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시는 언제나 시대의 가장 낮은 곳에서 숨을 고르며, 한 시대를 살다 간 개인의 언어이자, 그 시대를 건너온 집단의 기억이다.
삶의 균열과 개인의 고뇌, 그리고 그 너머의 희망을 언어로 길어 올리는 일, 그 오래된 질문을 다시 묻는 자리가 마련된다.
사단법인 한국현대시인협회는 오는 2월 25일 오후 2시, 서울역사박물관 야니게홀에서 2026 한국현대시인협회 세미나 <한국현대시의 역사와 시인 3>를 연다.
이번 사단법인 한국현대시인협회가 개최하는 세미나 <한국현대시의 역사와 시인 3>은 바로 그 기억의 결을 다시 짚는 자리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한국 현대시의 중요한 축을 이룬 고(故) 정공채 시인과 고(故) 최은하 시인의 작품 세계를 통해, 시가 어떻게 현실과 실존, 그리고 초월의 문제를 끌어안아 왔는지를 성찰한다.
첫 발표는 양왕용 시인(부산대학교 국어교육과 명예교수)이 맡는다.
<정공채 시인의 삶과 시에 나타난 현실 인식>을 통해, 정공채 시인이 겪어온 삶의 궤적과 그가 언어로 응답한 시대의 무게를 짚는다.
그의 시에 드러난 현실 인식은 단순한 시대 기록을 넘어, 시인이 세계와 맺는 윤리적 태도의 문제로 확장된다.

천의무봉의 언어로 시대를 통과한 시인, 정공채
정공채(1934~2008) 시인은 한국 현대시사에서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시인'으로 불린다. 기교를 앞세우지 않으면서도 독창적인 메타포와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전후 한국시의 언어 지형을 확장한 시인이었다.
1957년 박두진의 추천으로 '종이 운다'를 발표하며 등단한 그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언론계에 몸담으며 시대의 현장을 온몸으로 통과했다.
<부산일보>, <민족일보> 기자와 문화방송 프로듀서를 거치며 현실을 가까이서 목격한 경험은 그의 시를 단순한 서정에 머물지 않게 했다.
1960년 4월, 한국 언론사에서 유일하게 4·19혁명을 민중시로 형상화한 '하늘이여!'를 신문 1면에 발표했고, 1963년에는 장시 '미8군의 차'를 통해 자본주의와 정신의 퇴락을 정면으로 다루며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제3세계 문학'으로 평가받아 번역 출간되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민중문학이나 이념의 틀 안에 가두기를 거부했다.
"리얼리티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낭만과 정감, 상상을 얹는 시", 이것이 정공채 시인이 지향한 시의 자리였다.
시집 <정공채시집 있습니까>, <해점>, <아리랑>, <사람소리>, <땅에 글을 쓰다>, <새로운 우수> 등을 통해 그는 실존적 고독과 시대 인식을 동시에 끌어안았다. 또한 역사소설, 수필, 평론, 평전을 넘나들며 한국 문학의 지평을 넓혔다. 그의 이름은 오늘도 한국 현대시의 자유와 용기를 상징한다.
이어 한성우 시인(문학박사)은 <최은하 시의 실존적 고뇌와 신앙적 승화>를 주제로 발표한다. 존재의 불안과 인간 내면의 질문을 시로 끌어안아 온 최은하 시인의 작품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초월의 언어로 건너가려는 시적 긴장을 보여준다.

실존의 고통을 신앙의 언어로 건너간 시인, 최은하
최은하(1938~2023) 시인은 한국 현대시에서 보기 드문 실존과 신앙의 긴장을 끝까지 밀고 간 시인이다.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문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1959년 김광섭의 추천으로 등단하며 문단에 들어섰다.
그의 시는 늘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고통과 불안, 상실과 기다림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신앙적 사유로 승화시키려는 긴장이 그의 작품 전반을 관통한다.
<꽃에게>,
<너와의 최후를 위하여>, <왕십리 안개>, <빛의 소리>, <그리운 중심>, <천년의 바람>, <드디어 때가 이르니> 등 다수의 시집은 도시의 고독과 인간 내면의 어둠을 신앙적 인식으로 감싸 안는다.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 한국기독교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한 그는 문단의 제도적 역할에서도 헌신했으며, 교육자로서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그의 시는 오늘날에도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신앙 언어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우리 앞에 남긴다.
같은 날 행사에서는 명예시인패 수여식과 함께 제57차 정기총회, 그리고 제28·29대 이사장 이취임식이 진행된다.
제29대 이사장에는 이승복 시인이 취임하며, 제갈정웅 제28대 이사장은 명예이사장으로 추대됐다.

분석과 균형의 언어로 협회를 이끄는 새 얼굴, 이승복 사단법인 한국현대시인협회 제29대 신임 이사장
이번 세미나와 함께 이승복 시인이 한국현대시인협회 제29대 이사장으로 취임하며 협회는 새로운 체제를 맞는다.
1959년생인 이 신임 이사장은 시의 운율과 구조 분석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아 온 학자이자 시인이다.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며 학과장을 역임했고,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으로서 협회 운영에도 깊이 관여해 왔다. 그의 강점은 감각과 분석, 창작과 이론을 균형 있게 아우르는 데 있다.
이승복 신임 이사장은 "시인은 시대의 언어를 대신 짊어지는 존재"라며 "협회가 과거의 성취를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의 시와 내일의 시를 함께 고민하는 장이 되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한편, 앞서 지난 1월 20일 열린 평의원회(함동선·손해일·김용언·왕왕용), 신세훈(위임)에서는 협회의 새 집행부 구성도 확정됐다.
부이사장에는 ▲양병호(1960년생·전북 전주·전북대 국문과 명예교수·28대 부이사장), ▲김연수(1951년생·경기도 가평·수도사대 졸업·시문학 등단·다일공동체 대표), ▲김두한(1958년생·경북 안동·전 건동대 교수·문학박사·현대시학 등단), ▲심은섭(1958년생·강원도 강릉·관동대 명예교수·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송용구(1965년생·서울시·고려대 독일어권문화연구소 교수·시문학 등단) 시인이 선임됐다.
정유준 한국현대시인협회 사무총장은 "이번 세미나는 시인을 연구하는 자리를 넘어, 한국 현대시가 시대의 질문에 어떻게 응답해 왔는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라며 "현실과 실존, 신앙과 윤리라는 문제의식이 시를 통해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를 함께 사유하는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세미나는 한 시대를 통과한 두 시인의 언어를 통해, 한국 현대시가 어떻게 현실과 실존, 그리고 초월의 문제를 끌어안아 왔는지를 다시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의 중심에, 새로운 리더십 아래 다시 숨을 고르는 한국현대시인협회가 있다. 시는 끝나지 않는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시는 다른 얼굴로 다시 우리 앞에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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