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최현숙 기자 = 주말이나 어린이날이면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대공원이나 수족관, 박물관 같은 곳을 가거나 아니면 여행을 가기 위한 짐을 싸던 시절이 있었다. 봄이 오면 계절을 알려주기 위해 동물과 꽃들을 마주 보게 하고, 여름이면 물의 흐름을 알기 위해 수영장이나 펜션을 찾아 며칠 쉬었다 오기도 했으며, 가을이면 겨울 채비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될 것 같기에 고민도하고, 겨울이면 가끔은 차가움도 맛보기 위해 바다를 살갗에 대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아이가 성인이 되어 가니 함께 하는 시간들이 그리 많지 않은 날들이 되었다.
아이를 낳은 부모라면 어느 집이나 육아시절을 지나왔거나 아니면 지금 한참 중인 부모들도 있을 것이다. 아이가 처음 축복 속에 태어나던 시간 엄마도 처음 해보는 엄마라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고민 속에 육아 시절을 보내왔다. 육아는 아이에게 주는 사랑 외에 온몸이 아이를 대신해야 하는 일이라 고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아이가 울면 울음을 그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해 무엇이든 하다가 그치지 않으면 함께 울어야 했으며, 대신 아파줄 수 없는 아이의 아픔엔 부모는 속상할 수밖에 없었다. 잠자는 머리맡에 아이의 숨결은 고른지 거친 지 눈은 감았으나 신경은 온통 아이에게 있어 선잠을 자던 시절.
먹이고, 입히고, 기저귀 갈고, 씻기고, 재우고 때론 밥 먹을 시간조차 없어 아이를 둘러업고 꾸역꾸역 먹어야 하던 나의 관절은 찬바람이 지나다니고, 하루 24시간의 몸은 온통 아이의 몸이 되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때론 아이에게 주던 짜증은 하루의 반성 끝에 속상해하며 눈물의 밤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만큼은 너무도 느린 시간의 탓도 했었다. 느린 건 시간이 아니라 아이였는데 엄마의 처음 시간들은 그랬다.
그러나 눈물로 틔운 그 시간들 뒤에는 늘 나를 한 계단 높은 곳으로 엄마라는 이름을 올려놓았고 지금도 여전히 계절마다 성장하고 있는 나는 19년째 성장 중인 엄마다. 이 시간들 지나고 보니 이제는 아이가 다 커서 아기적 냄새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시간을 비롯한 일이라 생각하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세월을 먹고 있는 일이다.
이렇게 자란 나의 아이는 올해 성인이 되기 위해 주민증을 만들고 가끔은 식탁 위에 군대 이야기를 올려놓곤 한다. 여기에 남편은 자기 군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며 사회 이야기와 대학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아이가 성인이 되어 살아갈 이야기들을 모두 끌어다 늘어놓는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연실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사회에 발을 들여놓고 살아갈 성인의 앞날을 깊이 생각하곤 한다.
아이의 성장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언제 이 아이가 커서 말을 하고 걸을 것이며 학교는 언제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계절 따라 옷을 입히다 보면 치수가 작아져 그때서야 아이가 성장했음을 알게 된다. 그럴 때마다 아이의 옷과 신발은 한 치수 커지고 이때 엄마라는 이름도 한 뼘 더자라 아이의 몸과 마음에 맞게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와 함께 성장해 가는 나무라고 한다. 때론 지나지 않을 시간일 것 같이 천천히 가는 느린 시간들이지만 아이들의 발걸음이 그렇다. 봄 나무에 어린 생명이 서서히 자라듯 아이들은 그렇게 어린 생명 일수 밖에 없다. 어른의 생각일 수 없고, 어른들이 바라보는 눈일 수 없고, 어른들의 사회와 세상에 아이들이 있을 수 없다. 그 세상을 가기 위해 아이들은 한걸음 한걸음 내딛고 배워 가며 걸어가는 아이들은 아이들 다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월은 어린이날을 비롯해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이 들어 있고 꽃 진자리에 푸른 싹들이 돋아나 잎새들은 여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계절이 푸른날들 처럼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더욱 푸르러 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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