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땅끝순례문학관 재개관 기념식 성료…"문학의 순례지로 다시 서다"

  • 등록 2025.07.04 22: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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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문학혼, 다시 피어나다… 순례의 시, 다시 길을 묻다


(해남=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전국 최남단, 한반도의 끝자락인 해남 땅끝에서 한국문학의 숨결이 다시 피어올랐다. 해남군(군수 명현관)은 7월 4일(금) 오후 2시, 송지면에 위치한 땅끝순례문학관 앞마당에서 재개관 기념식을 개최했다.

땅끝순례문학관은 ‘문학의 순례지’라는 고유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이번 리모델링을 통해 과거와 현재,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조화를 이루는 복합 문학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이번 재개관 기념식은 문학과 예술을 통해 지역 정체성을 되새기고, 순례문학의 가치와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로, 명현관 해남군수를 비롯해 국회의원, 군의원, 교육지원청장 등 지역 인사들과 함께, 문정희 국립한국문학관 관장, 김종회 한국문학관협회 회장, 황지우 시인, 유가족과 지역 인사 등 국내 대표 문인들이 자리해 문학관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했다.


이날 참석한 문정희 관장은 1947년 전남 보성 출생으로, 1969년 <월간문학>에 시 '불면', '하늘'로 등단한 이래 국내외를 무대로 활발히 활동해온 중견 시인으로, 산티아고 순례길과 순례 식물원을 연결한 문학적 비전을 강조해 왔다.

문정희 관장은 "산티아고 순례길과 해남의 땅끝이 문학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며 "이 공간이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종회 한국문학관협회 회장(황순원문학촌 촌장, 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 또한 말했다.

1955년 경남 고성에서 출생, 1988년 <문학사상>에 평론으로 등단한  김 회장은 "문학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지역과 세대를 잇는 살아있는 문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문학의 순례지, 디지털 감성 입고 새롭게 태어나다

이번 리모델링은 2024년부터 2년에 걸쳐 총사업비 17억 5천만 원(도비 6억, 군비 11억 5천만 원)이 투입된 대규모 전시 재구축 사업으로, 땅끝순례문학관은 과거와 현재,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조화를 이루는 복합문학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단장되었다.

특히 해남 출신 또는 해남과 인연이 깊은 현대 대표 시인 이동주, 박성룡, 김남주, 고정희 등 4인의 삶과 작품세계를 중심으로 개별 전시실을 구성해, 한국 현대문학의 한 축을 이룬 순례적 서정을 조명한다.

개관식, 시낭송부터 실감형 전시까지 ‘문학이 흐르는 시간’

기념식은 땅끝시여울 안세권 테너의 시낭송 공연으로 문을 열고, 국민의례, 내빈 소개, 감사패 전달, 기념사와 축사, 테이프 커팅, 전시 관람으로 이어졌다.

명현관 군수는 기념사를 통해 "땅끝순례문학관이 순례자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자 남도 문학의 향기를 품은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혼야(魂夜), 그리움의 끝에 서다" … 이동주 시비(詩碑)에 담긴 순례의 시

문학관 앞 정원에 새롭게 세워진 이동주 시인의 시비(詩碑)도 눈길을 끌었다. 시 '혼야(魂夜)'가 새겨진 이 시비는, 죽은 자의 혼령과 내면의 방황을 절절히 노래한 대표작으로, 땅끝의 하늘과 숲, 바다가 맞닿는 장소에서 시인의 순례적 삶과 시 정신을 상징한다.


"금단(禁斷)의 혼은 고고 비틀거리고…
소돔보다 방임이 더 어두웠다."
이 시는 구원의 언어조차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삶과 죽음, 신념과 현실 사이를 떠도는 고독한 인간의 모습을 절창으로 담아낸다. 자연과 더불어 존재하는 시비 앞에 선 관람객은 마치 '시의 순례자'가 되어 이동주의 시적 공간을 따라 천천히 길을 걷게 된다.


"시를 쓰며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유족 이애정 시인의 고백

문학관 내부 영상전시실 한편에는 이동주 시인의 딸이자 시인으로 활동 중인 이애정 씨의 육성 인터뷰가 상영되고 있다. 영상 속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 오랜 갈등, 그리고 문학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 순간을 차분하게 고백한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화해할 수 있게 된 건, 제가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였지요…  아버지가 떠나셨을 때보다, 시집을 읽으며 펑펑 울던 날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이 고백은 단순한 회상이 아닌, 문학이 상처를 치유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순간이다. 많은 관람객들이 이 장면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눈시울을 붉혔다.

디지털 감성과 서정의 공존, 땅끝에서 문학을 체험하다

재개관한 땅끝순례문학관은 단순한 전시공간을 넘어 ‘체험형 문학관’으로 재구성되었다.

▲이동주실: 시인의 시와 육성, 유품, 원고, 시비 등으로 구성된 대표 공간, ▲실감영상관: 4면 입체영상과 사운드로 시적 체험을 가능케 하는 몰입형 공간, ▲아카이브관: 해남 지역 문인의 작품 및 문학 지도, 디지털 아카이빙으로 구성


기획전시실: 주제별 작가 초대전 및 문학 전시 기획 예정

한편, '땅끝순례문학관'은 이번 재개관을 기념해 영호남 문학 특별 교류전도 열리는 가운데, 오는 12일에는 이육사 시인과 김남주 시인 가족의 토크쇼도 열릴 예정이다.

땅끝순례문학관은 더 이상 '지리적 끝'이 아니다. 이제는 문학적 시작점, 치유와 순례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시인을 이해하고, 삶을 되새기며, 스스로에게 다시 길을 묻는 이곳에서, 남도의 문학혼은 오늘도 새롭게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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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섭 기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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