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단체를 비방하거나 회원 간 친목을 방해했다는 등의 추상적인 징계조항을 근거로 회원을 함부로 제명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회원 제명은 조직 내 비판적인 소수를 몰아내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1민사부(재판장 판사 염기창)는 지난 19일 사단법인 대한민국상이군경회(이하 상이군경회) 경기도지부 소속 회원인 최재광, 백문기, 이만재 씨 등 3명이 이 단체와 단체 회장 김덕남 씨를 상대로 낸 '회원제명처분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최재광에 대하여 한 제명처분 및 원고 백문기, 이만재에 대하여 한 각 제명처분은 각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피고(상이군경회 본회)는 전상군경 ․ 공상군경을 회원으로 하여 국가유공자 등 설립에 관한 법률에 기초하여 설립된 법인이고, 원고들은 피고의 경기도지부 소속 회원으로 활동하던 사람들"이라며 이만재 씨 등 원고들의 경우 "피고의 원고에 대한 제명처분에는 징계양정과 관련하여 재량권의 범위를 현저하게 일탈한 중대한 하자가 있어 그 효력이 없다 할 것이고, 피고가 제명처분의 효력을 다투고 있는 만큼 원고가 제명처분의 무효 확인을 구할 소의 이익도 봄이 상당하다"며 "원고들의 청구는 모두 이유가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고 원고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상이군경회의 징계 규정을 보면 이들의 일부 행위가 징계 사유는 될 수 있다고 법원은 밝혔다.
상이군경회는 '본회와 다른 회원을 비방하거나 중상모략하는 행위', '회원간 친목단결을 방해하고 이간한 행위', '자의적 판단으로 단체 운영이나 임직원의 직무를 비방·음해해 단체 위상을 저해한 행위' 등을 징계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회원의 제명은 조직 내 소수세력을 축출하고 조직을 사유화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수 있는 만큼 엄격히 처분돼야 한다"며 "상이군경회의 징계 사유는 추상적으로 규정돼 악용될 소지가 크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제명 등 징계를 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상이군경회 본회는 상이군경회의 경기도지부 소속 회원이며 대한민국상이군특수전연맹 회장인 이만재 씨가 지난 2013년 5월 30일 회장 선거에서 김덕남 후보가 회장으로 선출 되자 "선거가 무효"라는 보도 자료를 미래일보 기자에게 배포하여 2013년 6월 3일자 기사에 그 내용이 반영되도록 한 점과 2013년 4월 8일 국가유공자광장 신문고 및 2013년 4월 30일 국가보훈처 자유게시판에 각각 자신을 비방하는 글을 게시 한 점을 이유로 상이군경회 경기도지부 지방징계위원회 위원장을 수신자로 하여 이만재 씨의 징계를 요구하는 서면을 발송했다.
이에 대하여 상이군경회 경기도지부 지방징계위원회 위원장은 2014년 6월 27일 개최된 지방징계위원회에서 징계위원 34명 중 30명이 참석하여 만장일치로 이만재 씨에 대한 회원 제명을 결의하고 2014년 7월 7일 상이군경회 본회의 승인을 받은 후 상이군경회 회원에서 이씨를 제명하자 이씨는 이에 불복 소송을 제기했었다.
이만재 씨는 상이군경회 본회가 문제 삼은 미래일보 기사, 국가유공자광장 신문고에 게시한 글, 국가보훈처 자유게시판의 글은 자신이 "직접 쓴 것이 아니다"라며 "피고를 비방한 사실이 없고 단체의 위상을 실추시킨 사실도 없으므로, 제명처분은 재량권의 범위를 벗어난 과도한 처분으로서 무효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상이군경회 본회는 "미래일보 기사, 국가유공자광장 신문고에 게시된 글, 국가보훈처 자유게시판의 글은 원고 이만재가 작성하도록 한 것임이 분명하다"며 "기사와 글 내용은 피고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회장을 비방하며, 대한민국상이군특수전연맹 회원과 다른 피고 회원 사이를 이간하는 취지로서, 원고 이만재의 행위는 징계사유를 구성한다고 보아야 하고, 그 행위의 중대성에 비추어 보면 제명처분이 재량권의 법위를 벗어난 정도의 과도한 처분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상이군경회 본회의 위와 같은 주장에 대해 "피고의 원고 이만재에 대한 제명처분은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어 재량권의 법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며 김 회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그 이유로 먼저 "피고의 회원이 제명처분을 받는 경우에는 선거권, 피선거권이 모두 박탈될 뿐 아니라 총회에 참석하여 의견을 개진할 수도 없게 되는 바, 제명처분은 조직 내의 소수 세력을 축출하고 조직을 사유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또 "피고는 제명처분을 받은 사람도 처분일로부터 2년이 경과하면 회원 신분을 회복할 수 있으므로 그로 인한 불이익의 정도가 크지 않다고 주장하나, 적어도 2년 동안은 아무런 권한을 행사할 수 없고 신분 회복 역시 회장의 재량에 맡겨져 있으므로, 피고의 주장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법원은 "피고는 원고 이만재가 미래일보 기사 형식을 빌려 회장선거 절차를 비방한 것을 주된 징계사유로 삼았으나, 서울남부지방법원은 피고의 2013년 5월 30일자 회장선거와 관련하여 그 결의를 무효로 할 정도로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판결(2013가합14768 판결)을 내렸고, 위 판결은 확정되었다"며 "그렇다면, 적어도 회장 선거를 비판한 부분에 한해서는 원고 이만재의 지적에 타당성이 있고, 공익에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또 상이군경회 본회가 미래일보 기사 형식으로 게재된 이만재 씨의 글 중에서 특히 김 회장이 문제 삼은 "'특수전연맹은 상이군경회원이 아닌 상이군인이길 바랍니다.' '이제 상이군경회 물고 뜯고 하는 현실' 등의 표현이 징계 규정의 '이간행위'라고 볼 소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이 글 전체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으로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해당 부분만 떼어놓고 보았을 때 제명처분 대상이 될 정도의 중대한 징계사유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 법원은 상이군경회 본회의 백문기 씨에 대한 회원 제명처분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백문기 씨는 상이군경회 경기도지부 회원으로서 2013년 5월 30일 자 상이군경회 회장 선거 당시 김덕남 후보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을 공표하고, 중소기업청에 '경기도지부는 청소용역을 수주한 후 이를 직접 수행하지 않고 모두 백문기, 최재광이 운영하는 업체에 위탁하면서, 중간에서 수수료를 취득하는 대명사업(명의대여사업) 방식으로 사업을 수행한다'는 내용으로 민원을 제기한 내용은 모두 진실에 부합하므로, 피고가 위 행위에 대하여 제명처분을 내린 것은 재량권의 범위를 벗어난 과도한 처분으로서 무효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상이군경회 본회는 "원고 백문기가 회장 선거 당시 김덕남으로부터 금품을 받았다고 공표한 부분은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하고, 피고는 이를 이유로 이미 원고 백문기에게 면직처분을 내린바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 백문기는 중소기업청 등에 민원을 제기하여 피고에게 손해를 입힌 것으로, 원고 백문기의 위 행위는 징계규정에 의해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하고, 그 행위의 중대성을 비추어 보면 제명처분이 재량권의 범위를 벗어난 정도의 과도한 처분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백문기 씨의 회원 제명처분을 놓고 상이군경회 본회와 백 씨 간의 상반된 주장에 대해 법원은 "피고의 경기도지부는 자신이 직접 용역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전제로 국가유공자단체의 수익사업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른 수익사업 허가를 받고, 중소기업제품 구매 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직접생산확인을 받았음에도, 직접 사업을 수행하지 않고 원고 최재광이 운영하는 상이군경회 경기화성사업소를 통하여 용역을 수행하였고, 원고 백문기는 바로 위 점을 지적하면서 민원을 제기했다"며 "피고의 경기도지부는 결국 민원에 의하여 중소기업청장으로부터 직접생산확인 취소를 당하여 일정기간 동안 사업을 수행하는 데에 지장을 입게 되었지만, 이는 피고의 경기도지부 스스로가 관련 법령에 반하는 영업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받은 불이익이므로, 원고 백문기의 민원 대문에 재산상 손해를 입게 되었음을 이유로 원고 백문기에게 징계규정에 근거한 징계사유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또 "피고가 위법한 행위를 하여 수익을 얻은 것을 원고 백문기가 지적하였다 하여, 원고 백문기에게 징계사유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 역시 부당하다"며 "원고가 기물문서 등을 누설하거나 왜곡되게 유포하는 등의 행위를 하였다고 볼 증거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법원은 "피고는 원고 백문기가 김덕남을 상대로 직무집행정지 및 직무대행자선임가처분을 신청하는 등 상습적으로 소송 또는 진정을 제기하였다고 주장하나, 원고 백문기는 피고가 주장하는 직무집행정지 및 직무대행자선임가처분을 신청한 당사자도 아니었다"며 "피고의 원고 백문기에 대한 제명처분에는 징계양정과 관련하여 재량권의 범위를 현저하게 일탈한 중대한 하자가 있어 그 효력이 없다 할 것이고, 피고가 제명처분의 효력을 다투고 있는 만큼 원고 백문기가 제명처분의 무효 확인을 구할 소의 이익도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한편 법원은 또 상이군경회 본회의 상이군경회 경기도지부 화성시지회장이자 화성사업소의 대표이사인 최재광 씨에 대한 회원 제명처분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최재광 씨는 중소기업청에 "'피고는 자신의 명의로 청소용역을 수주한 후 이를 직접 수행하지 않고 모두 원고 백문기, 최재광이 운영하는 업체에 위탁하면서, 중간에서 수수료를 취득하는 대명사업 방식으로 사업을 수행한다'는 내용으로 민원을 제기한 사실은 인정한다"며 "그러나 위 내용은 모두 사실이므로, 피고가 위 행위에 대하여 제명처분을 내린 것은 재량권의 범위를 벗어난 처분으로서 무효이다"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최재광 씨의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하여 상이군경회 본회는 "원고 최재광은 피고의 경기도지부 화성시지회장이자 화성사업소의 대표이사로서 청소용역계약을 통하여 받은 수익금을 피고의 경기도지부 화성시지회 회원들에게 공정하게 분배하지 아니하였고, 피고는 이를 이유로 이미 원고 최재광에게 화성시지회장 자격을 박탈하는 파면처분을 내린 바 있다"며 "나아가, 원고 최재광은 피고의 경기도지부로부터 청소영역계약을 위임받으면서 보안 유지약정을 한 사실이 있음에도 원고 백문기와 함께 중소기업청에 민원을 제기하여 피고에게 손해를 입힌 것인바, 원고 최재광의 행위는 징계사유에 해당하고, 그 행위의 중대성에 비추어 보면 제명처분이 재량권의 범위를 벗어난 정도의 과도한 처분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상이군경회 본회의 최재광 씨에 대한 회원 제명처분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상이군경회가 제출한 증거들로만으로는 최씨와 관련하여 상이군경회가 주장하는 징계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 했다.
최씨가 중소기업청에 민원을 제기하여 상이군경회의 수익사업이 중단됨에 따라 입은 재산상 손해는 궁극적으로 상이군경회 본회가 위법한 영업활동을 하였던 데에 원인이 있었던 것이므로 최씨가 이를 지적하는 민원을 제기하였다 하여 징계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한 것이다.
즉, 법원의 이와 같은 판결은 상이군경회 본회의 징계규정은 상이군경회가 정당한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원이 부당하게 문제제기, 비방 등의 행위를 하는 경우를 상정하고 있는 조항이므로, 이 사건에 적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편 서울 남부지법은 지난 1월 상이군경회 본회 회장 선거가 무효라며 일부 회원들이 제기한 중앙총회결의 무효 확인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에 계류돼 있다.
고광천 기자 gkc7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