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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노벨문학상에 벨라루스 여성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언론인 출신… 反체제 성향 작품 “우리시대의 고통·용기 보여줘”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올해 노벨문학상의 영광은 벨라루스의 여성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xievich, 67세)에게 돌아갔다.


8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은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다음(多音)의 작품을 써왔다" 알렉시예비치를 수상자로 발표했다.

 

사라 다니우스 한림원 신임 사무총장은 "알렉시예비치는 저널리즘의 형식을 초월해 새로운 문학 장르를 개척했다"며 "그것이 진정한 성취"고 평가했다.

 

이어 "그녀는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역사를 우리에게 전해준다"며 "그녀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은 '감정의 역사'"라고 표현했다.

알렉시예비치는 1948년 5월 우크라이나 서부 스타니슬라브(현 이바노-프란코프스크)에서 벨라루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벨라루스국립대 언론학과를 졸업한 후 여러 신문사와 잡지 기자로 일한 경력을 바탕으로 2차 세계대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련 붕괴 체르노빌 사고 등 극적인 사건을 겪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글로 옮겨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로풀어냈다.

 

1985년 전쟁을 겪은 여자들의 독백으로 이뤄진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출간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소련의 군인들을 영웅적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필을 마치고도 출간이 2년 늦춰졌지만, 첫 출간 이후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여러 쇄를 반복해 출간됐다.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가 모호한 이 책의 장르를 두고 작가는 '소설-코러스'라고 명명했다. 이어 2차 세계대전의 실상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그린 '마지막 증인들', 소련-아프간 전쟁의 폭력적인 실상을 다룬 '아연 소년들'(1989), 사회주의 몰락 이후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죽음에 매료되다'(1993) 등을 출간했다.

 

1986년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의 후유증을 다룬 다큐멘터리 산문 '체르노빌의 목소리'(1997)는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벨라루스는 체르노빌 사태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국가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우리나라에도 번역 출간되는 등 모두 19개국에서 주요 작품에 번역됐다. 그러나 정작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장기 집권하고 있는 본국 벨라루스에서는 검열에 걸려 책이 출간되지 못했다. 

 

반(反) 체제 성향이 짙은 작품 탓에 작가는 정권의 탄압을 피해 2000년대 초반부터 10여 년간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에서 망명 생활을 하기도 했다.

최근작으로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 사람들의 상실감과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 등을 다룬 '세컨드 핸드타임'(2013)이 있으며, 사랑 이야기를 담은 신간 '영원한 사냥의 훌륭한 사슴'을 준비 중이다.

 

국내 출간된 알렉시예비치 저서로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문학동네 펴냄)와 '체르노빌의 목소리:미래의 연대기'(새잎 펴냄)가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이 발표된 8일 출간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여성 200여 명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참전해 저격수가 되거나 탱크를 몰기도 했고, 병원에서 일을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전쟁의 일부가 되지 못했다.

이 책에서 입을 연 여성들은 거의 대부분 생애 처음으로 전쟁에 가담한 경험을 털어놓는다. 그들은 숭고한 이상과 승리, 패배, 작전, 영웅 따위를 말하지 않는다. 전쟁의 추하고 냉혹한 얼굴, 배고픔, 성폭력, 죽음의 그림자를 들려준다.

저자의 펜을 통해 전쟁이라는 가혹한 운명 앞에 선 보통 사람들의 상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처음 사람을 죽이고 엉엉 울어버린 소녀, 적의 총탄에 다리 불구가 돼버린 소녀, 전쟁에 나가기 위해 자원입대하는 날에 천연덕스럽게 가진 돈을 다 털어 사탕을 사는 소녀, 전쟁이 끝나고도 붉은색을 볼 수가 없어 꽃집 앞을 지나지 못하는 여인…. 요란한 구호나 거창한 웅변 하나 없이 조용히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돌아보게 한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단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와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적 재난을 당한 벨라루스 사람들을 통해 체르노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를 통해 방사능의 위험성과 현실, 원전을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 재앙의 비극을 고발한다. 논픽션이지만 이야기 형식으로 진행해 소설을 읽듯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2006년 미국 비평가협회상을 비롯 국제 헤르더상,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평화상 등을 수상했으며, 희곡 3편과 다큐멘터리 시나리오 21편도 집필했다.

 

다림질을 하다가 노벨상 수상소식을 들었다는 작가는 발표 직후 스웨덴 SVT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복잡한 심경"이라고 전했다. 그녀는 "(노벨문학상 수상한 러시아 작가인) 부닌, 파스테르나크 등 위대한 이름들이 떠오른다"며 "환상적인 기분인 동시에 조금 심란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러시아 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선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자신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벨라루스 정부는 마치 내가 우리나라에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알렉시예비치는 루카셴코 대통령의 독재 통치에 대한 비판적 태도로 탄압을 받아 2000년대 초반부터 10여 년 동안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2012년에야 귀국했다.

 

그녀는 그럼에도 "우리나라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노벨상은 개인의 상이아니라 우리 문화와 우리 작은 나라에 주어진 상이며 모든 포스트 소비에트 문화의 승리"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또 자신이 러시아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일부 주장을 반박하면서 "나는 러시아인과 벨라루스인을 사랑하며 우크라이나도 좋아한다. 나는 스스로를 벨라루스의 인물이자 러시아 문화의 인물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알렉시예비치는 노벨문학상의 14번째 여성 수상자다. 2013년 수상자인 캐나다 소설가 앨리스 먼로에 이어 2년 만에 나온 여성 수상자로, 이들에 앞서 2009년 독일 소설가 헤르타 뮐러, 2004년 오스트리아 소설가 엘프리데 옐리네크 등의 여성 작가들이 수상했다. 러시아어로 작품활동을 한 작가 중에는 6번째 수상자다.

이날 수상 발표를 앞두고 영국의 래드브록스를 비롯한 주요 베팅업체에서 줄곧 1순위를 기록하며 일찌감치 수상이 점쳐지기도 했다.

 

알렉시예비치에게는 800만 크로나(한화 약 11억2천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노벨상 시상식은 창시자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다. 

 

한편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지만 이번에도 수상에는 실패했다.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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