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서울시가 서울시의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이 역대 최대 규모인 44조원을 상회하는 가운데, 정작 서울시 실·국 관계공무원들은 시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사업비 증액을 호소하는 웃지 못할 헤프닝이 일어나고 있다.
서울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안 편성과정에서 각 실·국이 제출한 예산안이 일정 비율로 대거 삭감되었다. 예산과에 의해 일괄 삭감된 예산 중에는 사업수행을 위한 필수예산, 시민의 안전·복지와 직결된 예산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사업차질을 우려한 실·국관계공무원들이 예결위 소속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읍소하고 있는 것.
사업 시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예산을 편성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과소편성한 후 상임위원회 예비심사 또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우회증액하는 것은 서울시의 오랜 예산관행이다.
사업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예산 주무부서에서 자체 판단으로 사업여부를 결정하거나, 일괄적으로 성과목표(감액비율)를 정하기 때문이다. 시의회는 예산 주무부서와의 갈등이 껄끄러운 사업부서가 시의회를 찾아와 호소하면, 그 필요성에 따라 '쪽지예산'의 오명을 각오하고 증액에 동의해 왔다.
문제는 전년 대비 4조원 이상(전년사업 중 감액·삭감분 포함 시 6조) 예산규모가 늘었음에도 여전히 이런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 특히 서울시의회가 의원별 지역예산도 증액하지 않겠다고 못 박은 상황에서 올해 예산안 심사에서 집행부 예산을 의원증액으로 해달라는 요구에 예결위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서울시 일부 실·국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주요 시설에 배치해야 하는 '산업보건의' 수당마저 편성하지 못해 시의회에 우회증액을 요청한 상태다.
대부분 사업부서들의 사정은 다르지 않다. 주요 필수 예산이 전년도 대비 절반 가까이 감액되면서 내년도 정상적인 사업 수행이 불투명하다.
모 실장은 상임위원회 예비심사 당시, 무리한 감액에 따른 사업차질을 우려하는 의원들에 '예결위를 거치면서 의원들이 증액해주면 전년도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답변해서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또 다른 모 과장은 필수 사업임에도 사업부서 요청으로 의원증액으로 진행되어 왔던 사업들을 예산과에서 모두 삭감했다고 불평을 토로하기도 했다.
필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과소편성된 사업들의 경우 대부분 그 효과가 지역구에 미친다는 특징이 있다. 즉 자치구 배분을 통해 지역구에 혜택을 준다는 이유를 내세워 정상 편성이 아닌 개별 의원을 통한 우회증액을 관행적으로 이어 왔던 것이다.
서울시의회 예결위는 "2022년도 예산안 심사과정에서 관행적인 우회증액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감액·폐기된 사업을 포함하여 전년 대비 6조원 가량 예산이 늘었음에도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유감도 함께 전했다.
김호평 예결위원장(더불어민주당, 광진4)은 "오세훈 시장의 치적사업을 위해 기존 사업을 무리하게 축소하다 보니 곳곳에서 잡음이 터져나오고 있다"고 진단하고, "늘어난 6조원을 어떤 기준으로 어디에 우선 배정했는지 시민 앞에 떳떳하게 밝힐 것"을 주문했다.
다만, 서울시의회 예결위는 서울시 각 실·국이 우회 증액을 요청하고 있는 사업 중 민생과 직결된 시급한 예산의 증액은 일부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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