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작가들이 최고의 소설 제목으로 뽑은 '장미의 이름'

2024.03.19 23:56:57

움베르토 에코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는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작가에게 작품과 더불어 '시대의 지성'이라 불리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장미의 이름> 소설보다는 기호학의 대가로 알려진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2016)에게는 작가, 기호학자, 시대의 지성이라는 칭호를 불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 평론가의 이구동성이다.

그가 2016년 향년 86세로 눈을 감자 세계의 언론들은 하나같이 "21세기를 산, 위대한 르네상스인이 영원한 이름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가장 슬픈 활자를 사용해 주었다"고 애도했다.

움베르토는 철학자, 비평가였다. 이탈리아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영어, 프랑스어, 라틴어 등 8개국 언어를 구사했다. 그를 들어 언어 천재이자 기호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불렀다.

그의 명성을 알려준 소설 <장미의 이름>은 1980년 세상에 알렸다. 이 작품은 14세기 초반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을 영국인 수도사 윌리엄이 밝혀내는 과정을 그린 추리 소설이다.

윌리엄과 주변 인물을 통해 종교재판 등 중세사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이 소설은 40여 개국에 걸쳐 총 2000만 부 이상이 팔렸다. 1989년 숀 코너리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한국기호학회 회장을 지낸 김성도 고려대 언어학 교수는 "등장인물의 이름부터 추리 과정까지 곳곳에 기호학의 원리들이 녹아있다"라며 "에코는 이 작품을 통해 현대 기호학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 이어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는 것을 기념하기라도 하듯 두 번째 소설 <푸코의 진자>를 추리 소설 기법으로 펴냈다. 솔직히 장미의 이름에 기대어 푸코의 진자를 손에 든 독자들은 땀깨나 흘리며 소설을 넘겨야 했다. 그리 쉽사리 책장을 넘기기에는 무게감이 넘쳤다. 거두절미, 기호학의 정수를 담아낸 작품으로 꼽힌다.

주인공인 세 명의 출판 편집자들이 입수한 암호 메시지를 푸는 과정은 독자의 지적 유희를 마음껏 만족하게 하기에 더함이 없다.

로마 교황청이 "신성모독으로 가득 찬 쓰레기"라고 혹평했다. 하지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에코는 뛰어난 글솜씨와 지적인 구성으로 필명을 떨쳤지만 정작 작가는 "소설은 내게 주말, 아르바이트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에코의 본업인 철학, 기호학 연구에 애정을 둘러싼 학자의 언어로 보인다. 그는 그가 근무하는 학교의 도서관 장서의 위치를 기억할 정도였다. 그는 당시 석학의 주인들인 레비스트로스, 롤랑 바르트 등과 함께 1969년 세계기호학회를 창립하였다. 기호학의 학문적 주춧돌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이가 들며 미디어와 현실 정치에 대해 비평도 하였다. 에코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일곱 번째 소설 <창간 준비호>는 사실을 왜곡하는 언론을 겨냥한 작품이다. 한 시대의 지성도 저간의 언론에는 마땅치 않았다.

에코는 지성인이며 성격은 쾌활하였고 동료들에게 소탈한 사람이었다. 강의가 끝나거나 휴식 시간에는 학생들과 담배를 나누며 피우는 친절한 교수였다. 큰 학자, 석학임에도 다가가기 편한 학자로 알려졌다.

아무래도 에코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소설 <장미의 이름> 마지막 구절을 인상적이라 한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는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이라는 구절이다. 익살스러운 사실은 <장미의 이름> 소설에는 장미꽃에 관한 내용은 한 줄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장미의 이름>은 제목의 효과를 보았다. 사람들은 꽃 중에 장미를 좋아한다.

소설이나 시집에서 심중을 당기는 제목이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은 <장미의 이름>을 두고 한 말 같다. 시인과 소설작가들은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최고의 제목이라 평한다. 작품의 제목은 독자의 마음을 횡단하기 때문에.

-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화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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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섭 기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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