 지도하고 후원한 주모자로 체포 수감돼 일제의 압력에 의해 사직해야 했다. 그를 옥에 가두고 탄압하던 일제는 그에게 '불령선인'이란 딱지를 붙였으나 그가 카이젤 수염을 기르고 서울 장안을 군대식 걸음으로 다니는 모습은 어찌나 엄하고 무서웠던지 그를 '계동 호랑이'라 불렀다 한다.

조철호 선생은 출옥 후 일제의 압박으로 중앙고보 체육교사직을 그만두고, 북간도의 동광중학교, 용정대성학교에서 교사로 봉직했다. 북간도에서도 그는 '산에 사는 까마귀야/ 시체 보고 우지 마라/ 몸은 비록 죽었으되 혁명정신 살아있다'는 노래를 부르다 조선독립을 외치며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는 제자의 기억마냥 독립에의 열망은 식을 줄 몰랐다.

그는 학교 운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귀국했다가 또 다시 체포됐다. 이후 인촌 김성수의 신원보증으로 풀려난 뒤 동아일보 발송부장으로 재직하며, 조선소년군 운동을 계속 이어나갔다.

매년 조선소년군 지도자 강습회를 개최하여 조선소년군 운동 전개에 힘썼다. 1933년에는 조선소년군 잡지 '의여차(義如此)'를 발간하기도 했다. '의여차'는 조선소년군의 구호(口號)였다. 한자로는 '의로움이 이와 같다, 이 같이 의로운 사람이 되자'의 뜻인데, 여럿이 함께 힘든 일을 할 때 일제히 소리 내는 "어기여차" "어여차"와 비슷한 의미의 조선소년군 구호였다.

1937년 7월 파고다공원에서 시국강연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조선소년군이 착용한 항건(스카우트가 목에 두르는 삼각형 스카프)에 태극문양, 무궁화휘장, 한글로 적힌 'ㅈㅜㄴㅂl'문구를 발견, 이를 애국광복운동은 간주해 관련자들을 연행했다.

이후 조선소년군 관계자들에게 일본 보이스카우트인 건아단에 편입하라 강요한다. 이를 거부한 조철호 선생과 조선소년군은 친일단체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조선소년군을 자체 해산하기로 결정한다.

일본의 간섭으로 동아일보사도 퇴사하게 된 조철호 선생은 김성수 선생의 도움으로 보성전문학교 교련 교관으로 봉직했다. 조선소년군 총사령장으로서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평생을 매진하던 조철호 선생은 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1년 3월 22일 "나는 일을 다 하지 못하였는데"라는 말을 남기고 영면에 들었다. 조철호 선생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자진해산한 조선 소년군은 광복과 함께 대한소년단으로 다시 시작돼 6.25 전쟁당시 애국봉사 활동, 재건·복구를 통한 봉사활동을 이어갔고, 전국의 초중고 교육기관에서 스카우트 활동을 받아들이며 스카우트 활동의 전성기를 이어갔다.

1991년 8월 강원도 고성에서는 3만명의 스카우트 대원, 지도자들이 모이는 17회 세계잼버리 대회를 성공리에 개최했고, 오는 2023년에는 새만금에서 전세계 5만명의 스카우트 회원들이 모이는 제25회 세계 잼버리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2022 한국스카우트운동 100주년>

◆ 스카우트(Scout)의 기원
1907년 영국의 육군 장군 베이든 포우엘 경이 20명의 소년과 함께 브라운시섬에서 야영을 한 것이 스카우트의 첫걸음이었다. 이후 스카우트는 범세계적 청소년 운동으로 성장했으며, 현재 160개 정회원국에서 3000만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 한국스카우트운동의 시작
한국스카우트운동은 조선소년군이 창단한 1922년 10월 5일을 시작 기념일로 삼고 있다. 같은 달 한국스카우트운동의 또 한 축인 조선소년척후대(朝鮮少年斥侯隊)도 결성되었다. 이 두 단체가 통합과 해산, 재발족과 개칭 등의 변천을 겪으며 지금의 한국스카우트연맹으로 발전했다.

<독립의지를 일깨운 조선소년군 활동

◆ 조선소년군 창설 목적
조선소년군은 청소년들에게 독립사상과 민족적 단결을 고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당시 보이스카우트운동은 국제적인 친선과 우애를 표방하는 가운데 야영·모험·개척·활동 등을 통한 다양한 훈련을 받게 함으로써 학생들의 심신을 단련시킬 수 있어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의지를 심어 주는 데 알맞았다.

중앙고보 체조 교사 조철호는 이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조국애와 민족혼을 지니게 하고,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단련함으로써 나라를 되찾는 독립운동에 헌신할 수 있는 독립군을 길러 내고자 했다.

◆ 일제 강점기 주요 활동과 해산
조선소년군은 창립 초기인 1923∼1926년까지 중앙고보에서 매년 1∼2회의 지도자 강습회·연구회·연수회를 개최했다. 대원들의 자체 훈련으로는 야영법, 수기신호, 수영법 매듭, 얽기 등 다양한 야외 활동을 포함했으며, 자전거로 이동하여 시외에서 훈련을 하고 저녁에 귀가하거나 3일 이상 야영 활동도 했다. 이외에 봉사 활동과 문화 활동도 활발히 펼쳤다.

일제 당국은 1937년 7월 파고다공원에서 개최된 시국강연회 도중 봉사 활동을 하던 조선소년군이 착용한 항건의 태극문양과 무궁화 휘장, 한글로 적힌 'ㅈㅜㄴㅂㅣ’를 꼬투리 잡아 탄압에 들어갔다.

이를 애국광복운동으로 간주하여 관련자들을 연행했고, 조선소년군을 일본 보이스카우트인 건아단에 편입시키라고 강요했다. 결국 조선소년군은 친일단체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자체 해산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스카우트운동의 본산 중앙고등학교>

◆ 한국보이스카우트 제1대·제2대
자진 해산했던 조선소년군은 광복과 함께 대한소년단으로 재조직하여 6.25전쟁 당시 재건·복구의 애국봉사 활동을 이어갔고, 전국의 초·중·고 교육기관에서 스카우트 활동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한국보이스카우트는 중앙중학교를 제1대, 중앙고등학교를 제2대로 지정하여 중앙학교가 한국스카우트운동의 본산임을 표방했다.

◆ 한국스카우트운동의 발상지
조선소년군의 창설을 기리고자 중앙중·고등학교는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8년 3월 22일 교정에 '한국스카우트발상지비'를 제막한 바 있다. 이는 한국스카우트운동의 발상지를 나타내는 조형물이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좌표이기도 하다. 조선소년군 창설 100주년을 맞아 중앙학교의 존재는 한국스카우트운동사에서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 조선소년군의 명맥을 잇는 관산회
관산회(冠山會)는 중앙중·고등학교 보이스카우트 출신들의 모임이며, 조철호 선생의 기일에 맞춰 추모식을 갖고 있다. 또한 조선소년군 창립일인 10월 5일에는 교내외에서 세미나·기념식·야영 행사 등을 진행해 왔다.

관산회는 지난 1991년 8월 강원도 고성에서 개최된 제17회 세계잼버리대회의 성공을 도왔다. 아울러 2023년에 전라북도 새만금에서 5만 명의 스카우트 회원들이 모이는 제25회 세계잼버리대회 준비에도 최선의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 한국스카우트연맹 연혁
○1922년 10월 5일 조선소년군 경성제1호대 발대(조철호 선생), 소년척후단 발대(정성채 선생)
○1924년 3월 1일 조선소년군과 조선소년척후대를 소년척후단조선총연맹으로 통합
○1924년 베이징 극동야영대회 이후 두 단체 분리
○1937년 9월 3일 조선소년군 자진 해산
○1946년 사단법인 대한보이스카우트중앙연합회 결성
○1948년 8월 대한소년단으로 개명
○1952년 1월 31일 세계연맹 회원국으로 가입
○1952년 8월 8일 제1회 한국잼버리 개최
○1966년 2월 대한소년단을 보이스카우트한국연맹으로 변경
○1968년 8월 사단법인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으로 개칭
○1969년 7월 10일 「스카우트 활동 육성에 관한 법률」 제정
○1983년 10월 13일 국회스카우트의원연맹 창설
○1991년 제17회 세계잼버리대회 개최(강원도 고성), 세계스카우트의원연맹 창설
○1996년 8월 제17회 아태잼버리 개최(강원도 고성)
○2002년 한국스카우트연맹으로 명칭 변경(여학생도 대원 가입 가능)
○2023년 제25회 세계잼버리대회 개최 예정(전라북도 새만금)

◆ 조선소년군 연표
○1922년 10월 5일 오후 4시 30분 중앙고보 뒷산에서 조선소년군 1호대 발대식
- 조철호 대장, 대원 8명(중앙고보 3명, 배재고보 2명, 수송보통 1명, 협성학교 1명, 제일고보 1명), 김성수·송진우·정성채·중앙고보 교직원·권영섭 외 청소년단체인 참석
○1923년 3월부터 조선소년군 지방 순회 홍보
- 인천, 수원, 김천, 진영, 김해, 의령, 진주, 삼천포, 남해, 여수, 하동, 양산, 동래, 울산, 밀양 등
○1923년 8월 3일 인천소년군 발회식
○1923년 10월 5일 창립 2주년을 맞아 대원 160여 명, 여자대원(낭자군), 중앙유치원 등 활동
○1924년 3월 1일 조선소년군과 소년척후단이 통합하여 소년척후단조선총연맹 출범
○1924년 6월 1일 소년군 야외연습
- 대원 40여 명이 자전거를 타고 금곡으로 이동하여 야외훈련 후 저녁에 귀가
○1924년 7월 17일 중앙학교에서 소년지도자연구회의 연수회와 교육(연례 실시)
○1925년 12월 14일 정주소년군(오산학교) 제35호대 승인
○1926년 2월 24일 조선소년군 주최 신춘음악대회, 조선일보사 후원
○1926년 5월 18일 공주 화재 발생 시 조선소년군 대원이 교통정리와 소방 활동 원조
○1926년 6.10만세 운동 주모자로 조철호 사령장 투옥, 오봉환(1호대 초대 대원 출신 지도자)은 탈옥하여 중국 상하이 망명 후 의열단 입단
○1927년 4월 월남 이상재 선생 장례식에서 경호대를 조직하여 운구 행렬 참가
○1927년 7월 31∼8월 3일 강화도에서 잼버리대회 개최
- 강화도 삼신기선회사에서 잼버리 참석자 전용선 제공, 경성 유지 김병로 찬조
○1927년 9월 8일 간도소년군 조직
○1929년 오봉환 의열단원 국내 잠입 중 검거되어 투옥, 출옥 후 충주로 귀향하여 조선소년군 지도자 활동 복귀
○1930년 조선소년군 하기 잼버리 개최
○1930년 10월 5일 창립 8주년 행사에 1,000명 참석, 전국 총 64호대
○1937년 7월 31일 일제가 파고다공원 시국강연장에서 항건 문양을 트집 잡아 조선소년군 대원과 지도자 연행
○1937년 9월 3일 일본 건아단 편입 거부하며 조선소년군 자진 해산(당시 전국 약 80호대, 1만여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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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단의 뿌리와 오늘을 잇는 한국문인협회, <月刊文學> 2025년 9월 출간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이사장 김호운)가 발간하는 국내 대표 문예지 <月刊文學>(편집주간 김민정) 9월호(통권 679호)가 출간됐다. 이번 호는 문단의 흐름을 짚는 비평에서부터 신작시, 수필, 소설, 동화, 평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품을 실어 문학 독자들의 관심을 모은다. 1968년 창간 이후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한국 현대문학의 산실로 자리 잡아온 <月刊文學>은, 이번 호에서도 당대 문단의 동향과 신진 문학인의 목소리를 폭넓게 담아냈다. 권두언에서는 김영 시인이 '문단의 대장간이 사라지고 있다'를 통해 창작과 문단 환경의 변화를 짚었으며, 장건섭 시인은 '그 가을의 정거장'을 모티브로 작품 탄생의 비밀을 풀어냈다. 또 ‘이 시대 창작의 산실’ 코너에서는 박복조 시인이 산문과 시편을 통해 문학적 사유를 나눈다. 특집으로 마련된 경상북도문인협회 지역문학 특집에서는 김신중 경상북도 지회장의 기획 글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갖춘 경상북도지회'와 함께 회원들의 시, 수필, 동시 등이 다채롭게 소개된다. 이는 지역문학의 뿌리와 확장을 확인할 수 있는 장으로 평가된다. ‘이달의 신작’ 코너에는 이영선, 성갑숙,
서울특별시한궁협회, '제1회 서울특별시한궁협회장배 세대공감 한궁대회' 성료
(서울=미래일보) 서영순 기자 = 서울특별시한궁협회가 주최·주관한 제1회 서울특별시한궁협회장배 세대공감 한궁대회가 지난 17일, 서울 노원구 삼육대학교 체육관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약 250명의 선수, 임원, 심판, 가족, 지인이 함께한 이번 대회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스포츠 축제로, 4세 어린이부터 87세 어르신까지 참가하며 새로운 한궁 문화의 모델을 제시했다. 대회는 오전 9시 한궁 초보자들을 위한 투구 연습으로 문을 열었다. 이어진 식전 공연에서는 전한준(87세) 작곡가의 전자 색소폰 연주로 '한궁가'가 울려 퍼졌으며, 성명제(76세) 가수가 '신아리랑'을 열창했다. 또한 김충근 풀피리 예술가는 '찔레꽃'과 '안동역에서'를, 황규출 글벗문학회 사무국장은 색소폰으로 '고향의 봄'을 연주해 감동을 더했다. 마지막으로 홍소리 지도자가 '밥맛이 좋아요'를 노래하며 흥겨움을 더했다. 오전 10시부터 열린 개회식에는 강석재 서울특별시한궁협회 회장을 비롯해 허광 대한한궁협회 회장, 배선희 국제노인치매예방한궁협회 회장 등 내빈들이 참석해 대회의 시작을 축하했다. 김도균 글로벌한궁체인지포럼 위원장 겸 경희대 교수와 김영미 삼육대 교수, 어정화 노원구의회 의원 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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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기억연대 "1715차 수요시위, 일본대사관 맞은편 평화비 인근에서 진행"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촉구해온 수요시위가 다시 일본대사관을 향해 열린다. 정의기억연대(이사장 이나영)는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오는 27일 열리는 제1715차 수요시위를 일본대사관 맞은편 평화비 인근에서 진행한다"고 밝혔다. 정의기억연대는 "비록 여전히 역사부정 세력의 집회 선점으로 평화비 바로 옆에서 진행하지는 못하지만, 원래처럼 일본대사관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시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위, 피해자 명예 지켜온 자리" 1992년 시작된 수요시위는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33년 넘게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 모여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해온 세계 최장기 시위다. 정의기억연대는 "시민들은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이 회복되고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마음으로 평화로운 시위를 이어왔다"고 전했다. "역사부정 세력 방해, 경찰의 방치로 어려움 겪어" 그러나 2020년 이후 수요시위는 일본군 성노예제 부정 세력들의 선(先) 집회신고로 인해 제자리에서 밀려났다. 정의기억연대는 "그들은 집회를 하지 않으면서도 자리를 선점하거나, 소음을 내고 피해자 명예를 훼손하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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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조국혁신당, "국민의힘 여성가족위원 보이콧 강력 규탄"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국회 여성가족위원회가 27일 전체회의를 열었으나 국민의힘 위원들의 불참으로 파행됐다. 이에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소속 여가위원들은 성명서를 내고 "국민의힘의 무책임한 보이콧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번 회의는 윤석열 정부 들어 장기간 장관 공석 상태에 놓인 여성가족부를 정상화하기 위해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 실시계획서를 채택하는 자리가었다. 그러나 여당 측인 국민의힘은 회의에 불참하며 의결은 무산됐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위원들은 성명에서 "여성가족부를 사실상 마비시킨 당사자인 국민의힘이 또다시 정치적으로 이를 이용하는 것은 철저히 국민을 외면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날 안건에는 2024년 회계연도 결산 상정을 비롯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 △스토킹 방지 및 피해자 보호법 등 사회적 약자 보호와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법안 심사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국민의힘이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명은 이어 "여성가족위원회를 파행으로 이끈 이인선 위원장은 즉각 사과하고 회의를 다시 소집해야 한다"며 "국민의힘은 무책임한 보이콧에 대해 국민께 사죄하고, 위원회 정상화에 협조할 것"을 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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