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한국의 전통 정형시인 시조(時調)의 운율과 미감을 영어로 옮겨낸 시집이 최근 미국에서 활동 중인 재미작가이자 마라토너로도 알려진 시조시인 지희선에 의해 출간됐다.
지희선 시인의 시조와 영문 번역을 병기한 시조 번역 시집 <L.A 팜트리(Los Angeles Palm Trees)>는 동경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나왔으며, 한국 시조가 영어로 옮겨져 새로운 독자층과 만나게 되는 귀중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L.A 팜트리>는 한국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를 미국 사회와 더 넓은 영어권 세계에 알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한인 2세들과 미국 등 세계의 독자층과 만나게 되는 귀중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으며, 시조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고자 하는 진정성을 담고 있다.
■ 경남 마산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 문학과 이민의 길을 걷다
저자인 지희선 시조시인은 경상남도 마산 출신으로, 1983년 미국으로 이민하여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꾸준한 문필 활동과 문단 활동을 병행하며 문학의 뿌리를 미국 땅에 깊이 내렸다.
그는 1995년 수필 ‘빈 방 있습니까?’로 <문학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발을 들였고, 이후 <수필과 비평>에 '겨울바다'를 발표해 수필가로 정식 등단하였다. 1999년에는 <현대시조>에 연시조 '풍경 소리'를 발표하여 시조시인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이민 생활 속에서도 그는 문학 활동을 쉼 없이 이어갔다.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 당선, '가톨릭선교 200주년 문예 콩쿨' 최우수상 수상 등은 그의 문학적 역량을 증명하는 기록들이다.
지 시인은 미주 가톨릭 다이제스트와 남가주가톨릭연합월보의 편집국장을 역임했으며, 미주한국문인협회 부회장과 시조분과위원장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특히 세계시조포럼 미주 발기인, Korea Art News 미주 발기인으로서 시조의 세계화에 헌신해왔으며, 현재도 <
■ "시조는 짧지만 깊은 울림을 지닌 형식" – 우형숙 번역가의 정제된 번역
이번 시조 번역집
우형숙 번역가도 3권의 시조집을 출간한 시조시인이자 번역가로서 '시조문학번역상'과 'PEN 번역문학상'을 수상한 실력파로, 시조 특유의 정형미를 보존하면서도 영어권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고 감각적인 울림을 전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우형숙 번역가는 "이번 시집에서 정형시의 구조적 미학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원문 시조에 담긴 이민자의 삶의 결, 감정의 결을 고스란히 영어로 되살려내기 위해 역량을 다했다"라며 "덕분에 이 시집은 단순한 번역 시집을 넘어, 시조의 서정성과 이민자의 서사가 교차하는 문학적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말했다.
■ "마음이 따뜻해지고 포근해지는 시조" – 하버드대학교 맥캔 교수의 서문
이번 시집의 서문은 한국 시문학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데이비드 맥캔(David McCann) 하버드대학교 동아시아학 명예교수가 맡았다.
맥캔 교수는 "이 시조집은 논술과 음악, 삶과 자연을 사유의 틀 안에서 조화롭게 직조한 작품집으로, 상실감을 극복하고 슬픔을 승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라며, "시를 통해 ‘잊고 지낸 기억의 장소들’, ‘따뜻했던 사람들의 순간’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고 극찬했다.
맥캔 교수는 특히 "시조는 마치 우리가 함께 부르는 노래처럼, 사람들의 감정을 모아 따뜻하게 녹여내는 장르"라며, "시조는 여럿이 함께 낭송하며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장르이기에, 독자들이 이 시집에서 좋아하는 작품을 골라 낭송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맥캔 교수는 그러면서 "지희선 시인의 시조는 코로나19, 이별, 계절, 도시의 풍경 같은 사소한 일상을 통해 인간의 회복과 연민을 노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희선 시인은 "모든 것은 주님의 계획하심과 그분의 시간 속에 이루어진다는 신앙적 확신을 바탕으로 이민 생활을 견뎌왔다"라며, "시조는 그러한 삶의 고비마다 정체성과 위로의 근원이 되어주었다"고 말했다.
지 시인은 그러면서 “앞으로도 미국 땅 위에서 ‘시조 전도사’로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 표제작 'L.A. 팜 트리' – 스칼렛처럼 다시 일어서는 생명들
표제작 'L.A. 팜 트리'는 미국 서부의 상징인 야자수를 여성적인 이미지로 의인화하여,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에서도 다시 고개를 드는 생명력과 품위를 노래한다. 작품 속 '찢긴 잎새 가는 허리'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자신을 추스르는 존재들을 상징하며, '스칼렛'이라는 이름을 빌려 남가주의 회복력 있는 정신적 여성상을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L.A. 팜 트리
풀벌레 숨어 울 듯 그대 밤새 울었는가
찢긴 잎새 가는 허리 바람에 휘청대도
다시금 꼿꼿이 고개 드는 남가주의 스칼렛*
※ 스칼렛: 스칼렛 오하라, 마가렛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이 작품은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처럼, 상처받고 찢긴 삶일지라도 다시금 고개를 드는 야자수의 생명력을 노래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이국의 식물이 시인의 눈에는 삶의 은유이자 자기 정체성의 투영으로 다가온다.
영문 번역 역시 원문의 시적 흐름을 살려 다음과 같이 번역되었다.
Los Angeles Palm Trees
Did you all cry throughout the night,
like lawn insects cried out of sight?
Your torn leaves, thin as a waist,
are swinging in the wind.
Like Scarlett of Southern California,
you raise your heads straight again.
■ 시조, 국경을 넘다 - 세계화의 가능성
이 시집은 미국의 2세 교포들과 영어권 독자들에게 한국 시조의 리듬과 정서를 알리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시조가 ‘K-문학’의 핵심 형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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