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운 장편소설 <에덴의 방> 출간… 시간의 경계를 넘어, 존재의 기원을 묻다

  • 등록 2026.04.14 01: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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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해체하고 '인간 이전'을 호출하는 위험한 서사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소설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묻는 작품이 나왔다. 김호운 작가의 장편소설 <에덴의 방>이 도서출판 도화에서 최근 출간 됐다.

<에덴의 방>은 사랑과 욕망, 삶과 죽음이라는 익숙한 주제를 출발점으로 삼지만, 그 종착지는 전혀 다른 차원에 놓여 있다.

이 작품은 인간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해체하고, 그 이전의 상태— 이름 붙일 수 없는 '원형'의 세계로 독자를 밀어 넣는다.

욕망을 넘어 '기원'으로 향하는 서사

<에덴의 방>은 호세와 운희라는 두 인물이 시간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를 찾아가는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서사 구조를 거부한다. '소설 속 소설'이라는 이중 구조를 통해 이야기는 끊임없이 분기되고 확장되며, 독자를 존재론적 질문의 심연으로 끌어들인다.

특히 작품 속 또 다른 텍스트 <섹스, 부활의 열쇠>는 이 소설의 핵심 장치로 기능한다. 죽음을 경험한 인물들이 낯선 공간에서 철학자들을 만나고, 삶과 존재의 본질에 대한 사유를 체험하는 과정은 서사를 넘어 일종의 ‘형이상학적 체험’으로 읽힌다.

이 작품에서 '섹스'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탄생과 죽음, 분리와 합일, 소멸과 재생이 교차하는 존재의 원형으로 돌아가려는 상징적 통로다. 작가는 욕망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대신 욕망 속에 숨겨진 '기원'을 추적한다.

철학을 '몸'으로 번역한 소설

소설 속에서 플라톤, 니체, 하이데거, 쇼펜하우어, 노자, 장자 등 동서양의 철학자들은 단순한 사상적 인용을 넘어 하나의 상징적 존재로 재구성된다. 그들의 사유는 개념으로 머무르지 않고, 인물들의 '몸' 속으로 흘러들어 감각적 경험으로 전환된다.

플라톤의 항아리, 니체의 망치, 하이데거의 손, 노자의 강물, 장자의 나비— 이 상징들은 인간의 사유와 육체, 개념과 감각의 경계를 허문다. 이 지점에서 <에덴의 방>은 철학을 읽는 소설이 아니라, 철학을 '겪는' 소설로 변모한다.

작품 속 한 인물의 선언은 이 소설의 핵심을 응축한다.

"존재는 개념이 아니라 살이다. 형이상학은 언어가 아니라 심장이다.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사랑과 탄생의 또 다른 이름, 부활이다."

파괴와 부활, 순환의 서사 구조

이 소설은 선형적 시간관을 거부한다. 대신 탄생과 죽음, 파괴와 재생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순환의 구조'를 택한다. 아담과 이브의 신화, 니체의 영원회귀, 장자의 변환 사유가 교차하며, 인간 존재를 하나의 거대한 순환 속에 위치시킨다.

특히 '에덴의 방'이라는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상징적 중심축이다. 그곳은 육체가 해체되고 영혼이 결합하는 장소이자, 인간이 잃어버린 원형으로 되돌아가는 통로다. 이 방에서 인간은 이름과 형체를 잃고, 하나의 '심장' 혹은 '별'로 재탄생한다.

서사의 경계를 넘어서는 문제작

김호운 작가의 <에덴의 방>은 기존 소설 문법을 과감히 해체한다. 사건 중심의 전개 대신 개념의 흐름이 서사를 이끌고, 인물은 이야기의 주체라기보다 사유의 매개로 기능한다.

이 때문에 작품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새로운 독서 경험이 열린다. 독자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대신, 사유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과정은 때로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강렬한 지적 쾌감을 동반한다.

김호운 작가… "기원을 묻고 싶었다"

김호운 작가는 "이 소설에서 섹스는 사건이 아니라 인간 이전의 원형으로 돌아가려는 몸짓"이라며, "욕망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기원을 묻고 싶었다"고 밝힌다.

또한 인간은 매 순간 변하며, 어제의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출발해, 존재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사이의 흐름을 탐색하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김호운 작가는 1978년 <월간문학> 제25회 신인작품상에 단편소설 '유리벽 저편'이 당선되며 문단에 등단한 이후,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한국 소설문학의 한 축을 꾸준히 형성해 온 중견 작가이다.

그는 장편소설 <황토>(전2권)를 비롯해 <크레타의 물고기>, <표해록>, <바이칼, 단군의 태양을 품다>, <님은 침묵하지 않았다>(전2권) 등에서 역사와 신화, 인간 존재의 근원을 탐색하는 서사를 펼쳐 왔으며, 소설집 <스웨덴 숲속에서 온 달라헤스트>, <사라예보의 장미>, <인디고블루와 코발트블루, 사라진 개> 등을 통해 다양한 시대와 공간을 넘나드는 서정성과 문제의식을 동시에 구축해왔다.

또한 콩트집 <궁합이 맞습니다>(전2권), 사진 에세이집 <연꽃, 미소>, 인문서 <소설학림>, 칼럼집 <나비를 잡는 아이의 마음>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폭넓은 창작 활동을 이어오며, 문학을 단순한 서사 형식이 아닌 사유와 삶을 관통하는 통합적 예술로 확장해 왔다.

그의 작품 세계는 인간의 역사성과 신화적 상상력, 그리고 철학적 성찰이 결합된 독자적인 미학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인간 존재의 기원과 운명, 삶과 죽음의 순환이라는 근원적 질문을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장편소설 <에덴의 방>은 그 문학적 여정의 심화된 결실로 읽힌다.

문학적 성취 또한 높이 평가받아 한국소설문학상, 한국문학백년상, 녹색문학상, 문학에스프리문학상, 대한민국예술문화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는 등 한국 문단에서 확고한 위치를 다져왔다.

현재는 한국 최대 문인단체인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이사장과 사단법인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창작과 더불어 한국 문학의 저변 확대와 문인 권익 증진, 국제 문학 교류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그의 행보는 개인 작가로서의 성취를 넘어, 동시대 한국 문학의 흐름을 이끄는 중심적 역할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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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섭 기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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