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최창일 시인, '타락한 세계에서 반성으로 이끌기'

  • 등록 2024.09.06 17: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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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 몰상식을 덮는 것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세상이 온통 병이 들었다. 아니 병이 든 것이 확실하다. 나 자신이 세상 병의 한 부분이다. 문제는 병이 들어 병소(病巢)임이 분명한데 인정하지 않는다.

작가는 병든 세계 속에서 온몸으로 그 병을 앓고 있는 이의 다른 이름이다. 이 상황의 중심에 서 있으면 그 실체가 보이지 않는 법이다. 작가가 병든 세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세계 안에 있으면서 그 세계로부터 한발 비켜나 세계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더 정직, 직설로 말해보자. 작가는 도둑, 소경, 고아, 무당, 광대, 칼잡이와 마찬가지로 세계 안에 정주하지 못한다. 세계 밖을 하염없이 떠돌아야 하는 저주받은 운명들이다. 이 저주받은 운명이란 범속한 인간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지만 작가에게는 그 예술을 위한 하나의 지복(至福)인지 모른다.

여름 폭한, 날씨를 원망하지만, 그 날씨는 지복을 타고나지도 못했다. 스스로 움직일 힘이 없다. 주어진 환경에 바퀴 되어 나쁘면 나쁘게 우락부락한 몰골로 가야만 하며 꿈을 꾸지 못한다.

저 가을 산을 넘어가는 사람은 있으나 가을 산은 그저 정해진 시간 안의 부분일 뿐이다.

우리 삶에는 열리고 닫히는 많은, 문들이 있다. 어떤 문은 조금 열린 채 떠난다. 다시 돌아올 희망과 포부를 안고, 또 어떤 문들은 쾅 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닫히고 만다. 닫힌 문은 후회를 모른다. 문은 사물의 하나다. 문을 만들고 조금 열거나 완전히 닫는 것은 우리의 일이다.

새로운 전망과 모험, 새로운 가능성과 동기를 일으키며 세계로 나아 가는 일은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요즘 <굿 파트너>라는 드라마가 20%대, 시청률 고공을 치닫는다. 연약하게 보이는 초등학생, 소녀의 대사는 어른들의 시선과 귀를 사로잡는다. 부모는 소녀를 걱정하며 예속(隸屬)으로 여기지만, 소녀 또한 어른의 세계를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지혜를 가졌다. 어느 시청자는 소녀의 진실한 태도에 시청률이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한다.

이혼 전담변호사 세계 이야기가 이렇게 반향을 일으킨다는 것은 몰상식이 상식을 덮고 있다는 것이다. 상식이 몰상식을 덮는 것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순리와 같다. 소설가나 시인 중에는 이단아와 같은 존재들이 있다. 그들이 이단아로 보이는 것은 자신의 저주받은 운명을 기피 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드린다는 것이다.

2년 전 저세상으로 떠난 소설가 이외수(1946~2022)는 문단의 이단아로 손꼽혔다. 이외수의 소설을 보면 그렇다 하지만 이단아 자신의 방랑이 소설로 옮겨졌나 하는 착각을 하게 한다.

이외수를 유명하게 만든 <꿈꾸는 식물>(1978)에서 '염력으로 구름 모으기, 나비 한 마리로 온 천지를 함박눈 쏟아지게 하기, 다른 세상으로 타 동하기, 타락한 세계를 피해 그림 속에 들어 있는 신선 동네로 찾아가는 방법에 평생 매달리는 사람의 얘기'를 펼쳐간다. 그는 실제로 모습이 도(道)와 같이 생겼다.

이외수 또한 도를 공부하였다. 그의 소설은 초현실적 염력, 신선, 풍류도, 도교의 흔적을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가 <꿈꾸는 식물>을 쓸 때는 뱀이 문지방을 들어오고, <개미귀신>을 쓸 때는 명주잠자리가 방안에 날아다니거나, <장수하늘소>를 쓸 때는 희귀한 천연기념물인 장수하늘소가 실제로 날아들었다 한다. 이외수다운 구라다.

그는 허경영처럼 영계에 다녀 왔다는 믿기 어려운 소문도 있다. 소문은 늘 소문의 근원지가 자신이라는 것이 재미있다. 문제는 이렇게 허무한 이야기를 하여도 그를 찾는 방문객이 하루 7~8명, 한 달이면 2~3백 명이 찾아들었다. 그를 방문하는 사람은 이외수 소설가가 주는 점심을 할 수 있었다. 그는 '가난을 직업'으로 여긴다는 말을 하였지만, 작가로 얻은 수입을 방문객에게 썼다.

정리하자. 우리는 타락한 현실에 대해 현실을 건져내는 작중 화자를 만나고자 한다. 어떻게라도 각성에 이르게 되고, 타락한 현실에 마취로부터 깨어나 존재의 전환을 성취하는 것이 관심을 끄는 것이 세상사다. 우리는 늘 '염치가 있는' 지도자나 작가를 찾는다. 그것은 인간의 속성인지 모른다. 옛날 마을에 무당이 해결의 지락(至樂)을 가졌다는 허무가 이를 말한다.

이외수는 작품에서 <꿈꾸는 식물>을 통해 타락한 현실을 반성으로 이끌고자 했을지 모른다. 그렇다, 이 땅의 시인에게는 이외수와 함께 현실에 저항하는 '반성으로 이끄는 힘'을 모으려는 부류들이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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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섭 기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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