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본지 편집국장) = 창밖에는 장맛비가 쉼 없이 내린다. 며칠째 이어지는 비는 산과 들을 적시고, 강물을 불리며, 사람들의 발걸음마저 무겁게 만든다. 해마다 찾아오는 장마이건만, 올해의 빗소리는 유난히 길고 깊게 들린다. 어쩌면 우리가 마주한 것은 계절의 장마만이 아니라 시대의 장마인지도 모른다. 이럴 때마다 떠오르는 시가 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구우(久雨)'다. "久雨何須苦(구우하수고) 비 길다고 하나 무엇이 그리 괴로우랴. 晴時也自歎(청시야자탄) 맑은 날에도 홀로 탄식하곤 하는 것을." 불과 열네 글자 남짓한 이 마지막 구절은 2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의 우리 마음을 두드린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가난과 질병, 고독을 견뎌야 했다. 찾아오는 이는 드물었고, 의관조차 제대로 갖추기 어려운 생활이 이어졌다. 낡은 집 천장에서는 노린재가 떨어졌고, 병든 몸은 잠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긴 비를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글을 통해 자신을 다스리고, 백성을 위한 사유를 멈추지 않았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경제는 수치상 회복을 말하지만, 서민들이 체감하는 온도는 여전히 차갑다. 자영업자에게는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그의 미학 에세이 <현대의 삶을 그리다>에서 화장(化粧)을 고귀한 정신적 행위로 격상시켰다. 그에게 화장이란 단순히 결점을 가리는 행위가 아니라, 가공되지 않은 거친 '자연 상태'의 인간을 예술적 차원의 '초자연'으로 끌어올리는 숭고한 극복이었다. 오랫동안 서구의 뷰티 문법은 이 '극복'을 철저히 은폐와 수정의 관점에서 해석해 왔다. 두꺼운 파운데이션으로 본래의 피부를 지우고, 강한 산성 성분으로 표피를 벗겨내며, 인위적인 색조로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미의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학의 견고한 성벽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진앙지는 동쪽의 작은 반도, 대한민국이었다. 오늘날 세계 뷰티 시장을 이끄는 할리우드 배우와 글로벌 톱모델들은 한국 화장품(K-뷰티)을 단순히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 화장품이 지닌 철학과 문화적 가치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켄달 제너,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 헤일리 비버, 드류 배리모어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한국 스킨케어를 극찬하는 현상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다. 이는 피부를 바라보는 인류의 미학이 '정복과 은폐'에서 '공존
좋은 인터뷰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과 답하는 사람이 함께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시대 기록이다. 손석희와 신해철의 만남은 단순한 방송 출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론과 예술, 이성과 감성, 질문과 사유가 서로를 비추며 한국 사회의 금기와 상식을 흔들었던 지성의 대화였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시대를 향한 문제의식만큼은 누구보다 뜨거웠던 두 사람. 그들의 대화는 오늘날에도 언론의 품격과 공론장의 역할, 그리고 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책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대한민국 언론사와 대중문화사를 통틀어 가장 강렬하면서도 품격 있는 만남을 꼽으라면, 언론인 손석희와 음악가 신해철의 조우를 빼놓기 어렵다. 한 사람은 냉철한 이성과 송곳 같은 질문으로 한국 언론의 중심에 선 저널리스트였고, 다른 한 사람은 뜨거운 열정과 거침없는 언어로 청춘의 해방구를 자처했던 음악가였다. 얼핏 서로 다른 세계에 서 있는 듯 보였지만,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시대를 향한 문제의식과 인간에 대한 성찰이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깊은 교감을 이어갔다. 많은 사람들은 두 사람의 만남을 '스타 앵커와 스타 음악가의 인터뷰' 정도로 기억한다. 그러나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2026년 6월, 멕시코시티 아스테카 스타디움의 밤하늘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축구 팬들의 함성과 열기로 들끓고 있었다. 지구촌 최대 축제인 북중미 월드컵 개막식 무대. 거장 안드레아 보첼리의 장엄한 목소리가 경기장을 감싼 뒤, 한 동양인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무대 중앙에 섰다. 클래식과 EDM, 힙합과 K-팝이 어우러진 공식 주제가 'DNA'의 하이라이트 순간, 경기장을 가득 채운 것은 다름 아닌 한국어였다. "또 넘어져도 나, 또다시 일어나." 전 세계 수억 명의 시청자들에게 전달된 이 한 줄은 단순한 응원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 노래를 부른 음악가 이재(EJAE) 자신의 삶이었고, K-팝이라는 거대한 산업의 이면에서 묵묵히 버텨온 수많은 창작자들을 향한 헌사였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BTS 정국이 'Dreamers' 세계를 매료시켰다면, 2026년의 이재는 가장 한국적인 언어와 정서를 앞세워 또 다른 역사를 써 내려갔다.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인 이재를 바라보면 화려함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그의 출발점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연습생 시절의 고독한 시간이었다. 거대 기획사의 시스템 속
정치의 가치는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느냐로 평가되지 않는다. 오히려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추고 필요한 곳으로 향할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영국의 전 총리 알렉 더글러스 흄이 보여준 '아름다운 하향(下向)'의 정치철학은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최근 목포시의원으로 당선된 손혜원 전 국회의원의 행보 역시 이러한 정치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알렉 더글러스 흄(Sir Alec Douglas-Home, 1903~1995)은 영국의 총리(수상)라는 국가 최고 권력의 정점에 올랐던 독특한 인물이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국가가 그의 외교적 역량을 필요로 하자, 그는 주저 없이 사실상 한 단계 아래의 직책인 외무장관직을 수락했다. 이는 세계 정치사에서도 드문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사람이 다시 아래로 내려가 실무 책임을 맡는다는 것은 철저한 자기 절제와 국가를 향한 순수한 헌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흄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자리에 앉아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였다. 지위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역할의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한 명쯤의 '파수꾼' 세우고 살아간다. 부모일 수도 있고, 스승이나 사회적 지도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파수꾼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혼란과 절망 앞에 선다. 세계적인 작가 하퍼 리의 소설 <파수꾼>은 바로 그 순간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정의의 상징이었던 아버지의 몰락 앞에서 한 인간이 자신의 양심을 발견해 가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성숙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세계 문학계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앵무새 죽이기>로 전 세계인의 추앙을 받았던 하퍼 리(Harper Lee, 1926~2016)의 '잃어버린 초고', <파수꾼>이 반세기 만에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출간과 동시에 거대한 논쟁의 중심에 섰다. 우리가 정의의 화신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애티커스 핀치가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모임에 참석하는 노인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수꾼>은 단순한 '실망스러운 후속작'이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은 『앵무새 죽이기』가 남긴 순수한 도덕주의의 균열을 메우며, 한 개인이 어떻게 시대의 광기 속에서 자신의 양심을 독립시키는가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현대 표준 피아노의 건반은 총 88개다. 52개의 흰 건반과 36개의 검은 건반으로 구성된 이 악기는 오늘날 클래식과 재즈, 영화음악과 대중음악까지 아우르며 인간 감성의 가장 정교한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 88개의 건반이 오늘처럼 당연한 기준이 되기까지는 약 300년에 걸친 기술 혁신과 예술적 갈망의 시간이 존재했다. 피아노의 역사는 단순한 악기 발전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사의 기록이다. 피아노 이전 건반 악기의 중심에는 하프시코드(쳄발로)가 있었다. 건반을 누르면 장치가 줄을 '뜯는' 방식이었던 하프시코드는 화려하고 선명한 음색을 지녔지만 결정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다. 연주자가 건반을 세게 누르든 약하게 누르든 음량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즉, 인간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표현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1700년경, 이탈리아 피렌체의 악기 제작자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는 음악사의 흐름을 바꾸는 혁신을 만들어낸다. 그는 줄을 뜯는 대신 '해머로 때리는' 새로운 구조를 고안했다. 이것이 바로 피아노의 시초인 '그라비쳄발로 콜 피아노 에
거리의 테이크아웃 컵에서 시작된 사유가 인간의 사상과 사회의 타락으로 확장된다. 최창일 시인은 커피 한 잔조차 정치와 상업의 계산 속에서 소비되고 버려지는 오늘의 현실을 통해, 물질적 쓰레기를 넘어선 '정신적 공해'의 위험성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디오게네스에서 칸트, 키르케고르와 플라톤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의 사유를 빌려 인간의 책임과 자기 성찰의 필요성을 강하게 묻고 있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구수한 커피가 어느 날 '탱크'로 둔갑해 거리의 쓰레기가 되어 휘젓고 다니고 있다.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자동차 바퀴에 치이며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이것들을 우리는 '쓰레기'라고 부른다. 그러나 쓰레기는 단순히 보기 싫은 시각적 불편함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공기를 더럽히고 토양을 오염시키며, 끝내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명백한 '공해(公害)'다. 물질 세계의 쓰레기가 환경을 파괴한다면, 정신적·사회적 세계의 쓰레기는 공동체의 근간을 흔든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아테네 거리를 헤매며 "사람을 찾고 있다"고 외쳤다. 수많은 인간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음에도 그가 정작 '인간다운 인간'을 찾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