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배우 박해미가 연출을 맡아 주목을 받은 다섯 수녀가 펼치는 좌충우돌 코미디 뮤지컬 ‘넌센스2’가 지난해 같은 공연에서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임금을 주지 않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 공연계의 고질병인 출연료 미지급 사태가 다시 발생한 것이다.
지난 5일 한국방송 연기자노동조합은 “지난해 4월 29일부터 공연한 뮤지컬 ‘넌센스2’의 제작사가 지금까지 스태프와 배우 등 7명의 출연료 2000여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국예술인 복지재단도 “출연료를 받지 못한 2016 시즌 ‘넌센스2’ 배우 6명이 피해 신고를 해왔고, 1명이 곧 신고할 예정”이라며 임금 미지불 사실을 확인했다.
2017년판 '넌센스2'는 제작사를 교체한 뒤, 박해미·조혜련·박슬기 등을 출연시켜 지난 2월부터 이날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씨제이(CJ)토월극장에서 재공연했다
지난해 4월부터 대학로에서 오픈런으로 공연된 ‘넌센스2’는 당시에도 출연료 관련 문제로 위기가 있었다. 연출 겸 주연인 박해미를 포함한 배우들의 임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자, 10 월경에는 2주간 공연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넌센스2’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배우, 스태프와 직접 계약을 체결했던 전 제작사 이모 대표가 이들에게 제대로 돈을 지불하지 못하면서 미지급 사태가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넌센스2’ 측은 올해 제작사를 교체하고 박해미, 조혜련, 박슬기, 김예원, 이미쉘 등 유명 배우를 앞세워 지난달 16일부터 지난 5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재공연했다.
지난 시즌 무대에 오른 피해자들은 “전·현 제작사 뿐 아니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연출을 맡은 배우 박해미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 제작사 측은 “어느 정도 도의적인 책임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올해 공연은 지난해 제작사와는 전혀 무관하다”며 “기본적인 책임은 계약을 하고도 임금을 지불하지 않은 전 제작사 및 대표가 지는 게 맞다”고 반박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 ‘넌센스2’ 공연은 개막 후 16일간 총 24회라는 짧은 공연 기간 동안 관객 1만 5천 명을 동원하며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폐막날을 포함한 지난 3~5일 회차는 거의 매진이 됐을 만큼 흥행한 것이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송창곤 사무차장은 "한연노가 미지급보수를 해결하기 위해 수차례 문제를 제기했지만 기존 제작사와 현재 제작사 담당자는 무책임한 답변과 태도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올해 공연에서도 TV스타를 제외한 단역 배우들 가운데 일부가 아직까지 출연료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지난 3일 확인했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전·현 제작자 측뿐만 아니라 연출과 수녀원장 역을 맡은 박해미까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입을 주장했다.
피해자 A씨는 "박해미씨와 예술감독을 맡은 남편 N씨 그리고 전·현 제작사 대표가 모두 지인이며, 이들의 배후에는 공연기획자 H씨가 있다"며 "과거에도 타인 명의의 제작사를 통해 여러 차례 공연을 올린 H씨는 수익이 발생하면 본인이 가져가고, 손실이 생기면 배우와 제작진에게 떠넘기는 방식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공연 출연료를 받지 못한 피해자 B씨는 "출연진 대부분이 박해미의 지명도를 믿고 지난해 공연에 참여했다"고도 했다.
더불어 오는 4~5일에는 부산, 제주, 수원 등 지방 투어를 할 예정이다. 현 제작사 측은 “만약 전 제작사가 임금 미지불 사태를 해결하지 않아 앞으로의 공연에 피해가 된다면 법적 조치까지 취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공연계에서 출연진 미지급 사태는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다. 지난 2014년에는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 제작사가 출연진에게 보수를 지급하지 않아 공연 15분 전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했으며, 지난해에는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가 지난 시즌 스태프에게 보수를 지급하지 않고 이듬해 초호화 캐스팅으로 다시 무대를 올려 비판을 받았다.
이외에도 지난해 11월 개막을 앞둔 뮤지컬 ‘ 록키’ 역시 제작사 엠뮤지컬아트가 앞선 공연에서 출연진 및 스태프에게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아 결국 개막을 하루 앞두고 전격 취소된 바 있다.
이에 대해 박해미씨는 피해자들의 주장이 크게 왜곡됐다고 반박했다. 그는 "내 지명도를 보고 출연을 결심할 수 있겠지만, 나 역시 고용된 신분"이라며 "틈날 때마다 배우들에게 출연료를 못 받으면 법적 절차를 밟으라고 말했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이어 "지난해 공연은 시작할 때부터 말썽이었다. 출연료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서 제작사에 수시로 따져야 했다. 내가 지난해 10월경에 제작사 대표를 만나 담판을 지었다. 제작사 대표에게서 본 공연인 저녁공연 이외의 부수적인 낮공연의 수익 통장을 받아냈다. 거기서 단역들 급료를 해결할 수 있었다. 주연급 배우들에겐 직접 해결하도록 놔뒀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박씨는 피해자들이 배후로 지목한 H씨에 대해 "나 역시 H씨에게 엮여서 어쩔 수 없이 공연에 참여하게 됐으며 그에 따른 피해액이 약 3000만~4000만원이나 된다"며 "좋은 공연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런 일이 생겨 안타깝다"고도 했다. 이어 "올해 공연에서는 단역까지도 모두 출연료가 지급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관계자는 "출연료 미지급 등 공연계 불공정행위 피해 사례가 2014년부터 현재까지 358건이 신고됐다"며 "신고 1건당 평균 3~4명의 피해자가 있고 다른 작품에 출연하기 위해 피해를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 피해자 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공연제작 환경 개선과 출연료 미지급을 방지하기 위해서 법정 장치인 '표준 공연출연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통용되는 공연 출연계약서를 보면 공연기간, 출연금액, 갑과 을의 의무 등만 간단히 담고 있으며 이마저도 구두계약으로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며 "'공연이 중단됐을 경우' '사고가 났을 경우' 등 항목을 세분화해 피해를 방지하는 내용이 담긴 표준 출연계약서 작성을 권장한다"고도 했다.
그는 또 "피해가 발생하면 법률상담, 소송비용, 조정, 행정조치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원스톱 체계인 '예술인 신문고'에 꼭 신고해달라"며 "신고 내용은 '사실조사→시정권고→시정명령→과태료 부과' 순으로 진행되며 사실조사 과정에서 해결된 불공정행위도 81건에 이른다"고도 했다. 이어 "적발된 업체는 재발 방지를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사업에서 참여가 배제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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