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장준하 선생이 청년시절 신안소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 스승과 제자 사이로 만나 1943년 결혼했다.
일제강점기, 학도병으로 끌려간 장준하 선생이 탈영을 감행하는 등 독립운동에 앞장서자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받았고, 해방 후에는 장준하 선생이 발행한 '사상계'를 전국적인 잡지로 만드는 데 앞장섰다.
1975년 8월17일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펼치던 장준하 선생이 박정희 정권 하에서 의문사한 후, 김 여사는 80년대 군사정권 하에서 감시를 받는 등 많은 고초를 겪었다.
유족으로는 호권 호성 호준 호연 호경씨 3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은 4일 오전8시. 고인은 장준하 선생 유해가 안장된 경기 파주시 장준하공원에 안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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