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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초대칼럼] 장광설(長廣舌)과 횡설수설(橫說竪說)

"부끄러워하지 않는 후안무치의 자기합리화가 언어의 본질까지 흐리게 한다"

(서울=미래일보) 강기옥(시인·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 태어나자마자 울음을 터뜨리지 않는 아이는 정상이 아니다. 세상에 태어난 기쁨이든 두려움이든 울음은 자신의 탄생을 알리는 언어의 변형이다. 인간의 삶은 그렇게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표현하는 언어로 시작한다. 미분화된 상태의 울음은 점차 세련된 언어로 발전하며 예절과 도덕적 성숙도를 동반한다. 누구나 탄생 초기에는 떼를 쓰는 육탄적 방법으로 표현하였기에 태어나면서부터 완벽한 언어를 구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류사에서 생물학적 한계를 초월한 인물이 있었다. 신앙적 시각으로 접근해야 이해할 수 있는 '고타마 싯타르다'다.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탄생게(誕生偈)를 외친 카필라 왕국의 왕자는 가장 완벽한 인간의 탄생이었다. 상식적으로는 감탄보다 전설이나 신화로 받아들여지는 신이(神異)한 언동이지만 불자들에게는 절대적 숭앙의 가치를 지닌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보지도 않은 핏덩이가 왜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하늘 위와 땅 아래에서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고 외쳤을까. 위대한 인물의 종교적 형성 과정은 신앙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이해가 가능하다.

기독교가 '말씀'으로 시작했듯 불교도 언어로 시작했다. 다만 기독교는 명령적 언어인데 비해 불교는 선언적 외침이라는 데 차이가 있다. 즉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와 같이 기독교는 광명을 밝히는 창조의 명령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불교는 세상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고유(告諭)와 함께 자신의 권위를 드러낸 선언으로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는 절대자의 말씀에 순종하는 질서를 형성했고 불교는 먼저 깨달은 자가 세상을 위해 붓다의 장광설(長廣舌)이 필요했다. 그 장광설은 불교 경전에서 밝힌 붓다의 32서상(瑞相) 중의 하나인데 넓고 긴 혀에서 쏟아내는 교훈의 말씀을 뜻한다.

32서상은 붓다가 지닌 신체의 32가지 특징을 말한다. 손이 길어 무릎에 닿고, 발바닥은 평발인데 천 개의 살이 있는 바퀴가 새겨져 있고,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는 기러기 발과 같은 엷은 막이 있고, 장딴지는 사슴 같고, 몸은 사자 같고, 이는 40개인데다 온몸은 자금색으로 빛난다는 등 일반인과 다른 특이한 점이다. 이 특징들은 불상을 제작할 때 적용한다. 정수리의 육계(肉髻), 고수머리의 나발(螺髮), 목의 삼도(三道), 미간의 백호(白毫), 신체의 금박 등 외형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들이다.

그중 선언적 언어의 특징을 지닌 서상은 넓고 긴 혀 즉 (長廣舌)로 나타난다. 인도의 철학에는 도를 깨달은 자는 혀가 길다고 보았다. 붓다 이전에 혀가 코를 덮을 만큼 긴 도사가 있었다는 것도 깨달음의 일정한 수준에 이른 자가 있었음을 상징한다. 그런데 붓다의 혀는 이마의 머리카락에 닿을 만큼 길고 넓었다. 전륜성왕처럼 무기나 무력보다는 정법과 정의로 세상을 다스리는 언어의 달인을 상징했다. 그 넓고 긴 혀가 곧 부처님의 말씀인 장광설인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자의 유창한 말씀, 깨닫지 못한 자들을 계도하기 위한 자비의 말씀이 장광설이다. 그러다 보니 가로로 말하든 세로로 말하든 어느 하나 틀린 것이 없어 듣는 이가 쉽게 이해했다. 어떻게 말해도 진리의 정연한 논리가 있다는 횡설수설(橫說竪說)이다.

횡(橫)은 '가로', '옆' '곁'을 뜻하지만 '뜻밖의', '갑작스러운', '제멋대로 하다', '거스르다', '방자하다', '사납다'는 부정적 의미를 지닌다. 횡사(橫死), 횡액(橫厄), 횡행(橫行)과 같은 단어가 그것인데 특히 횡설(橫說)은 '상대방의 기분에 들지 않는 말, 또는 쓸데없는 말을 자유자재로 지껄이는 말'을 뜻한다. 그 영향인지 횡설수설은 주제도 없이 왔다 갔다 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변했고 자상하고 조리 있게 설명하여 이해시키는 장광설도 길고 지루한 말, 쓸데없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말로 바뀌어버렸다.

『고려사』 열전 '정몽주전'에서 이색은 정몽주를 자주 칭찬한 예가 보인다. '정몽주가 이학(理學)을 논하는 것은 횡설수설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은 것이 없다[夢周論理, 橫說竪說, 無非當理]'고 극찬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성리학의 조종[東方理學之祖]'이라고 추앙했다. 부처님의 설법과 고려 최고의 문장가인 정몽주의 언어가 곧 횡설수설인데 정치인의 임기응변적 언술이 많은 탓에 부정적인 언어로 변했고 장광설 역시 국회의 의사방해(議事妨害)를 위한 긴 발언, 즉 필리버스터(filibuster) 때문에 저질의 장황한 말로 바뀌어 버렸다.

'내로남불'의 비아냥거림에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후안무치의 자기합리화가 언어의 본질까지 흐리게 한다. 많은 예산을 들여 국립국어원은 외래어를 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그 막대한 비용을 국회의 세비를 깎아 책정하면 어떨까. 실현성 없는 횡설수설로 장광설을 지껄여 본다.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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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컬럼] 최창일 시인, '울었다, 스노보드 수묵화 앞에서'
설원 위를 가르는 한 젊은 스노보드 선수의 비행은 단순한 스포츠 장면을 넘어 한 편의 시가 되었다. 최창일 시인은 최가온 선수의 점프와 착지를 '수묵화'에 비유하며, 몸으로 완성된 예술의 순간을 포착한다. 이 글은 승패를 넘어선 아름다움, 하늘로 오르는 용기와 다시 땅으로 돌아오는 품격을 성찰하는 사유의 기록이다. 눈 내리는 설원을 바라보며 시인은 묻는다. 인생이란 결국 ‘착지의 예술’이 아니겠는가. 젊은 비상의 장면 앞에서 울음을 삼키지 못한 한 노 시인의 고백은, 우리 모두의 겨울과 봄을 동시에 환기한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설원 위로 눈이 내렸다. 흰 입자들이 겹겹이 포개지며 세상을 다시 그렸다. 그 풍경은 단순한 경기장이 아니었다. 거대한 화선지였다. 수묵이 번지듯 눈발이 흩날리고, 그 위로 한 소녀가 몸을 띄웠다. 스노보드 선수 최가온. 그날 그녀는 기술이 아니라 한 편의 시를 쓰고 있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오후였다. 점프의 순간, 공기가 갈라졌다. 몸은 작아졌다가 다시 커지듯 떠올랐다. 몇 초 남짓한 비행이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겨울이 포개져 있었다. 얼어붙고, 녹아내리고, 다시 다져온 시간의 결. 화면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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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정황은 있다"면서 면죄부… 기본소득당, 류희림 '민원사주' 재수사 촉구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류희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민원사주' 의혹에 대해 감사원이 사실상 면죄부에 가까운 결론을 내리자, 기본소득당이 강하게 반발하며 철저한 재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노서영 기본소득당 대변인은 5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감사원이 '정황은 확인됐다'면서도 '단정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했다"며 "이는 민원사주 의혹 규명의 책임을 방기한 무책임한 감사"라고 비판했다. 노 대변인은 류희림 전 위원장이 재임 당시 정권 비판 언론에 과도한 제재를 반복하고, 법적 근거가 미비한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를 졸속 설치하는 등 언론 규제와 탄압에 앞장섰던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민원사주 의혹 역시 "내란정권 하에서 언론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드러난 중대 사안"이라는 주장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류 전 위원장의 친족과 지인 11명이 이틀 동안 34건의 민원을 집중 제기했으며, 민원 문구의 분량과 표현 방식, 심지어 맞춤법 오류인 '사실인냥'이라는 표현까지 유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노 대변인은 "이는 기존 보도보다 축소된 규모일 뿐, 명백한 민원사주 정황"이라며 "그럼에도 감사원이 물적 증거 부족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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