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장건섭 편집국장 = 문학은 이름이 아니라 작품으로 기억된다. 한 사람의 이름은 수십 년 동안 써 내려간 작품과 삶, 그리고 독자와 쌓아온 신뢰가 만든 또 하나의 문학사다. 그래서 문인의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사람의 문학적 양심과 정신을 상징하는 고유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문단의 현실은 그 이름마저 흔들고 있다. 동명이인이라는 우연은 때로 한 사람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고, 평생 쌓아온 명예를 훼손하는 그림자가 된다. 작품과 인격은 전혀 다른데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독자의 오해를 받는 현실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문학인의 가장 큰 자산은 신뢰다. 그런데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에서는 검색창 하나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흔해졌다. SNS와 온라인 홍보가 범람하면서 이름은 쉽게 소비되고, 진실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결국 한 사람의 행동이 또 다른 사람의 평판을 대신하는 왜곡이 발생한다. 그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혼란이 문학계의 상업주의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문학은 본래 인간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문학은 시장의 논리와 홍보의 기술에 잠식되기 시작했다. 작품보다 화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본지 편집국장) = 창밖에는 장맛비가 쉼 없이 내린다. 며칠째 이어지는 비는 산과 들을 적시고, 강물을 불리며, 사람들의 발걸음마저 무겁게 만든다. 해마다 찾아오는 장마이건만, 올해의 빗소리는 유난히 길고 깊게 들린다. 어쩌면 우리가 마주한 것은 계절의 장마만이 아니라 시대의 장마인지도 모른다. 이럴 때마다 떠오르는 시가 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구우(久雨)'다. "久雨何須苦(구우하수고) 비 길다고 하나 무엇이 그리 괴로우랴. 晴時也自歎(청시야자탄) 맑은 날에도 홀로 탄식하곤 하는 것을." 불과 열네 글자 남짓한 이 마지막 구절은 2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의 우리 마음을 두드린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가난과 질병, 고독을 견뎌야 했다. 찾아오는 이는 드물었고, 의관조차 제대로 갖추기 어려운 생활이 이어졌다. 낡은 집 천장에서는 노린재가 떨어졌고, 병든 몸은 잠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긴 비를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글을 통해 자신을 다스리고, 백성을 위한 사유를 멈추지 않았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경제는 수치상 회복을 말하지만, 서민들이 체감하는 온도는 여전히 차갑다. 자영업자에게는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전세중 시인이 제3대 송파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송파예총) 회장에 당선됐다. 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오랜 시간 활동해 온 그는 "예술인생의 마지막 봉사"라는 각오를 밝히며 화합과 상생의 문화예술 공동체를 만들어 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전세중 신임 회장은 지난 6월 29일 송파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제3대 송파예총 회장 선거에서 임미애 후보와의 경선 끝에 당선됐다. 임기는 오는 2029년 2월까지다. 당선 직후 전 회장은 "제 예술인생의 마지막 봉사라는 각오로 사심 없이 오직 송파예총과 회원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회원 모두가 함께하는 화합의 예총, 구민과 함께 성장하는 문화예술 공동체를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송파예총은 송파문인협회, 송파사진작가회, 송파미술가협회, 송파국악협회 등 4개 예술단체가 참여하는 지역 대표 문화예술 연합단체다. 송파문인협회 회원 210명, 송파사진작가회 128명, 송파미술가협회 500명, 송파국악협회 288명 등 모두 1,100여 명의 예술인이 활동하며 공연과 전시, 문학행사, 예술교육 등 다양한 문화예술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전세중 회장은 시인이자 문학인으로 오랫동안 창작활동을 이어왔으며,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그의 미학 에세이 <현대의 삶을 그리다>에서 화장(化粧)을 고귀한 정신적 행위로 격상시켰다. 그에게 화장이란 단순히 결점을 가리는 행위가 아니라, 가공되지 않은 거친 '자연 상태'의 인간을 예술적 차원의 '초자연'으로 끌어올리는 숭고한 극복이었다. 오랫동안 서구의 뷰티 문법은 이 '극복'을 철저히 은폐와 수정의 관점에서 해석해 왔다. 두꺼운 파운데이션으로 본래의 피부를 지우고, 강한 산성 성분으로 표피를 벗겨내며, 인위적인 색조로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미의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학의 견고한 성벽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진앙지는 동쪽의 작은 반도, 대한민국이었다. 오늘날 세계 뷰티 시장을 이끄는 할리우드 배우와 글로벌 톱모델들은 한국 화장품(K-뷰티)을 단순히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 화장품이 지닌 철학과 문화적 가치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켄달 제너,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 헤일리 비버, 드류 배리모어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한국 스킨케어를 극찬하는 현상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다. 이는 피부를 바라보는 인류의 미학이 '정복과 은폐'에서 '공존
좋은 인터뷰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과 답하는 사람이 함께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시대 기록이다. 손석희와 신해철의 만남은 단순한 방송 출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론과 예술, 이성과 감성, 질문과 사유가 서로를 비추며 한국 사회의 금기와 상식을 흔들었던 지성의 대화였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시대를 향한 문제의식만큼은 누구보다 뜨거웠던 두 사람. 그들의 대화는 오늘날에도 언론의 품격과 공론장의 역할, 그리고 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책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대한민국 언론사와 대중문화사를 통틀어 가장 강렬하면서도 품격 있는 만남을 꼽으라면, 언론인 손석희와 음악가 신해철의 조우를 빼놓기 어렵다. 한 사람은 냉철한 이성과 송곳 같은 질문으로 한국 언론의 중심에 선 저널리스트였고, 다른 한 사람은 뜨거운 열정과 거침없는 언어로 청춘의 해방구를 자처했던 음악가였다. 얼핏 서로 다른 세계에 서 있는 듯 보였지만,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시대를 향한 문제의식과 인간에 대한 성찰이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깊은 교감을 이어갔다. 많은 사람들은 두 사람의 만남을 '스타 앵커와 스타 음악가의 인터뷰' 정도로 기억한다. 그러나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2026년 6월, 멕시코시티 아스테카 스타디움의 밤하늘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축구 팬들의 함성과 열기로 들끓고 있었다. 지구촌 최대 축제인 북중미 월드컵 개막식 무대. 거장 안드레아 보첼리의 장엄한 목소리가 경기장을 감싼 뒤, 한 동양인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무대 중앙에 섰다. 클래식과 EDM, 힙합과 K-팝이 어우러진 공식 주제가 'DNA'의 하이라이트 순간, 경기장을 가득 채운 것은 다름 아닌 한국어였다. "또 넘어져도 나, 또다시 일어나." 전 세계 수억 명의 시청자들에게 전달된 이 한 줄은 단순한 응원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 노래를 부른 음악가 이재(EJAE) 자신의 삶이었고, K-팝이라는 거대한 산업의 이면에서 묵묵히 버텨온 수많은 창작자들을 향한 헌사였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BTS 정국이 'Dreamers' 세계를 매료시켰다면, 2026년의 이재는 가장 한국적인 언어와 정서를 앞세워 또 다른 역사를 써 내려갔다.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인 이재를 바라보면 화려함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그의 출발점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연습생 시절의 고독한 시간이었다. 거대 기획사의 시스템 속
명함 한 장이 사람을 설명하는 시대다. 이름보다 직함이 먼저 읽히고, 경력보다 호칭이 먼저 평가받는다. 교수, 박사, 총장, 원장, 석좌교수, 특임교수, 겸임교수, 명예교수…. 어느새 우리 사회는 직함의 시대를 넘어 직함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직함이 많아질수록 그 의미는 희미해지고, 권위가 남발될수록 신뢰는 약해진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직함이 아니라 직함에 걸맞은 책임과 품격이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본지 편집국장) = 교수와 박사가 넘쳐나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가. 명함을 주고받는 일이 많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개를 갸웃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교수, 박사, 총장, 원장, 석좌교수, 특임교수, 겸임교수, 명예교수…. 어떤 명함에는 이름보다 직함이 더 크게 적혀 있고, 직함만 여러 줄 나열된 경우도 적지 않다. 그 화려함에 압도되다가도 문득 궁금해진다. 과연 이 직함들은 모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원래 교수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교원을 뜻한다. 박사는 엄격한 학문적 과정을 거쳐 취득한 최고 학위다. 하나는 직위이고 하나는 학위다. 그러나
정치의 가치는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느냐로 평가되지 않는다. 오히려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추고 필요한 곳으로 향할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영국의 전 총리 알렉 더글러스 흄이 보여준 '아름다운 하향(下向)'의 정치철학은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최근 목포시의원으로 당선된 손혜원 전 국회의원의 행보 역시 이러한 정치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알렉 더글러스 흄(Sir Alec Douglas-Home, 1903~1995)은 영국의 총리(수상)라는 국가 최고 권력의 정점에 올랐던 독특한 인물이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국가가 그의 외교적 역량을 필요로 하자, 그는 주저 없이 사실상 한 단계 아래의 직책인 외무장관직을 수락했다. 이는 세계 정치사에서도 드문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사람이 다시 아래로 내려가 실무 책임을 맡는다는 것은 철저한 자기 절제와 국가를 향한 순수한 헌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흄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자리에 앉아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였다. 지위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역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