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통일의 길에서 시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분단으로 갈라진 언어와 기억, 서로 다른 삶의 경험을 문학은 어떻게 이어갈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문학인들의 진지한 성찰과 모색이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서 펼쳐졌다.

사단법인 한국현대시인협회(이사장 이승복)는 27일 오후 경북 안동 스탠포드호텔 1층 그랜드볼룸에서 '통일과 함께하는 문학'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고, 분단문학과 북한문학, 탈북 작가들의 삶과 창작, 그리고 통일을 향한 시적 실천의 가능성을 폭넓게 논의했다.
1971년 창립 이후 한국 현대시의 발전과 시인들의 창작 역량 강화에 힘써온 한국현대시인협회가 '통일'을 문학적 의제로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이번 심포지엄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정치와 제도의 영역에서 주로 논의돼온 통일 문제를 시와 문학, 인간의 삶과 기억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며 문학이 통일의 과정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모색했다.

"통일은 마음의 거리부터 좁히는 일"…시의 역할을 묻다
이승복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통일을 향한 시의 길'을 강조하며 이번 심포지엄의 취지를 밝혔다.
이 이사장은 한국현대시인협회가 창립 이후 시인들의 창작 의지를 높이고 시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 꾸준히 노력해 왔다고 돌아보면서, 그동안 통일 문제와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 왔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통일이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통일이 다음 세대의 행복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통일과 문학, 특히 시문학이 분단 현실 속에서 안고 있는 수많은 난제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는 뜻을 피력했다.
이 이사장은 문학이 단순히 시대를 기록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서로의 마음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내 가슴에 시 한 편, 가슴마다 시 한 편, 국민 모두 시 한 편"이라는 지향은 이번 심포지엄이 추구하는 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통일 역시 거대한 정치적 구호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이철우 경상북도 도지사 "문학은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는 힘"
이철우 경상북도지사는 사전 서면 축사를 통해 한국현대시인협회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문학단체로서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서 뜻깊은 통일문학 심포지엄을 개최한 것을 축하했다.
이 지사는 1971년 창립 이후 한국현대시인협회가 시를 통해 국민의 정서를 풍요롭게 하고 시대의 아픔과 희망을 나누며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왔다고 평가했다.
특히 제도와 정치를 통해 사회의 방향을 만들고 산업을 통해 경제적 풍요를 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학은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고 사회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탱하는 중요한 힘이라고 강조했다.
남북이 분단된 현실 속에서도 언젠가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이 다시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밝히며, 이번 심포지엄에서 이루어지는 문학인들의 논의가 갈등을 줄이고 공동체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자양분이 되기를 기대했다.
이 지사는 또 안동과 경북이 간직한 선비정신과 민족정신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참가 문인들에게 민족시인 이육사의 삶과 문학을 만날 수 있는 이육사문학관 방문을 권했다.
통일문학을 논하는 자리에서 이육사의 민족정신을 되새기는 것은 안동이라는 공간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도 맞닿아 있다.

권기창 안동시장 "진정한 통일은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
권기창 안동시장 역시 사전 서면 축사를 문학이 가진 공감과 소통의 힘에 주목했다.
권 시장은 시인의 작품을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깊은 언어"라고 표현하며, 이번 심포지엄이 ‘통일’을 주제로 열리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진정한 통일은 단순히 제도와 국토를 하나로 만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는 데서 시작된다는 점을 역설했다.
서로 다른 삶의 경험과 기억을 공감의 언어로 연결하는 것이 바로 시의 힘이라는 것이다.
이번 심포지엄이 통일과 평화의 가치를 문학적으로 조명하고, 분단의 현실을 넘어 새로운 공감의 길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 것도 이 같은 문학의 역할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됐다.
기조발표 "통일에의 길에 시인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심포지엄의 중심에는 양왕용 한국현대시인협회 평의원의 기조발표가 놓였다.
'통일에의 길에 시인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를 주제로 한 기조발표는 이번 행사의 핵심 질문을 압축적으로 제시했다.
통일 문제를 정치·외교·안보의 영역에서만 바라볼 경우 인간 개개인의 기억과 상처, 언어와 정서가 놓치기 쉽다. 그러나 문학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시인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라지기 쉬운 개인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분단으로 단절된 기억을 복원하며, 서로 다른 삶의 경험을 공감의 언어로 바꾸어 놓는다.
따라서 통일문학은 통일 이후를 준비하는 문학만이 아니라 분단의 현실을 직시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감정적·문화적 토대를 만들어가는 현재진행형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양왕용 평의원의 기조발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인의 역할을 묻고, 문학이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언어와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출발점이 됐다.

백석과 이용악, 북한 방언과 향토성에서 찾은 문학의 기억
첫 번째 주제발표는 이상규 경북대학교 명예교수가 맡았다.
‘북한 방언 시문학 향토성 근경-백석과 이용악의 향토성과 탈식민성’을 통해 북한 방언과 향토성이 한국 현대시에서 어떤 문학적 의미를 갖는지 살펴봤다.
백석과 이용악의 시는 특정 지역의 언어와 풍속,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내면서 한국 근대문학의 중요한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방언은 단순히 지역적 언어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지역 공동체가 축적해온 기억과 정서, 생활문화가 담긴 언어의 저장고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분단 이후 남과 북의 언어가 일정한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북한 방언과 향토성을 문학적으로 살펴보는 작업은 단절된 언어와 문화의 기억을 되짚는 작업이기도 하다.
발표에 이어 정영학 시인이 지정토론자로 참여해 북한 방언 시문학과 향토성, 탈식민성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짚었다.

"북에서 남으로"…탈북 작가의 삶, 문학으로 이어지다
두 번째 주제발표에서는 김정애 전 망명북한펜 회장이 '북에서 남으로, 시와 소설로 이어진 탈북 작가의 삶'을 주제로 발표했다.
탈북 작가에게 문학은 단순한 창작 활동을 넘어 자신의 삶과 기억을 증언하고,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언어와 문화, 제도와 사회관계, 가치관의 거대한 변화를 경험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시와 소설은 지나온 삶을 기억하고 현재의 삶을 이해하며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조규수 시인은 지정토론을 통해 탈북 작가의 문학적 경험과 남북 문학의 접점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사선을 넘어 문학의 품으로…봉순이 작가의 증언
세 번째 발표에서는 탈북작가이자 시인인 봉순이가 '사선을 넘어 문학의 품으로'를 주제로 자신의 삶과 문학적 여정을 이야기했다.
탈북이라는 경험은 개인에게 극도의 공포와 불안, 상실과 단절을 남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학은 그 상처를 단순한 개인의 기억으로 남겨두지 않고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언어로 전환하는 힘을 가진다.
'사선을 넘어 문학의 품으로'라는 제목 자체가 탈북의 극적인 현실과 문학이 제공하는 치유와 회복의 공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예태 시인은 지정토론자로 나서 탈북 작가의 경험이 한국문학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문학이 분단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를 함께 살폈다.

탈북 이전과 정착 이후…삶의 변화에서 발견한 문학적 가능성
네 번째 발표는 정하나 탈북민이 맡아 '탈북 이전과 정착 이후의 변화, 그리고 문학적 가능성'을 주제로 진행했다.
탈북민에게 남한 사회의 정착 과정은 새로운 삶의 시작인 동시에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현실을 끊임없이 조율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북한에서의 경험과 남한에서의 삶이 한 개인의 내면에서 만나면서 새로운 서사와 문학적 가능성이 형성된다.
이러한 경험은 남북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삶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학적 자원이 될 수 있다.
전영모 시인은 지정토론을 통해 탈북 이전과 이후의 삶의 변화가 문학적으로 어떻게 형상화될 수 있는지, 그리고 탈북민의 목소리가 통일문학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논의했다.

"분단 체제에 대한 시적 응전"…문학은 현실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다섯 번째 주제발표는 김두한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이 맡았다.
'분단 체제에 대한 시적 응전'을 통해 분단이라는 역사적 현실에 시가 어떻게 응답해 왔으며, 오늘날의 시인은 어떤 방식으로 분단체제에 대응해야 하는지를 살폈다.
분단은 단순히 국토가 둘로 나뉜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의식과 언어, 기억과 감정, 가족과 공동체의 삶에까지 깊숙이 영향을 미쳐온 하나의 사회적 체제다.
따라서 분단문학 역시 과거의 전쟁과 이산의 아픔을 회고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현재의 분단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평화와 공존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오늘날 시가 수행해야 할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다.
김윤한 시인은 지정토론자로 참여해 분단체제에 대한 시적 응전의 의미와 현대시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통일 담론을 함께 모색했다.
다섯 개의 발표, 하나의 질문…"우리는 어떻게 다시 만날 것인가"
이번 심포지엄의 다섯 주제발표는 서로 다른 영역을 다루면서도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됐다.
"분단으로 갈라진 우리는 어떻게 다시 만날 것인가."
북한 방언과 향토성을 통해 잃어버린 언어와 문화의 기억을 돌아보고, 탈북 작가들의 삶을 통해 분단이 개인에게 남긴 상처를 살폈으며, 탈북 이후 정착 과정과 문학적 가능성을 통해 새로운 공존의 길을 탐색했다.
또한 분단체제에 대한 시적 응전을 통해 문학이 역사적 현실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결국 이번 심포지엄은 통일을 거대한 정치적 사건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의 거리를 좁히고, 서로 다른 삶을 이해하며, 잊힌 기억을 되찾고, 단절된 언어와 문화를 다시 연결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점을 문학적 관점에서 확인한 자리였다.
안동에서 만난 통일문학, 이육사의 정신과 만나다
이번 심포지엄이 안동에서 개최됐다는 사실도 의미가 깊다.
안동은 오랜 역사와 전통, 유교문화와 선비정신을 간직한 한국 정신문화의 중심지다. 동시에 일제강점기 민족시인 이육사가 태어나고 성장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육사의 시에는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저항과 자유에 대한 열망, 인간의 존엄과 민족의 미래를 향한 의지가 깊게 배어 있다.
그의 문학은 시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늘날 통일문학을 생각하는 문인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참가 문인들에게 이육사문학관 방문을 권한 것도 통일문학과 민족정신의 의미를 함께 되새겨보자는 뜻으로 읽힌다.
문학은 장소와 기억을 통해 더욱 깊어진다. 안동에서 통일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단순히 한 지역에서 학술행사를 개최한다는 의미를 넘어, 역사와 정신문화의 현장에서 민족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통일은 먼저 언어와 마음에서 시작된다
남북의 통일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정치적 합의와 제도적 통합, 경제적 교류와 사회적 통합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다.
수십 년 동안 서로 다른 체제와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하나의 공동체가 되기는 어렵다. 오랜 시간 축적된 오해와 두려움, 상처와 편견을 넘어서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문학은 정치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시 한 편이 한 사람의 슬픔을 다른 사람의 슬픔으로 만들고, 한 시대의 기억을 다음 세대의 기억으로 전달한다. 서로 다른 언어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한 편의 시를 읽으며 같은 마음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시는 통일을 직접 만들어내지는 못하더라도 통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토양을 만드는 일을 할 수 있다.
"내 가슴에 시 한 편, 가슴마다 시 한 편"…문학의 새로운 역할이번 심포지엄은 한국현대시인협회가 앞으로 통일과 평화, 공존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문학적으로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 보여주는 중요한 자리이기도 했다.
문학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시대의 질문에 답할 때 시는 단순한 개인의 서정을 넘어 공동체의 기억과 미래를 담아내는 힘을 갖는다.
특히 탈북 작가들의 생생한 경험과 북한문학에 대한 연구, 분단체제에 대한 시적 성찰이 한자리에서 논의됐다는 점은 남북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통일문학은 남과 북 어느 한쪽의 문학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문학을 이해하고, 차이를 인정하면서 새로운 문학적 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 길에서 시인은 경계를 허무는 사람이어야 한다.

통일의 첫 문장은 시가 될 수 있다
분단의 세월은 길었다.
그 세월 동안 남과 북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하늘 아래서 서로 다른 언어와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같은 땅과 같은 역사, 같은 기억의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쩌면 통일은 거대한 선언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공감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시를 읽는 것,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 작은 만남들이 쌓이면 언젠가 마음의 장벽 하나가 허물어질 것이다.
이번 안동 심포지엄에서 문인들이 던진 질문, "통일에의 길에 시인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도 바로 그곳에 있을 것이다.
시인은 국경을 넘는 정치인이 아니지만 마음의 국경을 넘을 수 있다. 시인은 역사를 바꾸는 권력자는 아니지만 역사를 기억하게 할 수 있다. 시인은 통일을 명령할 수 없지만 통일을 꿈꾸게 할 수 있다.
그리고 한 편의 시가 한 사람의 마음에 닿고, 그 마음이 또 다른 마음으로 이어질 때, 통일을 향한 길은 이미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통일의 첫 문장은 정치의 언어가 아니라 사람의 언어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첫 문장을 쓰는 사람이 시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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