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오월에는 계절의 여왕을 대표하는 장미, 라일락, 붓꽃이 손을 들고 얼굴을 내민다. 그중에 붓꽃은 한국, 일본 중국의 들판에 자생하는 야생화다. 그 붓꽃이 생명력은 강하지만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식물이다.
기후위기를 살아가는 노년층이 붓꽃과 닮았다는 취지의 퍼포먼스의 사진 한 장이 조간 신문에서 눈길을 끈다. 평균 63세의 ‘어르신’이 회견을 하고 “기후위기는 노년층에게 생명 박탈의 위험”이라고 주장한다. 환경부가 2020년 발표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 보고서를 보면, 폭염증가·기온상승으로 인한 사망·질병은 65세 이상 고령 인구에서 많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됐다.
진정인들은 10년 새 폭염수가 길어져 2018년에 65세 이상의 온열 질환 사망자 수가 연평균 2배 이상이었다는 내용을 담았다. 63세 노인 123명이 국가 인권위원회 앞으로 진정서와 함께 멸종 위기종인 붓꽃종이 모형을 들었다. 야생 붓꽃멸종은 노인의 죽음과 무관치 않다는 의미다.
‘어르신’들이 들고 있는 사진은 2023년 10월 세상을 떠난 노벨상 작가 루이즈 글릭(Louise Elisabeth Gluck, 1943~2023)의 ‘야생 붓꽃’ 시가 떠오른다. 루이즈 글릭 시집 13권 전권이 번역, 출간된 것은 작가의 나라 미국을 제외하면 한국이 유일하다.
루이즈 글릭의 작품성도 작품성이지만 한국의 독자와 어울리는 시적 언어와 무관하지 않다. 글릭은 노벨상을 받은 두 번째 여성 시인이다. 1996년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Maria Wisława Anna Szymborska, 1923~)가 여성 시인으로 처음 수상했다.
시인 루이즈 글릭이 보았던 야생 붓꽃은 어떤 꽃잎이었을까?
시도반은 우연하게도 지난해 신안의 무지개길 언덕에서 루이즈 글릭이 시에 담은 파란색과 보라색에 가까운 붓꽃을 대면한 적이 있다. 고흐의 그림에도 등장하는 아이리스 붓꽃이다. 초봄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산모퉁이에서 작은 군락을 이루며 핀 모습이다.
바람이 불면 주변의 풀들과 잘도 어울리며 꽃잎을 바람에 날리는 대로 흔들었다. 강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지만, 우아(優雅) 귀티를 보이며 보란 듯이 수분이 적은 자리에 물줄기처럼 어색하게 피어난 상황이 눈길을 끌었다.
'내 고통의 끝자락에/ 문이 하나 있었어.// 내 말 좀 끝까지 들어 봐: 그대가 죽음이라 부르는 걸 나 기억하고 있다고.//머리 위, 소음들, 흔들리는 소나무 가지들, 그리고 아무것 없어, 힘없는 태양은/ 메마른 땅 표면에 어른거리네.//끔찍해, 어두운 대지에 파묻힌/ 의식으로/ 살아남는다는 건.// 그리고는 끝이 났지: 네가 두려워하는 것, 영혼으로 있으면서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갑자기 끝나고, 딱딱한 대지가/살짝 휘어졌어, 키 작은 나무들 사이로/ 내가 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빠르게 날고,//다른 세상에서 오는 길을/ 기억하지 못하는 너, 네게 말하네, 나 다시 말할 수 있을 거라고:망각에서/ 돌아오는 것은 무엇이든/ 목소리를 찾으러 돌아오는 거라고://내 생명의 한 가운데서 거대한/ 물줄기가 솟아났네, 하늘빛 바닷물에/깊고 푸른 그림자들이.' - 루이즈 글릭의 시 ‘야생 붓꽃’ 전문
글릭은 정원을 가꾸면서 '살며 사랑하는' 일에 이야기한다. 그건 곧 '사랑 없이 죽는' 일에 이야기다. 시인은 '사랑 없이 죽는' 일에 이야기이기도 하다. 글릭이 이야기하는 시는 언 듯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시인은 기독교적 전통과 신화적 세계를 절묘하게 엮는다. T.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의 모더니즘과도 다르다. 조금 들어가 보면 낮익은 일상의 목소리로 우리들의 삶, 감정을 정원의 붓꽃을 통해 전한다. 시는 최대한 담담한 표정으로 삶과 죽음의 상실을 응시하는 감각이 열려있다. 시인은 인간이 듣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인간이 들어야 하는 말(신형철 평론가)들이다.
글릭이 시를 쓰던 20세기 미국의 시단 분위기는 서정시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유약하거나 낮은 언어의 은유들을 별로로 생각했다.
글릭은 야생 붓꽃에 대한 목소리에는 여러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식물의. 인간의, 그리고 신의 목소리를 표현한다. 식물은 인간을 향해 말하고, 인간은 신을 향해 말한다. 신은 자기 자신에게 말한다.
루이즈 글릭의 꽃의 언어는 퓰리처상의 심사위원들의 귀에 경이와 통찰의 시간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글릭에게 수상하는 기회가 되었다. 루이즈 글릭이 그리는 야생 붓꽃의 멸종은 인간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음은 슬픔을 예견하거나 경고하는 작품이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화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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