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 수록곡 '새싹'의 작사가이자 4·19 혁명 기념식 행사곡 '그날', 현충일 추념식 충혼가 '영웅의 노래'를 작시한 김명숙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내 마음의 실루엣>.
이 시집은 꽃과 바다, 고향과 어머니, 텃밭과 일상의 풍경에서 출발해 광주민주화운동과 통일, 독도와 현대사회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시적 관심을 담아낸 작품집이다.
김명숙 시인은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아가는 시인이지만 그의 시선은 자연의 아름다움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인은 자연을 통해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고, 고향의 기억을 통해 시대를 성찰하며, 개인의 내면에서 출발해 사회와 역사의 문제로 시적 상상력을 확장한다.
<내 마음의 실루엣>은 그러한 김명숙 시인의 문학적 궤적을 보여주는 두 번째 시집이자, 첫 시집 <그 여자의 바다> 이후 11년 만에 맺은 결실이다.
◇ 작은 연못에서 시작된 '나의 우주'
시집의 첫 작품 '연의 노래'는 김명숙 시 세계의 출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인은 "내 우주는 작은 연못이었다"라고 말한다.
물이랑이 심할수록, 바깥을 향한 마음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땅속 깊이 파고들었다는 고백은 연꽃의 생태를 통해 인간의 삶과 내면을 비추는 시적 장치로 읽힌다.
"그리운 마음만을 지키기 위해/비우고 또 비워냈다"는 구절은 삶과 사랑을 견디는 방식에 대한 시인의 사유를 보여준다.
그리고 비가 다녀간 오후, 연못 곳곳에 사랑이 꽃피고 자신의 노래가 연못 밖으로 번져간다는 마지막 장면은 작은 세계에서 시작된 시적 울림이 바깥세상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명숙의 시는 이처럼 작은 자연의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의 삶과 기억, 사랑과 존재의 문제를 길어 올린다.
◇ 꽃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풍경
시집 곳곳에는 꽃이 피고 바다가 출렁인다.
달맞이꽃과 갯메꽃, 진달래와 억새, 연꽃과 동백꽃이 시인의 언어 속에서 저마다 다른 상징과 풍경으로 살아난다.
'풀벌레 소리'에서는 보름달과 별자리, 달맞이꽃과 풀벌레 소리가 어우러진다.
"풀벌레들은 달빛이 버무린 별들의 말을 읽어줍니다"라는 구절에서 자연은 더 이상 침묵하는 배경이 아니다.
풀벌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달빛은 별들의 언어를 만들어내며, 자연의 소리는 결국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시인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몇 날 며칠을 소리 내어 읽어도 다 못 읽을 대하소설"이라고 표현한다.
짧은 한 편의 시 속에 유년의 기억과 가족의 시간,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그리움이 담긴다.
'봄의 바다―원미산 진달래'에서는 진달래가 만개한 산이 거대한 분홍빛 바다로 변한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물고기가 되고, 사람들의 재잘거림은 파도가 된다.
"겨드랑이에/지느러미가 쑥쑥 돋은 사람들"이라는 발랄한 표현은 김명숙 시의 독특한 상상력을 잘 보여준다.
현실의 산을 바라보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공광규 시인은 해설에서 김명숙 시의 주요 제재를 꽃과 바다, 그리고 사회·정치적 상상력으로 요약했다.
자연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자유로운 상상력이 김명숙 시 세계의 중요한 특징이라는 평가다.
◇ "그해 5월, 나는 광주에 없었다"
'내 마음의 실루엣'이 주목되는 이유는 아름다운 자연의 서정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인은 역사적 사건과 사회적 문제를 자신의 삶의 기억과 연결해 시로 끌어들인다.
대표적인 작품이 '그해 5월, 나는 광주에 없었다'이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자신이 광주에 없었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이야기한다.
학업을 위해 어린 나이에 마산의 산업체 부설학교에서 생활하던 시인은 광주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자유를 위해 싸우던 시각, 기숙사에서 가요를 따라 부르고 숙제를 하고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시인은 바로 그 '부재의 기억'을 통해 역사의 비극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못 찾겠다 꾀꼬리"를 부르며 숨바꼭질을 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작품 속에서 자유와 진실을 찾지 못하는 시대의 은유로 바뀐다.
"자유는 꽁꽁 숨어버려/보이지도 찾아지지도 않아"라는 구절은 개인의 유년적 기억을 넘어 역사적 현실을 향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광주에 있지 않았던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도 5월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 독도를 향한 뜨거운 시선
독도를 소재로 한 작품들에서도 김명숙 시인의 사회적 상상력은 강렬하게 드러난다.
'독도의 품'과 '독도에 닿는 법', '독도에서 듣다' 등은 아름다운 섬의 풍경과 함께 우리 영토를 향한 시인의 애정을 담아낸다.
특히 '독도에 닿는 법'은 매우 독특한 어법과 풍자를 통해 독도를 둘러싼 현실을 표현한다.
시인은 자신의 머리에 뿔이 달렸다고 상상하며, 허튼소리를 하는 이들을 들이받고 싶다고 말한다.
그 분노는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역사와 영토에 대한 왜곡을 향한 시적 저항으로 읽힌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무거운 구호나 선언에 기대지 않는다.
해학과 풍자, 과장된 상상력을 통해 현실을 비틀어 보여준다.
김명숙 시에서 독도는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기억과 역사, 그리고 오늘의 현실이 만나는 상징적 공간이다.
◇ 도서관 시집 속 낙서가 남긴 '시의 흔적'
'코스프레'는 독서와 시의 관계를 독특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인은 도서관에서 빌린 시집에서 누군가 남긴 낙서를 발견한다.
곳곳에 그어진 밑줄과 메모는 처음에는 책을 훼손한 흔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인은 그 흔적을 따라가며 자신도 모르는 한 사람의 생각과 만나게 된다.
누군가가 어떤 단어에 밑줄을 긋고, 어떤 문장 앞에서 멈췄는지를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일면식도 없는 그가 내게 터치를 하고 갔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침내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생각과/나의 생각이/시집 안에서 뛰어논다"고 고백한다.
한 권의 시집을 통해 서로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의 생각이 만나는 순간이다.
이 작품은 시가 시인에게서 출발하지만 독자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구십 넘은 어머니와 '미운 정, 고운 정'
김명숙의 시 세계에서 가장 깊은 정서적 뿌리는 어머니와 고향이다.
'목욕재계'는 구십이 넘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몸을 정성껏 씻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평소에는 죽으면 절대 함께 묻히지 않겠다고 말하던 어머니.
그러나 아버지의 기일이 되자 어머니는 목욕재계를 한다.
딸이 이유를 묻자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면 예쁨을 받으려고 그런다고 말하며 수줍게 웃는다.
홀로 된 지 47년.
시인은 "살다 보니 미운 정도 고운 정으로 바뀌었을까"라고 묻는다.
짧은 작품이지만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부부의 사랑과 원망, 그리움과 정이 모두 담겨 있다.
삶의 긴 시간이 결국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 노랫말을 쓰던 시인, 시대를 노래하다
김명숙 시인의 문학적 이력은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전남 고흥 출생인 김명숙 시인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제1회 한국아동문학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동시로 문단에 나왔다.
시집 <그 여자의 바다>와 <내 마음의 실루엣>을 출간했으며, 초등학교 5학년 음악 교과서에 수록된 '새싹'의 작사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또한 47곡의 가곡과 85곡의 동요를 발표했고, 4·19 혁명 기념식 행사곡 '그날'과 현충일 추념식 충혼가 '영웅의 노래' 를 작시했다.
제48회 한국아동문학작가상, 부천예술상, 한국동요음악대상, 도전한국인상, 오늘의작가상, 시흥문학상 우수상, 방송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부천시 원미노인복지관에서 작문과 문예창작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음악적 이력은 그의 시에도 고스란히 배어 있다.
김명숙의 시에는 바람의 소리가 있고, 풀벌레의 노래가 있으며, 바다의 파도가 있다.
시인은 자연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노래한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아름다운 자연만을 위한 노래가 아니다.
광주의 기억을 노래하고, 독도를 향한 마음을 노래하며, 어머니와 고향을 노래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그림자까지 노래한다.
◇ "나의 봄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김명숙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꽃은 피고 진다."
그리고 "바람 불고/불온한 나날들"이라고 말한다.
시인의 봄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봄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시인은 멈추지 않았다.
11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두 번째 시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내 마음의 실루엣>에는 꽃과 바다가 있고, 고향과 어머니가 있으며, 광주의 5월과 독도가 있다.
또한 개인의 내면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현실이 함께 자리한다.
자연을 사랑하는 시인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인이 역사를 기억하며, 어머니를 노래하는 시인이 시대의 아픔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김명숙의 시는 자신만의 분명한 윤곽을 만들어낸다.
시집의 제목처럼 <내 마음의 실루엣>은 한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낸 윤곽이면서 동시에 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을 비추는 그림자이기도 하다.
꽃은 피고 진다.
그러나 시는 남는다.
그리고 시인은 다시 묻는다.
아직 오리무중인 우리의 봄은, 과연 언제 어디에서 피어날 것인가.
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저마다 하나의 풍경이 있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꽃밭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바다일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고향과 어머니의 얼굴일 것이다. 김명숙 시인의 <내 마음의 실루엣>은 바로 그러한 마음의 풍경을 따라가는 시집이다.
그러나 그 풍경은 개인의 울타리를 넘어 역사와 사회, 시대의 현실로 이어진다.
작은 연못에서 시작된 시인의 우주는 꽃과 바다를 지나 마침내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세상으로 번져간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는 일은 김명숙이라는 한 시인의 마음을 만나는 일이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의 마음속 실루엣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i24@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