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최창일 시인, "슬픔까지도 베지 않는 억새의 푸르고 깊은 꿈"

2022.07.19 09:33:00

지구를 살리는 억새와 꽃들...서로를 비비며 베지 않고 서로의 생명을 지켜줘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몸을 비빈다. 서걱서걱 소리다. 순정으로 전신을 비비는 억새, 폭풍우에도 초연하다. 푸른 피를 비비는 억새는 푸른색을 걸고 신과의 특별한 언약이 있었던 것일까.

가느다란 허리에 서로서로 껴안고 바람불어 흔들릴 뿐, 넘어지지 않는다. 기대는 사랑이 무섭다. 손 베일 것은 날카로운 잎새도 진실로 껴안으면 베이지 않는다. 마치 정신을 살리는 선비와 같다.

억새와 꽃들이 지구를 살리고 있다. 어제는 꽃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은 별을 보았다. 내일은 바람을 만날 것이다. 억새와 눈빛과의 약속은 사뿐사뿐 낡아 바람 속으로 돌아간다.

독일 문학에 노발리스(Novalis, 1772~1801)가 쓴 장편 소설 '푸른 꽃'(집필도 중 작가는 요절, 미완의 작품)이 있다. 스무 살 청년 하인리히는 꿈에서 푸른 꽃을 보게 된다. 그가 푸른 꽃으로 다가서자 꽃이 상냥한 여자로 변한다. 그 소녀를 동경한 하인리히는 꿈에서 깨어나 여자를 찾아 먼 여행길을 떠난다. 마침내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할아버지의 친구이자 시인인 크링스오르를 만나고, 그의 딸 마틸데를 보자 꿈에서 본 푸른 꽃의 모습이라 좋아한다.

그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다시 꿈을 꾼다. 나룻배에 앉아 노를 젓는 마틸데를 거대한 풍랑이 덮친다. 꿈은 현실이 되어 마틸데는 죽는다. 짧고 짧은 마틸데와의 사랑. 그의 사랑과 그녀의 죽음은 시인이 되는 결정적인 체험을 그린다.

지금이야 농림임학의 발달로 다양해진 푸른 꽃도 신기하지 않다. 1802년에 펴낸 '푸른 꽃'의 배경에는 낭만주의 작가들이 그리는 푸른 꽃의 동경, 시, 사랑, 사랑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향의 상징을 그렸다. 흔하지 않은 푸른 꽃을 우화로 생각했던 시절이다.

임학의 발달로 푸른 꽃은 정원에 꽃 피는 세상이 되었다. 요정 이야기도 변해야 하고 꿈도 달라져야 하는 세상이다.

고교 시절에 보았던 에릭 시걸(Erich Segal, 1937~2010)의 '러브스토리' 대사에'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상큼, 메모하고 싶은 대사가 있다. 사랑의 작품에서 많은 작가가 인용하였다.

어느 면, 요즘은 순수한 사랑 시대는 아니라 한다. 드라마에서 러브스토리와 같은 사랑을 그린다면 덜떨어진 춘향 시대의 감독이란다. 텅 빈 극장에 파리만 날리고 앉아 있을 것이다. 어느 평론가는 '사랑에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현실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 땅의 사랑은 날마다 미안함을 달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도 한다. 그래서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다.'라고 생텍쥐페리는 말했는지 모른다.

요한1서 4장 18절이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완벽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는다.'라고 한다. '삶의 무게와 고통에서 자유롭게 해 주는 한마디의 말, 그것은 사랑이다'라고 소포클레스는 말했다. 사랑의 표현은 작가들의 미사여구다.

인간에게 사랑이란 어떤 의미로 정리를 할 수 있을까. 구구절절 옳은 말들의 사랑 표현은 대학노트 한 권은 넘고 넘을 것이다.

시도반(詩 공부자)은 '사랑에 대하여 믿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이 아닌가' 남의 말 하듯 한다. 굳이 사랑에 관한 말을 든다면 논어(12권 10장)에 나오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살게끔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극명하다며 새기고 싶다. 어머니의 사랑이 논어와 같은 것. 시도반은 억새를 보면서 논어의 사랑을 되뇌어 본다. 저들은 서로를 비비며 베지 않고 서로의 생명을 지켜준다.

왜 날 흔드느냐 원망도 없다.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억새는 알려준다. 영미문학을 통해 가장 위대한 여류 시인으로 평가되는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은 "사랑은 생명의 이전이고, 죽음 이후이며, 천지 창조의 시작이고, 지구의 해석자"라는 시와 같은 말을 했다. 깊이 있다. 솔직히 인간에게 주어진 말보다는 억새에 맞는 말처럼 느껴진다.

눈치 빠른 독자는 시 도반은 인간의 사랑을 너무 혹독하게 비평하는 것이 아니냐 할 수 있다. 현실이 그렇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지 않은가. 에밀리 디킨슨은 왕을 택하겠느냐, 사랑을 택하겠느냐는 물음에 사랑을 택하겠다는 말을 했다.

"사랑은 하나의 완전한 고통입니다. 무엇으로 그 아픔을 견뎌 낼 수 없습니다. 고통은 오랫동안 남습니다. 가치 있는 고통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법이니까요."라는 말을 하면서도 사랑을 택한다는 에밀리 디킨슨의 사랑에 대한 독특한 견해를 존중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신께 손들어 모호한 질문으로 맺는다. 진정, 사랑은 천지 창조의 시작인가요.

푸른 피의 억새가 살을 비비는 깊고 깊은 푸른 밤이다. 그래서 빈센트 고흐는 생명을 살리는 밤하늘은 검은색이 아니라 푸른 밤이라 천재적인 표현했을 것이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문화학자, '시화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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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섭 기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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